● 수 3:7-13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십이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지리라.
1. 잊을 수 없는 일
1) 영적 이력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다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금 성령으로 내 안에 계셔서 내 삶을 다스리신다. 이 축복을 2005년 한 해동안 풍성히 누리는 주인공이 되어야 될 줄 확신한다.
사람이 어떤 회사를 들어간다든지 학교에 입학하게 될 때 이력서를 쓰게 된다. 그 이력서에는 나는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떻게 성장했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으며, 나는 이러이러한 일을 했다는 것을 쓰게 된다.
만약 우리가 신앙의 이력서를 쓰게 된다면, 우리가 불신자상태였는데, 내가 누구를 통해서 복음을 받았고, 어느 목사님을 통해서 세례를 받았으며, 어느 교회에서 이렇게 신앙생활 하고 교회 직분이 어떤 직분을 가졌다. 이렇게 쓰게 될 것 같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영적 이력서를 쓰게 된다면, 우리는 아마도 내가 하나님 은혜로 구원 받았는데, 예수님이 주인 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누리게 된 것을 쓰게 될 것이다.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 축복 속에서 응답을 받고 우리를 통해 복음 받은 사람, 나를 통해 말씀이 양육이 되어서 교회화 된 사람들, 그리고 나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와 귀하게 쓰임 받고 있는 전도의 열매들이 아마도 우리는 신앙의 이력서로 쓰게 될 것 같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교회 교역자들과 직분자 들에게 백지를 하나씩 주면서, 한 해동안 나를 통해 예수영접한 사람의 명단을 써라! 이렇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영접된 사람 중에서 말씀운동을 해서 교회화 된 사람들의 명단을 써라! 그리고 교회화 된 사람들 중에서 사역자로 쓰임받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써라! 이렇게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확하게 열매가 나타난다. 나를 통해 한 해동안 영접된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서 말씀운동을 통해 교회화 된 사람들, 그리고 교회화된 사람들 중에서 말씀운동에 지속적으로 쓰임받고 있는 사역자들 이렇게 된 사람들이 있냐고 이 명단을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해 어느 정도 새해 신앙의 이력서를 쓸 수 있는 열매의 목표치를 쓰고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한 해를 보내고 첫 주를 맞이했다.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영적 이력서를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5년 한 해 동안 나를 통해 영접된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 교회화 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서 말씀운동을 통해서 사역자로 쓰임 받고 있는 사람의 명단을 우리는 올 연말이 되면 하나님 앞에 신앙의 열매로 드려지는 축복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틀림없이 지역을 장악해야 될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신앙의 열매 믿음의 열매를 주실 줄 확신한다. 우리는 이것을 기도하면서 올 한해 지역을 장악해야 될 줄 믿습니다.
2) 잊을 수 없는 일
그러면 우리가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일생토록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다. 지금 여호수아가 살던 그 당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애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400년 혹 430년 동안 종살이 했던 애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
처음에는 요셉이 살아있을 당시에 야곱의 그 후손들, 70명의 가족들이 귀빈으로 대접받던 그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왜 노예로 전락해 버렸는가? 한 마디로 언약을 잊어버렸다. 왜냐면, 애굽 문화 자체가 우상문화다. 우상문화에 동화되다 보니, 언약이 희미해지고 보혈의 피가 희미해졌다. 그래서 결국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노예가 되서 400년 동안 이 노예에서 아무리 빠져나오려 해도 발버둥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자기가 노예가 되었는데, 자기 자손도 노예다. 그 자손이 장가가서 자손을 낳으면 그 자손도 후손 대대로 노예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노예생활 하고 있는 내 백성을 건져내라! 그러면서 모세에게 깨닫게 한 것이 너희 힘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희생제사이다. 바로에게 가서 말하라. 내 백성은 희생제사를 드려야 할 백성이다. 그리고 내 백성에게 가서 말하라. 희생제사를 드려라. 이 말을 전해라고 했다. 모세가 생각해 낸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깨닫게 한게 바로 이 희생제사의 언약이다.
그래서 모세는 이 애굽땅에 갔다. 그래서 바로와 대결을 하는데, 9가지 기적을 행했는데도, 바로왕은 항복하지 않았다. 이게 사단의 역사다. 사단은 우리가 아무리 기적을 행한다고 해도 놀래지 않는다. 언제 사단의 세력이 꺽어졌는가? 그리고 400년 간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빠져 나왔는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양을 잡아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라! 이 피를 바른 그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서 살아나고, 이 피를 바르지 않은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의 첫 자식이 다 죽을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말씀 대로 모든 백성에게 다 전했다. 그래서 택함 받은 백성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다 발랐다. 그날 밤 죽음의 사자가 그 지역을 덮쳤는데, 놀라운 사실은, 어린양의 피 바른 집만 다 살고,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모든 애굽의 백성, 심지어 바로의 첫 아들, 짐승의 첫 새끼까지 다 죽었다.
그때서야 바로가 항복을 했다. 이제 히브리인은 다 나가라!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고 나가라! 항복했다. 그래서 이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빠져 나왔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 어린양의 피, 보혈의 피를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헌금을 많이 해서 착한일을 많이 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하나님 만나게 하셨고 죄 문제를 해결하셨고, 사단의 세력을 꺽으셨다.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될 일, 어떻게 해서 우리가 죄 문제와 사단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받았는가? 보혈의 피,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3) 메이지 않을 일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빠져 나왔다면 메이지 말아야 될 일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땅에서 400년동안 종살이 하다가 그 어린양의 피 바른 날 사단의 손에서 빠져 나오고,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했다. 왜 이렇게 광야를 지나가는 데는 1주일도 안 걸리는데, 왜 그랬을까?
이 백성들이 구원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다 보니까 그것이 체질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너무 오래 어떤 일을 지속하다 보면 그것이 성격이 되고 체질이 된다. 할아버지도 노예였고, 자신도, 자기 자식도 노예다 보니 구원은 받았지만, 노예생활이 체질이 된 것이다. 노예는 그날 먹고 그날 편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원은 받았지만 노예 체질이 굳어지니, 조금만 문제 있어도 불평하고 원망하고 책임 전가하는 것이다. 애굽 땅에서 빠져 나온 구원의 축복을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축복을 모르고 조금만 어려움 있으면 과거 애굽의 노예생활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눈치 보면서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 비굴해지는 것 이렇게 사는 사람이 노예다.
우리는 여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노예생활 하다보니 그것이 근성이 되고 체질이 되었다. 성격이 되었다. 눈치나 살살 보고
제가 군대생활 하다 보니 노예생활이 뭔지 조금 이해가 되더라. 장교는 그렇지 않은데, 사병들은 오늘 하루 편하게 지내기 위해 눈치만 살핀다. 똑같이 훈련을 받아도 어느 쪽에 줄을 서면 좋을까? 이렇게 생각한다. 이게 노예근성이다. 왜냐면 3년을 그냥 대충 때우면 되니까 그게 3년을 알차게 보내야 되겠다. 이게 아니고 하루하루 편하게 보내기 위해 때우면 되니까 별 어려움 없이 하면 되는거다. 참 이게 안타깝다.
우리는 과거의 노예가 아니다. 사단의 노예, 죄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불신자들도 사람을 만나서 덕담을 하는데, 덕담은 복음적이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와 실패와 아쉬움이 있지만, 이런 것을 털어버리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과거에 매여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고 하면 이건 참 부끄러운 것이다. 무엇이 복음인가? 혹시 우리는 서운했던 것도 상처받았던 것도 있다. 억울하고 수용하지 못할 일도 있다. 불신자들도 이런것들 다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데, 얼마나 복음적인가?
우리는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이다. 새로운 축복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옛날에 매여 있다면 분명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부부지간에 이런 문제가 있다면 다 풀어라! 복음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았는데, 그 노예 근성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혹시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들 있습니까? 이거 정말 예수님 내 인생 주인 되시면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다. 혹시 세례 받지 않은 분은 이해가 된다. 세례 받았다는 말은 내 과거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산다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 믿었다는 말은 내 과거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과거에 매여 살아도 구원 못 받았으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말은 내 과거는 죽었다는 말이다. 그 과거 속에 다 포함된다. 사람과의 관계도 다 포함된다. 내 과거는 죽었다.
혹시 제가 모르고 저 때문에 성도들에게 상처가 되었다거나 하면 오늘부로 ‘이 목사 죽었다.’ 그렇게 아시고 새롭게 시작하자! 또한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요, 새롭게 출발한 사람들이다.
혹시 우리 성도들이 저 때문에 상처 되는 일이 있다면, 다 풀으시고, 새롭게 출발하자! 과거에 붙들리지 마시고, 만약, 과거의 문제 때문에 풀려지지 않아서 뭔가 해결이 안된다면, 사실 그 사람은 복음의 사람이 아니다. 정말 내 인생의 주인이 그리스도가 맞다면 우리는 맺힌 것을 빨리 풀어야 한다. 이게 풀리지 않으면 사실 하나님 앞에 마음껏 쓰임 받는 일에 걸린다. 이게, 혹시 제가 그랬을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길근 목사 2004년도로 다 죽었어, 이제 2005년도로 새로 시작해, 이렇게 아시고 새롭게 대하시면 된다.
2. 요단을 건너라
1) 요단을 건너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요단을 건너라! 여호수아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요단강을 건너라고 하셨다. 왜? 지역을 장악해야 되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차지해야 되기 때문에 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계획이다. 이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을 건너라. 그 말은 이전 것 다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라!
애굽 땅에서 나왔던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 요단강을 건넜던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다. 그 말은 노예근성을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했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이 구원 받았지만 광야에서 다 묶고, 믿음의 사람인 여호수아, 갈렙과 믿음의 후손들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우리에게 영적으로 가르치는 바가 굉장히 크다. 우리의 과거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 죽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순간 우리의 과거는 다 끝나고 새롭게 출발한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아직도 불평과 원망과 미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요단강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우리 과거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 죽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 새로운 일을 하셨기 떄문에 우리로 하여금 요단을 건너라고 하셨다.
2) 하나님의 약속
(1) 함께 하겠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모세와 함께 하신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 하겠다. 임마누엘의 축복이다. 여호수아만 함께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알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2005년 우리에게 이 축복을 확실하게 보여줄 것으로 믿습니다.
주님이 하신 약속이다. 우리는 약속을 붙잡아야 한다. 내 믿음을 붙잡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 믿음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믿음을 붙잡는데, 그게 아니다. 우리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한다.
(2) 크게 하리라
뿐만 아니라,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리라! 하나님이 높이겠다는 말이다. 참 감사하죠.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높아지려고 한다. 그러니 힘들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너를 높이리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리라!
우리가 높아지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니까 힘들고 언젠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어떤 때는 우리를 낮추시는 때가 있다. 안 되는 때가 있다. 그 때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
우리가 어떤 때는 엎드려 있을 때가 있다. 그 때는 하나님 앞에서 낮춰 있으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하나님이 나를 낮추시면 납작 엎드리면 된다. 하나님이 낮추실 때 높아지려고 하면 힘들다. 하나님이 나를 높이시면 감사하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된다. 또 하나님이 높이시는데 안 높아진다고 자꾸만 내려가는 것도 교만이다.
어떤 분은 주의 일 때문에 이런 일 좀 하십시오 하면, 제가 부족하지만 주님이 원하시면 제가 그 일에 순종하겠습니다. 이게 바른 것이다. 저는 못합니다. 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다. 하나님이 높이실 때는 겸손한 마음으로 쓰임 받으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낮추실 때는 가만히 낮아지면 되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낮추실 때 높아질려고 하고, 하나님이 높이실 때 내려가려고 한다. 하나님과 영 방향이 안 맞는다.
교회에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쓰시겠다면 아멘하고 쓰임 받으면 된다. 교회는 하나님이 높이시거나 낮추시면 아멘 하는 것이다.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달려있다.
3) 사시는 하나님
그러면서 10절에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들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무슨 말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요. 사시는 하나님이다. 무슨 말인가? 반드시 요단강을 건널것이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것이요, 가나안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호수아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여호수아와 그 백성이 쓰임 받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함께하신 증거를 주셔서 이 지역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런 축복을 우리가 누려야 하는 것이다.
3. 축복된 자의 신앙 자세
1) 분별하는 자
우리는 분명 축복받은 자가 아닌가? 축복받은 우리의 신앙자세는 첫 번째로 분별하는 신앙 자세를 가져야 한다. 분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다.
(1) 변화된 자신
내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 이것을 항상 질문해야 된다. 우리는 불신자가 아니다. 우리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바뀐 사람들이다. 정말 우리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다.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고, 하나님은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셔서 내 삶을 인도하신다. 우리를 천국 갈 때까지 우리의 삶을 완전 보장하시고, 책임 지시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가 이렇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존재다. 우리는 더 이상 귀신에게 끌려 다니고 귀신 섬기는 존재가 아니다.
지난번 이장현 집사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렀다. 이 집사님 같은 경우도 불신자에서 예수 믿은 가정이기 때문에 가정이 모두 예수를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절하라, 술 따르라 별 일을 다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집사님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절하고 술 따를 이유가 없지 않는가? 가족들이 한 번만 해라고 그래도, 끄덕없이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였다.
오늘 남궁집사님 어머니가 어제 돌아가셨다. 집사님 절할 필요 없고 술 따를 필요 없고 그냥 옆에서 믿음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귀신에게 절할 필요 없다. 귀신을 섬기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자녀가 귀신을 불러들일 이유가 없다.
(2) 구분하는 기준
그러면 변화된 내 자신을 확인하고, 우리는 구분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정말 이것이 복음에 유익한가 유익하지 않는가? 전도에 유익하냐 유익하지 않느냐? 이게 구분하는 기준이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우리가 순종하면 되는 것이고, 복음전도에 방해가 된다면 우리는 순종할 이유가 없다. 복잡하지 않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복음전도에 유익하다면 우리는 헌신할 수 있다. 만약, 복음전도에 방해가 된다면 우리는 그 일에 동참할 이유가 없다. 이게 기준이다.
2) 약속을 붙잡는 자
(1) 돌리는 자
그러면서 두 번째, 축복된 자의 신앙 자세는 약속을 붙잡는 것이다. 9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백성들이 할 일이 무엇인가? 예배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은 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에 하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누구나 다 귀가 있다. 그런데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그런데 어떤 것을 들어야 되는가? 어떤 것을 들어야 믿음이 자라는가?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고, 그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그 그리스도는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삶을 인도하시고 천국까지 보장하시는 복음을 들어야만 우리는 사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영적으로 말씀을 들으면 영적인 힘을 얻는다. 영적으로 힘을 얻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 최고의 우선순위가 예배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우리는 사는 것이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 말고 정말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다.
조희정 집사님과 이재호 성도가 오늘 합숙훈련에 간다. 제가 한 가지만 얘기했다. 24시간 메시지 듣고 기도해라. 이번 합숙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자! 이것만 확인하면 승리한다. 복잡한 것이 없다. 우리가 어떤 말을 들어야 하는가? 성경에 많은 지식이 있고 필요하지만 지식이 우리를 살리는가?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 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을 깨달을 때 구원받았다. 그러면 내 삶 속에 정말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자 됨이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지고 삶의 모든 현장이 확인되어지면 다 되어진다. 그게 예배다.
(2) 축복의 자리
정말 우리는 이 축복의 자리에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마가다락방에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가 다락방에 있어서 말씀 듣고 예배드리고 있을 때 성령이 역사하셨다. 우리가 지금 말씀 듣는 이 축복의 자리에 있을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눈에 안 보이게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후대들에게 우리의 생업현장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눈에 안 보이게 역사하는 흑암이 꺽이고 있다. 주의 사자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 자리가 축복의 자리임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지금 연말에 동남아시아에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수십만이 죽었다고 한다. 이게 누가 그 자리에 가고 싶어서 간 것인가?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 아닌가? 우리가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은혜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만약 이 축복을 못 누린다고 하면 지금 이 시간, 어떤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워하는 이상한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참 불행한 사람 아닌가? 그 사람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그 자체가 불행하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 은혜 받고 영적인 힘을 얻는다는 그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는 정말 2005년 동안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우리는 축복의 자리를 늘 놓쳐서는 안 된다.
내가 어느 지역에 갔더니 그 목사님이 저더러, 목사님, 그 분을 좀 사역 좀 해주세요, 그래서 제가 갔더니, 그 집사님이 원래 신앙생활 잘 하셨던 분인데, 영적 힘을 다 잃어버려서 죽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가만히 말을 들어 보니까, 딸이 애를 낳아서 그 애를 보느냐고, 교회를 나가도 애 때문에 예배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남편이 알콜 중독자다 보니까, 집에서도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겠는가? 그런데 전에는 예배의 은혜를 받다 보니까 그런 문제를 뛰어 넘었는데, 이 손주를 데리고 있으니 손주 때문에 예배가 안 되어지고, 영적 힘을 잃어버리니까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그랬다. 집사님, 주일날 딸에게 손주 갔다 주고 오면 되시지, 예배 은혜 받고 손주 데리고 오면 되시지, 예배 축복 없이 이 현장에 어떻게 살아남겠냐고 말하니까 그 분이 이 말을 알아듣더라.
나중에 제가 목사님에게 전화해 보니까 그 분이 예배가 되니까 알콜 중독자인 남편은 그대로 있는데, 영적 힘을 얻으니까 그 삶에서 승리하고 있더라. 물론 그러면서 문제 있으면서 영적인 힘을 얻으면 그 문제를 뛰어 넘을 수 있다. 그러면서 나중에 하나님이 남편도 변화시켜서 그분도 지금 교회 나가고 계시더라. 참 이게 놀랍다.
영적 힘을 얻고 있으면 문제가 있어도 문제가 아니다. 사실, 시험 받았다고 하는 것은 시헙 받은 것이 아니라, 영적인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누가 말하니까 그게 아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 힘을 얻으면 누가 아픈말을 해도 그게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왜 예배의 축복을 누려야 되는가? 세상 살면서, 아픈일, 억울한 일, 힘든 일이 너무 많다. 예배의 축복을 누리며 영적 힘을 얻으면 그런 일들이 아프게 보여 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면 아프지 않은 일도 가지고 아프게 느껴진다. 예배의 은혜 받은 자들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영적인 힘을 얻으니 뛰어넘게 된다. 정말 우리는 이 예배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3) 택함 받은 자
(1) 가치를 아는 자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자다. 12절 보니까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 매 지파에 한 사람씩 12명을 택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 내가 지원해서 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목사로, 중직자로, 성도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택하신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를 하나님이 택하셔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택하셨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땅에 죄의 종으로 택함 받은 자들도 있는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나를 충성 되이 여기셔서 나에게 이런 직분을 주셨다는 말이다.
어떤 집사님이 연말에 제게 전화 하셔서 목사님, 저는 갈렙 같은 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감사하죠. 저는 그 집사님의 중심을 안다. 내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지, 그래 말이야, 우리 교회는 갈렙 같은 집사님이 많이 서야 되겠구나! 여호수아가 앞장서서 일할 때는, 뒤에서 모르게 다 도와주고 있다가, 여호수아가 어려움 당할 때, 불현듯 일어나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갈렙 같은 사람, 이 얼마나 귀한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일도 안하면서 앞장서서 폼만 재고,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앞장 세워주고 어려운 일 있으면 나타나서 그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 갈렙 아닙니까? 우리 교회가 복된 교회인 줄 제가 안다. 그런 분들이 여러분들이다.
가이오 같은 응답 받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이 물질 주시면 복음 때문에 헌신 하겠다. 얼마나 귀합니까? 자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2) 참된 헌신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되면 참된 헌신을 알게 된다.
자식을 기르다 보면 이 일을 알 수 있다. 자녀 기르는 것이 힘들다. 밤에 잠 못자죠, 귀찮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자체가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그게 바로 자랑이다. 그게 바로 헌신이다. 나에게 이런 자식을 주시고 기르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게 되는 것 아니냐?
우리가 정말 가치를 알게 되면 참된 헌신을 한다. 우리가 한 생명을 살리고 그 생명이 일꾼 되도록 키우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것이 고생이요, 수고처럼 보이지만, 이것처럼 기쁘고 감사한 일이 어디 있는가? 자식을 위해서 아무리 일을 해도 힘들지 않잖아요. 내 자식인데.
우리가 생명을 살리고, 제자를 키우고 일꾼을 기르는 것은 어떤 면에서 수고가 아니요, 기쁨이요, 축복이다. 내가 정말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알면, 생명 살리고 제자 세우는 일에 우리 삶을 다 드리게 되어 있다.
어떤 목사님이 그러셨다. 세상에는 머슴이 3종류가 있다고 한다. 머슴인데 주인같이 일하는 사람, 머슴같이 일하는 사람, 머슴인데 오히려 일을 더 만드는 머슴이 있다고 한다.
똑같은 머슴인데 어떤 사람은 머슴처럼 슬슬 눈치만 보고, 어떤 머슴은 시키는 대로 일을 안 해서, 오히려 일을 더 만드는 머슴이 있는가 하면 어떤 머슴은 일을 주인처럼 하는 머슴이 있다. 요셉이 그랬다. 노예였는데, 노예처럼 살지 않았다. 주인처럼 그 가정을 위해 헌신하다 보니까, 노예이지만 노예 하면 안 되겠다. 가정의 모든 것을 맡아서 해라! 그런 거 아닌가?
우리는 이 한해를 시작하면서 정말 언약을 붙잡아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았는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그렇다면 우리의 과거는 다 끝났다. 과거에 더 이상 얽매일 필요 없다. 이 지역을 장악할 언약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금만 분별하면 된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알고 예배 축복 누리고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영적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다.
[기도]
새해 첫 번째 주일을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언약을 붙잡게 하시고, 과거에 매이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여 주시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역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되,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주님이 나를 높이셔서 이 축복된 일을 하실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가 정말 분별하는 은혜를 받게 하시고,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셔서 택함받은 자로 온전히 쓰임 받는 축복된 자로 우리는 한 해를 마무리 할 때 영적 이력서 안에 우리를 통해 복음 받은 사람들, 교회화 된 사람들, 일꾼이 된 사람들, 하나님 앞에 열매를 드릴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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