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생각해 보라 | 조회수 : 44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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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예배 |
제목 |
생각해 보라 |
성경 |
히7:4-10 |
일시 |
2022년 8월 21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영향 주는 자
1. 처음 은혜
▶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왔는데 광야에서 40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 계획이 있는 거죠. 양의 피를 바른 날 애굽의 모든 장자. 심지어 짐승의 첫 새끼도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강한 바로가 항복합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들은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자기 노예들한테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다 가져가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서 첫 번째 문제가 생겼습니다. 홍해가 가로막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사람들이 변해서 군대를 동원해서 쫓아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 같은 곳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군대는 홍해에 빠져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평생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다짐 또 다짐합니다. 그런데 평생 변함없이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한 그들이 광야에 갔더니 어려움도 생기고 답답함도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감사, 그 감격은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과 불신앙이 자꾸 쌓이게 됩니다. 처음 은혜를 잊어버린 겁니다. 신앙생활은 본래의 것을 찾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셔서 에덴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에덴의 축복은 평안과 감사와 소망과 행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단에게 속아서 다 뺏긴겁니다. 신앙생활은 그 에덴의 축복을 회복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가 그리스도구나! 그 예수가 사단을 꺾으신 그리스도구나! 그 예수가 죄의 저주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구나! 그 예수가 지옥 권세를 꺾으신 그리스도구나! 이게 깨달아지는 그 날. 우린 감사했고 감격했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구나! 이게 가슴에 벅차서 찬송하며 인도받았습니다. 어떤 핍박도 이단의 누명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우리가 받은 첫 번째 은혜입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그 감격, 그 감사가 희미해지고 힘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린 처음 은혜를 사모해야 하고 그 은혜가 우린 것이 되어야 합니다.
2. 참 안식의 주인
▶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할 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참 안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참 안식을 누리고 체험하고 살 수 있는 안식일 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안식을 누리고 이 안식의 축복을 내 것으로 삼으라고 안식일의 축복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 안식일이 변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식일 취하고 누리고 안식을 나누고 영적 힘을 얻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안식일인데 율법주의자들은 일하지 않으면 안식이 온다고 생각한 겁니다. 안식일은 일하지 않아야 안식이 오는 거야. 그러니 내 주변 사람이 안식일에 무슨 일을 하면 자꾸 눈에 거슬리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고 분이 나고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안식일을 안식이 아니고 거기에 매이는 겁니다. 참 어리석은 거죠.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시고 안식하라고 했는데 그것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그건 이미 안식을 잃어버린 거죠. 내가 화가 나는데 무슨 안식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화가 자꾸 난다. 왜 화가 나죠? 다른 사람의 잘못이 크게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화가 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보면 어떻게 도와줄까? 이런 것이 아니고 화가 나는 겁니다. 안식을 잃어버리니까. 그러는 겁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게 안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참 안식이 오는 겁니다. 왜요?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 되고 나의 왕이 될 때 우린 참된 안식이 오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보장하시는 것이 믿어지니까. 참 안식이 오는 겁니다. 그래서 참 안식이 우리에게 온다는 증거가 예배로 찬양으로 기도로 나타나는 겁니다. 이 축복을 누리고 나누어야 하고 전달해야 합니다.
3. 영적 세계
▶ 무당이 굿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무당이 굿을 하면 어느 순간 귀신에게 사로잡힙니다. 그럼 무당에 수준과 다른 힘이 옵니다. 그게 영적 세계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 올라가서 며칠 동안 도를 닦습니다. 뭔가 충만해져서 옵니다. 그럼 원래 그 사람과는 다른 것이 나옵니다. 귀신 충만해서 나타나는 겁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영적 세계에 눈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명상하면서 집중합니다. 그런 뭔가 다른 힘이 옵니다. 지금 많은 엘리트, 성공한 사람들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영적인 것에 맛을 봐서 명상에 빠져드는 겁니다. 그런 뭔가 체험을 합니다. 왜 우리가 예배 속에서 힘을 얻어야 하고 깊은 기도 속에서 힘을 얻어야 하고 왜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까? 내 힘 가지고 안 되잖아요. 내 인격 가지고 안 되잖아요. 우리 인격이 대단한 것이 아니죠. 나한테 좋으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싫은 것이고 그거 아닙니까? 그것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삽니까? 영적인 힘이 와야 내 인격을 넘어서는 겁니다. 그래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겁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도 이것을 알고 살아가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산다고 안타까운 겁니다. 억울한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귀신 충만해서 그 힘으로 살아가는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이 영적인 힘이 없어서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에게 눌려서 산다면 너무 억울한 겁니다. 우리가 예배 속에서 기도 속에서 찬양 속에서 이 영적인 세계를 체험하고 그 힘 가지고 내 환경을 뛰어넘고 내 문제를 뛰어넘고 그래서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고 세우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4. 영향 주는 자
▶ 이주 전에 수요예배 전에 교역자실에 있는데 우리 교회 렘넌트 몇 명이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는데 한 아이가 누구한테 전화하는 겁니다. 야. 너 어디야? 지금 수요예배 시간인데 왜 거기에 있어. 교회로 빨리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먼저 예배드리고 그거 해야 되는 거야. 어른이 아니고 렘넌트가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제가 그것을 들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이 사역을 잘하고 있구나! 이 아이가 예배의 소중함을 알고 자기 친구에게 빨리 와서 수요예배 드리자. 저는 이 렘넌트의 통화를 보면서 우리가 세상 살면서 믿음의 영향을 주고 선한 영향을 주고 아름다운 영향을 주고 이게 얼마나 복된 것인가! 세상이 너무 험악하고 무섭고 살벌합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믿음의 영향, 선한 영향, 아름다운 영향을 주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래서 오늘 찬송가 325장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를 위해 삽시다. 우리가 예수를 위해 사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복된 것은 없습니다. 한평생 예수를 위해 사는 축복 된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2- 생각해 보라
1. 생각해 보라
▶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2. 십분의 일
▶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 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3. 약속을 받은 자
▶ 그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데 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 분의 일을 드렸다.
4. 축복을 받느니라
▶ 그러니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위해서 복을 빌었다.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복을 비는 것이 아니냐. 낮은 자는 높은 자에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냐.
3- 축복을 사모하는 자
1. 얼마나 높은가
▶ 생각은 응답의 시작입니다. 생각이 없으면 응답을 모릅니다. 생각을 하게 되면 응답을 확인하게 됩니다. 멜기세덱을 평강의 왕이다.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다. 우릴 의롭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왕. 의롭게 하시는 왕. 오실 메시야구나! 이렇게 안 겁니다.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이 멜기세덱입니다. 그 멜기세덱은 어떤 사람이냐? 많은 이스라엘에 제사장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수명이 다합니다. 그러면 또 다른 제사장이 세워져야 합니다. 또 제사장은 부족하니까.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럼 자기 죄를 위해서 또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 제사장직을 누군가에 의해서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직은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이다. 받고 주고 전달하는 제사장직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제사장이다. 언제나 살아계시고 항상 존재하시고 절대 중단하지 않는 제사장이다. 이것을 아브라함이 깨달은 겁니다.
2. 복을 빌었더니
▶ 멜기세덱이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었습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전달하는 자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얼마나 복된 자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하나님의 축복을 막을 자가 있습니까? 저는 어릴 때 가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복뎅이는 자다가도 꽁떡을 얻어먹는다. 또 어른들이 복덩이는 넘어져도 복을 받는다. 그게 복덩이라는 겁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복덩이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복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축복할 수 있는 겁니다. 제사장은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축복하는 자입니다.
3. 믿음의 고백
▶ 그런데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에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오실 메시야로 믿기 때문에 십 분의 일을 드리는 겁니다. 오실 메시야로 확인된 겁니다. 마귀를 꺾는 왕이구나! 오실 메시야로 죄의 저주를 해결하신 영원한 속죄자구나! 오실 메시야로 지옥 권세를 꺾고 천국의 축복을 가져다주는 제사장이구나! 메시야구나! 그러니까. 그 은혜를 표현하는 방법이 십 분의 일을 드리는 겁니다. 레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그 수입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다. 십분의 일은 전체를 대표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백성들에게 십 분의 일을 드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살라.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살라.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 살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십일조 생활을 철두철미하게 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했습니다. 이상하죠. 바리새인들은 십 분의 일을 철저하게 드리는데, 왜 십일조를 드렸냐? 율법을 지키는 행위의 기준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합니다. 눅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그들은 십일조를 잘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버렸다. 그래서 너희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 그 말은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가 기준이 아니고 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십일조다. 십일조는 뭐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구나! 거기에 대한 믿음의 고백, 믿음의 확인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것이 십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것이 이삭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바치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조금도 갈등, 염려하지 않고 그 아들을 드립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인생을 하나님은 완전히 보장하시고 책임지시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중심과 마음과 소중한 것들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의 기준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얼마나 억울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복되고 힘 나고 기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알기 때문에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믿고 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적인 은혜와 영적인 축복도 세상의 복도 따라오는 겁니다. 우린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고 이 땅에서 사는 겁니다. 그게 우리 신앙생활입니다.
4. 축복을 사모하는 자
▶ 저는 이번 주에 축복을 정말 사모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면 좋겠다.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축복할 수 있고 내 주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 그것처럼 복된 것이 없습니다. 성도인 우린 축복을 받고 축복하는 자로 축복을 전달하는 자로 산다면 가장 복된 겁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평안을 사모합니다.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사모했습니다. 우리가 좋은 것. 가치 있는 것을 사모하는 것은 복된 겁니다. 우리가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갑절의 영감을 사모하는 것이 복된 겁니다. 야곱을 보면 허물도 크고 문제도 많은 사람인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장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있어서 자신이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형 에사가 사냥을 다녀와서 배가 고픕니다. 집에서 팥죽을 끓이는 야곱에게 에서가 좀 달라고 합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주면 주겠다고 합니다. 형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축복을 팥죽 한 그릇에 팝니다. 그런데 야곱은 정말 장자의 축복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야곱이 한 중심을 보세요. 그 일 때문에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갑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열두 자식을 얻고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데 에서가 아직도 분이 안 풀려서 400명의 군사를 끌고 야곱을 잡으려고 옵니다. 그게 창세기32장입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 앞에 생명을 드리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 내용 중에 천사가 야곱과 씨름을 합니다. 천사가 야곱 허리에 환도 뼈를 쳐서 부러졌습니다. 고통스럽죠. 그런데 야곱은 창세기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지금 환도 뼈가 부러져서 고통 가운데 있는데 죽어도 안 놓겠다. 나는 반드시 축복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29절에 축복했습니다. 그게 야곱 인생입니다. 훗날 요셉이 총리가 되고 야곱이 애굽에 갑니다. 바로 왕 앞에서 야곱은 손을 들어서 바로 왕을 축복합니다. 요셉의 두 아들과 요셉을 축복합니다. 그게 야곱의 인생입니다. 창49: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의 인생은 축복하는 인생입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왕상8장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봉헌 예배를 드립니다. 많은 재물을 드리고 14일 동안 절기를 지킵니다. 왕이 14일을 전념해서 절기를 지키는 것은 보통이 아닙니다. 그런데 왕상8:66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백성들이 왕을 축복하는 겁니다. 이 영적 상태, 이 영적 분위기가 어떤지를 보게 됩니다. 제대로 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축복하고 자식이 부모를 축복하고 그게 제대로 되는 겁니다. 잠11: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진흥은 솟아나고 부흥한다는 말입니다.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진흥하게 된다. 우리 인생이 사용하는 말이 축복하는 말이 되면 내가 살고 모든 것이 살아난다.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감람산 사역입니다. 눅24: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제자들을 축복한 겁니다. 저는 말씀 묵상하면서 축복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 저와 성도들은 축복 사모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축복을 사모하는 자에게 축복이 임하는 겁니다. 축복이 임하게 되면 축복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내가 축복받았다는 증거가 뭐냐? 축복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나모 모르게 정죄하고 비난하고 미워하고 갈등하고 그건 축복을 못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믿음의 영향, 선한 영향, 아름다운 영향을 주는 것이 복된 사람입니다. 응답의 시작은 생각에서 옵니다. 축복받고 축복하는 자로 사는 복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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