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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증언하는 자 조회수 : 3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6-03-29
  첨부파일:   20260329.hwp(256K)

분류

주일예배

제목

증언하는 자

성경

8:15-20

일시

2026329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미스바 운동

사무엘 상 7장에 보면 미스바 운동이 나옵니다. 미스바는 지역 이름입니다. 미스바의 원래 뜻은 망대라는 뜻입니다. 그럼 망대가 뭐냐? 바다에 등대가 망대입니다. 군인들이 부대를 지키는 초소가 망대입니다. 옛날에 성을 지으면 성문 정면에 성루를 만듭니다. 그게 망대입니다. 등대, 초소, 성루의 공통점은 24시 지속입니다. 사람은 24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정하고 몇 시부 터 몇 시까지 해서 24시를 지속하는 겁니다. 24시 지속하는 운동이 미스바 운동. 망대 운동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14명의 사사가 나옵니다. 왜 사사가 나왔냐면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깁니다. 우상숭배를 하니까. 결국, 저주재앙이 임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사를 세워서 백성을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런데 또 우상숭배하고 이게 사사 시대 14명의 사사가 계속해서 이 일을 반복한 겁니다. 21:25에는 사사기가 뭔지를 설명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습니다. 그 말은 왕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그 왕은 권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필요 없어. 지도자 필요 없어. 권위 필요 없어. 그 얘기입니다. 자기가 주인인 겁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소견대로 한 겁니다. 이런 시대에 제사장들이 타락합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흩어집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것을 회복할 나실인을 준비시키십니다. 이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한나입니다. 하나님은 나실인으로 자란 사무엘을 쓰셨습니다. 사무엘이 한 일이 미스바운동입니다. 망대 운동입니다. 미스바 운동, 망대 운동의 내용이 뭡니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전심으로 하나님만 섬기자. 그러면 너희를 괴롭히는 블레셋에서 하나님이 건지실 것이다. 이게 미스바 운동. 망대 운동입니다. 놀라운 것은 백성들이 사무엘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겁니다. 모든 시작은 누구의 말을 듣느냐?. 이겁니다. 그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에게 우리가 미스바로 모이자. 여기서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런데 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겁니다. 사무엘의 말을 듣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야지. 모이는 겁니다. 순종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종일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때 성경은 뭐라 말하냐? 사무엘이 다스리더라. 그랬습니다. 사무엘을 지도자로 섬기고 권위가 회복되었다는 겁니다. 사람이 회개하면 권위가 회복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블레셋이 가만히 있습니까? 저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지도자를 세우고 섬긴다. 그래서 블레셋이 공격하는 겁니다. 블레셋은 사단입니다. 이때 사무엘이 어린 양을 잡아서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백성들이 같이 기도했겠죠. 이때 하나님은 큰 우레를 발해서 블레셋을 꺾어버립니다. 백성들이 다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구나! 그래서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동안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성읍, 평야를 다 회복했습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막으셨다. 지도자가 있는 동안 권위가 회복된 동안. 망대 운동이 되는 동안. 하나님이 다 막으셨다. 그럼 미스바 운동. 망대 운동은 뭘까요? 살리는 운동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자. 성경에는 이런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오직, 오로지, 전혀. 지금은 집중, 몰입. 우리가 병이 들면 나도 모르게 집중합니다. 고난이 오면 나도 모르게 집중합니다. 그런데 우린 병도 안 오고 고난도 안 왔는데 24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의식을 갖는 것. 이게 미스바 운동. 망대 운동입니다.

바꿀 것

얼마 전에 남기흥 장로님 아들 승찬이가 미션 홈에 선반을 만들어 줬습니다. 고마워서 식사하는데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지금은 기계가 좋아져서 옛날처럼 힘이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간도 절약되고 힘도 덜 든다고 합니다. 지난주에는 김택동 장로님과 식사를 하는데 주민 요청으로 이 지역에 측량합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지금은 측량을 GPS로 하므로 정확하다고 합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결국 우리 사회가 점점 좋은 쪽으로 발전하구나! 그럼 빨리 나를 바꿔야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럼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천국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순간 와 있는 겁니다. 그럼 우린 순간순간 성령 인도를 받는 겁니다. 이게 나를 바꾸는 방법입니다. 이미 신분은 바뀌었고 천국은 보장되었습니다. 그럼 삶에서 순간순간 성령 인도를 받는 겁니다. 이게 바꿔 가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 인도가 뭐냐? 쉽게 말하면 내 생각 내 주장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성령 인도입니다. 사람이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이 있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하면 부드러워집니다. 몸이 차가워지면 딱딱해집니다. 부드러운 것이 좋은 겁니다. 딱딱해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찰떡은 말랑하면 먹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굳으면 못 먹습니다. 몸도 스트레칭을 합니다. 그럼 몸이 부드러워져서 다치지 않습니다. 스트레칭을 안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자기 고집이 센 사람이 있고 순종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있고 겸손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생각과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오해했다가도 빨리 풀어집니다. 잘못한 것도 빨리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그게 성령 인도를 받는 겁니다. 32: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회개할 줄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회개할 줄 모르는 겁니다. 우리가 왜 은혜를 사모합니까? 왜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가 임해야 합니까? 아무리 내 생각이 강해도 성령이 역사하시면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 사람이 은혜가 임하면 고집이 적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갑니다. 이렇게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종류의 사람

이 땅에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 아니면 마귀 자녀. 생명과 사망. 영생과 멸망. 천국과 지옥. 전도자와 전도대상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과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 피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안 듣느냐?. 성령 인도를 받냐 내 생각대로 사느냐?. 빛이냐 어둠이냐. 그래서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임한 생명의 빛을 우리가 전하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옛날에는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생명의 빛이 들어와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전달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우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쓰시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잘해주었기 때문에 공경하라고 하셨을까요? 부모가 존경스러우니까. 공경하라고 했을까요? 부모가 흠이 없으니까. 공경하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이 그분을 부모로 세우셨기 때문에 공경하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부모를 쓰고 계시는 겁니다. 12:1에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습니다. 구스 여인은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아내로 맞으면 안 되는 겁니다.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 미라암이 모세에게 말합니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할 말을 하는 거죠. 그런데 성경은 아론과 미라암을 문둥병에 걸리게 합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하나님이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잘못은 모세가 했는데요. 형과 누나가 말한 건데요. 모세를 책망해야 하는데 왜 아론과 미라암을 문둥병에 걸리게 했습니까?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아론과 미라암이 잘못을 알고 문둥병이 고쳐집니다. 성경은 무엇을 얘기합니까? 그 시대에 하나님은 모세를 쓰고 계시는 겁니다. 이게 영적 원리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잘못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여러분 있었습니다. 다윗의 부하가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왔다고 합니다. 그때 다윗이 삼상26: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잘못한 사울에게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시대에 하나님은 사울 왕을 쓰신 겁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은 겁니다. 그럼 다윗이 실패했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세상 누구보다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축복받을 일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2- 증언하는 자

육체를 따라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내 판단이 참되니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증언하는 자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내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 예수의 피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바리새인들은 육체를 따라 판단했습니다. 판단한다는 말은 정죄하고 심판하고 비난하고 구별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말합니다. 나는 판단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판단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기준으로 자기 체험으로 지식으로 옳다고 판단합니다. 그럼 잘 보세요. 남을 판단하는 그 사람은 그 속에 숨겨진 것이 있습니다. 우월의식이 있습니다. 내가 너보다 나아. 그러니까. 판단하는 겁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겁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롬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지금 바울이 얘기하는 겁니다. 네가 판단하고 네가 정죄를 받는다. 네가 판단하는 것 때문에. 너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무서운 얘기입니다. 바울이 과거에 그랬습니다. 자기가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그러면 그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가 판단하는 것이 옳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기준도 계속 바뀝니다. 나는 바르다. 그 기준도 계속 바뀝니다. 옳다는 기준도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선민이라는 기준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집에는 가지도 않습니다. 자기 기준에 따라서 사람과 지역도 구분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지역에는 가지도 않습니다. 갈릴리 사람은 무시합니다. 사마리아 지역과 갈릴리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기 마음과 상관없이 태어난 건데 갈릴리 사람이고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자기 의지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사마리아 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 하고 예수님은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생명의 빛인 복음을 증거하십니다.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는 그 사람이 아니고 죄인. 나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 사람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했습니다.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판단으로 자기가 판단 받습니다.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나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가 옵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5: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겁니다. 예수가 누굽니까?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가 누굽니까?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니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멸망 받지 말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려고요. 하나님이 보내신 겁니다.

나를 알았더라면

바리새인은 그렇게 똑똑하고 열심히 바르게 사는데 가장 불행한 것은 딱 한 분 예수님만 안 믿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나를 모르니. 아버지도 모른다. 나를 알았더라면 아버지도 알 텐데. 나를 모른다. 바리새인은 오히려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네 아버지가 누구냐? 그 얘기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육신의 아버지. 너는 목수의 아들. 마리아의 아들이잖아.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안 믿는 겁니다. 12: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요12: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 몰라서 남을 죽이고 망하게 하는 일에 앞장섰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고백합니다.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예수 믿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예수의 피

지난주에 영어 성경 학교를 하는데 최혜정 권사님이 엄마의 상태가 아이에게 전달이 된다고 합니다. 아이가 엄마한테 안깁니다. 왜 엄마 품에 자꾸 들어오냐? 안전함을 얻고자 한다는 겁니다. 또 아이가 밤에 엄마 품에 들어옵니다. 안전을 확인하는 겁니다. 이게 애착이 잘되는 거죠. 이게 잘 안되면 아이가 불안하고 무기력증에 잡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안전한 곳이 어디냐? 예수의 품이다. 예수님의 피가 가장 안전한 곳이다. 부모에게 혹시 이런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예수의 피. 예수의 품으로 오면 안전하다. 그러면서 제 마음에 찬송이 왔습니다. 252장입니다. 나의 죄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그 이름 예수의 피. 나에게 평안과 소망과 영원토록 내 할 말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슬픈 일도 있고 외로움도 시시때때로 다가오고 두려운 일도 있고 낙심되는 일, 답답한 일도 참 많습니다. 실패할 때도 있고 죄지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죄책감에 잡힐 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1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한다.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힘을 얻고 치유 받고 회복되는 축복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알게 됩니다. 누가 예수를 증언합니까? 하나님이 증언합니다. 영원토록 할 말 예수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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