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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아버지의 독생자 조회수 : 107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4-10-06
  첨부파일:   20241006.hwp(256K)

분류

주일예배

제목

아버지의 독생자

성경

요한복음1:14-15

일시

2024106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우리의 결단

1. 위에서 내리는 힘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배웠습니다. 또 우리도 그렇게 가르칩니다. 세상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겁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감람산에 불러서 마지막 메시지를 주십니다.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위에서 내리는 힘이 필요하다. 영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자들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주님이 말씀하신 위에서 내리는 힘을 사모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날이 못 되어 주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니까. 로마는 정치적으로 핍박을 하고 유대인들은 이단이라고 박해를 하는데 그 핍박과 누명을 그들은 다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위에서 내리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어떠했냐?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그 핍박 중에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그들의 마음에 교회가 깊이 담긴 겁니다. 벌써 마음이 교회에 가 있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그들이 핍박 중에 많은 헌신을 합니다. 시간도 물질도 마음도 정신도 복음을 위해서 드리는 겁니다. 영적 힘 오니까. 위에서 내리는 힘이 그들에게 있으니까. 은혜가 충만합니다. 은혜 충만하니까. 마음에 교회가 가까운 겁니다. 마음에 품어지는 겁니다. 주님 앞에 헌신하는 것도 기쁘고 감사한 겁니다. 성도 한 명이 너무 소중하고 귀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위에서 주시는 힘이 임하면 사람 마음이 평안하고 여유 있고 너그러워집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보면 많이 깨닫습니다. 아이 중에 힘이 없는 아이들은 잘 삐지고 사납고 거칠고 무례합니다. 변덕스럽고 인색하고 예의도 없고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런데 힘이 있는 아이는 순하고 너그럽고 예의도 바르고 이해심도 있고 베풀 줄도 압니다. 마가 다락방 성도들에게 은혜가 임하고 힘이 임하니까.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습니다. 영적인 힘이 오면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선해집니다. 주변 사람들이 보면서 본받고 싶다. 저분들이 핍박받고 오해받고 있는데 저분들처럼 살고 싶다. 이렇게 된 겁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우리가 받아야 할 응답이고 축복입니다.

2. 은혜와 평강

우린 은혜 받았다. 그런 말을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공을 세우고 노력했거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겁니다. 베풀어 주신 겁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 되었을 때 저주받아 마땅한 우리에게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평강의 복음이 축복의 복음이 사랑의 복음이 용서의 복음이 치유의 복음이 소망의 복음이 오늘도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어제도 필요했고 오늘도 필요하고 내일도 필요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따라오는 것이 평강입니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가 이 땅 살면서 근심되는 일이 많다. 두려운 일도 많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면 그 근심도 두려움도 이겨낸다. 이런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3. 선택된 사람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창세 전에 주님이 나를 택하신 겁니다. 우리가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세상에 사람들은 차별이 없습니까? 구분하지 않습니까? 있는 자, 없는 자, 배운 자, 못 배운 자, 다 구별하고 차별합니다. 여기에 보면 스구디아인이 나옵니다. 스구디아인은 야만인 중의 야만인. 미개인 중의 미개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런 사람이라도 유대인, 헬라인과 똑같이 구원의 복음을 받는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내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않겠다. 왜요?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이든지.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야만인, 미개인이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 축복은 누구도 뺏어갈 수도 없고 뺏기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고 영원한 겁니다. 하나님이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4. 나의 결단

성경에 보면 믿음의 큰 결단을 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따라갔다. 말씀을 따라가는 중에 하나님이 백 세에 나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립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살려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말씀을 따라가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런 복을 주십니다. 야곱이 집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야곱이 이렇게 결단합니다.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세월이 흘러서 그가 고향에 돌아올 때는 열두 아들을 데리고 거부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젊을 때 미스바 운동을 일으켜서 백성을 살리고 블레셋을 꺾었던 사무엘은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결단한 것이 있습니다.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 이런 결단을 봅니다. 다니엘은 어린 시절에 뜻을 정하고 나이가 많았을 때도 하루 3번씩 사자 굴에 들어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결단하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작은 결단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축복이다. 작은 결단은 어떤 결단입니까?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결단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결단입니다. 우린 교회에서 줌으로 매일 9시 기도회를 합니다. 성도들이 거기에 들어옵니다. 결단한 겁니다. 우리 교회에서 성경 읽기를 합니다. 성도들이 카톡에 많이 올립니다.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겁니다. 하는 겁니다. 여기에 같이 참여해서 하는 것이 작은 결단입니다. 우린 캠프를 놓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는 일을 놓고 주변 사람을 전도 대상자로 선정해서 기도하겠다. 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겁니다. 작은 결단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면 인사하겠다. 이게 작은 결단입니다. 매주 강단 말씀을 기도하고 인도받으면서 그 말씀을 통해 기도 제목 잡고 포럼 해서 올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게 작은 결단입니다. 마음이 담기면 할 수 있는 겁니다. 매일 메시지를 듣고 정리해서 카톡에 올리는 분도 있습니다. 쉽지 않지만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겠다. 이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결단입니다. 힘들겠지만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에 참여하겠다. 내가 마음먹고 중심 가지면 할 수 있는 겁니다. 나는 정말 사람을 살려야겠다. 후대를 키워야겠다. 교회를 든든히 세워야겠다. 이건 작은 결단이지만 중요한 겁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에 바쁘다면 그건 낭비가 아닙니다.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린 내가 지금 오늘 결단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2- 아버지의 독생자

1. 그에 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2. 아버지의 독생자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3. 그에 대하여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4.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3- 갈급한 사람

1. 우리 가운데

그러면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그 말씀의 내용이 뭡니까? 구약에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구약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게 말씀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온 사람은 다 산다. 그게 말씀입니다. 피제사 드릴 때 흑암이 꺾인다. 그게 말씀입니다.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그게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우릴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왜 우리를 이렇게 구원하러 오시고 영원히 함께하십니까? 우린 하나님을 몰라서 멸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힘입어서 멸망 받지 말라고 영생 얻으라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종노릇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죄도 모르고 지옥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그냥 세상에 풍습을 따라서 살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만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구원하시려고. 임마누엘 하시려고.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기 위해서. 구원의 축복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2. 본 사람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영광의 내용이 뭡니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봤다. 빛으로 오시고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미 와 계셨습니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영적인 눈을 열어주신 겁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보인 겁니다. 은혜와 진리가 보인 겁니다. 이게 축복입니다. 이게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신 것이 축복이고 응답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아버지의 독생자구나! 이게 보이는 겁니다. 바울이 이게 안 보여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핍박 자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고백합니다.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영적인 눈이 열린 겁니다. 지금까지 눈이 감겨서 많이 배운 사람인데 잘 살려고 발버둥 치던 사람인데 눈이 가려서 안 보인 겁니다. 그런데 그 눈이 열린 겁니다. 눈이 열리니까.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바울이 뭘 본 겁니까? 눈이 열린 겁니다. 내가 핍박하던 그리스도가 누구냐? 내가 몰랐구나! 눈이 열린 겁니다. 이렇게 사람은 보면 달라집니다. 안 보이니까. 못 보니까. 그러는 겁니다.

3. 증언하여

요한이 그에 대해서 증언하여 외쳤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외쳤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 영광이 보였고 은혜와 진리가 보였습니다. 그 충만함을 봤습니다. 보니까.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 나보다 먼저 계신다.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계신 분입니다. 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안 믿었습니다. 그래서 망한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 성경대로 약속대로 오신 분. 예수님이 누구신가? 이것을 아는 사람은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렇게 큰소리로 외칠까요? 반드시 전해야 하니까요. 그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가 생명이고 승리의 길이기 때문에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핍박자들은 예수를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때 제자들은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우리가 봤다.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못 하게 하냐! 그 예수가 빛이고 생명인데 이것을 유대인들은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린 봤다. 들었다. 그 이름으로 살았다. 그러니까. 말하는 겁니다. 말만 하는 것과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봤고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오늘 찬송가 96장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임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도다.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 자의 구원 되고 우리 화평이 되신다. 온 교회의 머리와 온 세상에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 심판하실 주님 되고 우리 영광되신다. 예수님을 보지 않고 어떻게 이 찬양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체험한 자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찬양이고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사단의 머리를 박살 낸 분입니다. 예수는 저주와 재앙을 해결하신 분입니다. 지옥 권세를 꺾어버린 분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보장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외칠 수밖에 없고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4. 갈급한 사람

심 목사님이 메시지 중에 가끔 얘기합니다. 자기 동네에서 재앙 받은 집이라고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저주받은 집이라고요.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었으면 사람들이 저주받은 집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집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되니까. 제일 먼저 오는 응답이 평안이었습니다. 얼마나 시달리고 힘들었으면요. 얼마나 말씀을 받고 힘을 얻으면 몇 주 전 말씀까지 기억한다고 합니다. 말씀을 보고 듣고 읽고 묵상하는데 영적 문제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고 체험했다. 고백합니다. 예수가 누구신가? 그 예수가 주인이고 왕이시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나도 모르게 치유와 변화가 일어나고 열매가 맺어집니다. 10장에 베드로가 피장 시몬의 집에 잠깐 머물고 있을 때 그 현장을 놓고 기도합니다. 성경에 제6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5절에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서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갑니다. 고넬료 집에 갔더니 어부 출신 베드로에게 무릎 꿇고 절을 하는 겁니다. 갈급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고 듣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는 심 목사님 집처럼 저주받고 재앙이 임한 집이 있습니다. 갈급한 사람입니다. 고넬료처럼 갈급한 사람이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갈급하게 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갈급한 자를 찾는 전도자. 현장에 갈급한 자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전도를 놓고 현장을 놓고 기도하는 자. 정말 주님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주님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찾는 기도.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이게 작은 결단입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보이면 되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며 찾는 전도자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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