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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의 집 조회수 : 473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4-10
  첨부파일:   20220410.hwp(256K)

분류

주일예배

제목

하나님의 집

성경

3:4-6

일시

2022410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하나님의 기준

1. 속지 마라

축복받을 백성이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고 속국이 되었다. 그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왜 이분들은 당연히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저주를 받았나? 이 사람들은 복음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짓습니다. 살면서 짓는 죄를 자범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근원적인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근원적인 죄는 하나님 떠난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원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죄보다 더 무서운 죄가 있습니다. 그 죄는 원죄가 뭔지 모르는 죄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잘못을 하고 죄를 짓습니다. 이때 내가 죄를 지었구나! 그러면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을 죄라고 여기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에게만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 죄라고 여기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만 아는 겁니다. 저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착하게 성실하게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우상숭배가 그렇게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인 줄 몰랐습니다. 세상 풍습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큰 죄인 줄 몰랐습니다. 제가 진노의 자녀고 마귀의 자녀라는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마귀가 하는 주 업무는 속이는 겁니다. 속이고 죽이고 결국은 망하게 하는 겁니다. 마귀가 그럴듯한 세상적인 것을 주면서 딱 하나님만 모르게 만들고 하나님만 못 믿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가 인간을 어떻게 속입니까?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님이 이런 비유를 했습니다. 그 부자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나. 날마다 잔치하면서 살았다. 좋은 음식 먹고 건강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죽음을 맞았다. 그는 지옥으로 갔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까? 축복 된 인생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이게 저주다. 바울은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 거야. 그래서 그가 한 일이 마가다락방교회를 없애는 일에 앞장을 섭니다.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일인지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실제적으로 말하면 마귀에게 이용당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까. 내가 죄인 중에 괴수였구나! 이런 고백을 하는 겁니다.

2. 하나님을 믿으라

마귀가 하는 짓은 너를 믿어, 네가 하나님이야.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그럴듯한 것을 주면서 하나님만 믿지 마라. 성경은 하나님을 믿으라는 겁니다. 왜 축복받을 이 백성들이 망했냐? 속은 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을 몰랐으니까요. 안 들었으니까요. 율법을 잘 지키면 돼. 경건하게 살면 돼. 그러면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한 분만 안 믿습니다. 성경 전체는 우리를 위해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겁니다. 다른 것은 다 잘하는데 그것만 안 믿습니다. 피 제사를 드려라. 그러니까. 피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 그 하나님은 안 믿고 피 제사만 열심히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망한 겁니다. 언약궤를 만들고 언약궤를 바라보고 따라가라. 그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신 하나님은 안 믿고 언약궤만 붙들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겁니다.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은 안 믿고 절기만 지키고 있는 겁니다. 이것을 종교인이라고 합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데 율법만 지키면 된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라고 했는데 성경만 붙들고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응답을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데 축복만 붙잡고 승리만 붙잡고 그래서 결국 망했다.

저는 어릴 때 저희 부모님이 산처럼 든든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희 부모님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나와 비슷하구나! 깨달았습니다. 참 제가 존경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어느 날 실수를 하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낙심했습니다. 저렇게 훌륭하고 존경하던 분이 저런 실수를 하다니. 저는 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 너는 믿을 만하니? 제가 보니까. 제 감정, 제 인격이 좋을 때는 한없이 좋은데 어느 날 상처를 받고 어떤 문제가 오니까.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겁니다. . 그래서 마13장에 보면 예수님이 천국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 그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 전 인생, 전 재산을 투자해서 그것을 붙잡았다.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지난주에 노회를 제주도에서 했습니다. 양양 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을 갔습니다. 참 좋은 세상이죠.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기풍 선교사님이 제주도에 최초 선교사입니다. 그 선교사님이 제주도 갈 때 배를 타고 갔겠죠. 시간이 오래 걸렸겠죠. 제주도에서 교회 탐방하였습니다. 그 교회는 이도정 목사님이 순교한 교회입니다. 이기풍 선교사님이 제주도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이분이 제주 출신으로 최초로 목사님이 된 겁니다. 이 목사님이 복음 운동하다가 순교를 당한 순교비가 있었습니다. 또 한 교회는 어떤 한 분이 육지에 와서 복음을 받은 겁니다. 복음을 받고 고향 제주도로 간 겁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쫓겨났습니다. 할 수 없이 한 지역에 들어가서 살면서 복음을 전하여 8명의 성도가 모이게 된 겁니다. 교회가 없으니까. 서로 같이 기도한 겁니다. 이기풍 선교사님이 제주도로 오기 1년 전에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세워진 교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현장을 보면서 이분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구나!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복된 것은 없습니다.

3. 하나님의 기준

18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 말합니다. 예수님, 내 형제가 나에게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할까요? 묻는 겁니다. 사람이 내게 죄를 짓는데 똑같은 죄를 일곱까지 용서한다. 쉬운 일 아니죠. 베드로는 자랑스럽게 얘기했겠죠. 우린 두세 번 용서하면 화가 나죠.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해라.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용서하는 기준이 한계가 일곱 번. 그런데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해라. 이 말은 기준이 없다.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이죠. 이게 다른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형제와 부모의 기준점이 다른 것을 봅니다. 부모는 끝까지 용서합니다. 그런데 형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친구는 형제보다 용서를 덜 합니다. 또 사회에서는 용서가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16장에 보면 탕자의 아버지와 탕자의 형의 기준이 다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만 해도 너무 행복하고 기쁜 겁니다. 그런데 탕자의 형은 기준이 행위입니다. 나쁜 놈, 못된 놈. 아버지 재산 가지고 가서 다 날렸어요. 부모님이 가진 기준과 형제가 가진 기준이 다릅니다. 또 친구가 가진 기준이 다릅니다. 사람 따라서 기준이 다릅니다. 만약 행위가 기준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믿고 행위가 기준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물에 빠진 아이를 건지려고 하는 사람은 이유가 없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마귀에 잡혀서 사주팔자 운명에 메여서 고통당하고 죽어가고 지옥으로 끌려가는 이 사람을 살려내는 데는 기준이 없습니다. 아무 조건 기준이 없습니다. 살려내야만 해야 합니다. 살려낸 다음에 잘잘못은 나중 문제입니다. 마귀에게 잡혀서 이 땅에서 고생하다가 결국 지옥으로 끌려가야 할 그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사람을 치유하고 사람을 용서하는 데는 기준이 없습니다. 기준으로 한다면 우린 여기에 못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꼭 옳은 겁니다.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내 기준이 옳다고 믿습니다. 베드로가 일곱 번 용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끝까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기준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양이 100마리 있는데 한 마리를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면 목사는 99마리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1마리 양을 찾으러 갈 것 아닌가? 그게 목자의 마음이고 심정이다. 그래서 99마리 양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고 잃어버린 1마리 양을 찾았을 때 목자가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는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 목자의 심정이 없으면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육신 적으로도 부모의 마음이 없으면 자식을 기를 수 없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없애고 마가다락방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섭니다. 그럼 바울의 마음 상태가 어떻겠습니까? 독해졌겠죠. 행복하고 기쁘지는 않았겠죠. 얼마나 그 사람 상태가 사납고 거칠고, 황폐해졌겠습니까? 남에게 못된 짓을 하는 사람 마음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겉으로는 큰소리치지만 그 마음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도와주고 살려주고 세워주는 것은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맹세하고 저주하고 도망갑니다. 살기 위해서요. 그때 베드로의 영혼은 어떻겠습니까? 비참하죠. 부끄럽죠. 그 영혼이 울고 있을 겁니다. 그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사랑이었습니다. 우린 그 사랑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그 은혜 그 사랑에 힘입어서 우리 과거처럼 하나님 모르는 영혼들 후대, 이 일을 지속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4. 영적 시간

그렇게 하려면 우리에게 영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힘을 얻으려면 우리에게 반드시 영적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밥 먹는 것이 괴롭다. 또 먹어야 하나? 몸에 건강 이상이 오면 밥 먹는 것이 괴롭습니다. 코로나 걸린 분들이 입맛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문제가 온 거죠. 내가 의무로 먹어야 한다. 뭔가 힘든 겁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은 밥 먹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우리가 육신을 위해서도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이 됩니다. 우리가 영적인 세계를 알면 영적 힘을 얻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상수리나무 숲에 들어가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의무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그럼 지속을 못 합니다. 베드로가 제9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6시 기도시간에 지붕에.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9시 기도회가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 성도들과 함께 하는 시간. 이 시간이 행복하다. 그래야 지속하지. 목사님이 하라고 하니까. 하면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다. 성도들이 같이 중보기도 하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힘든 일은 지속 못 합니다. 재미없는 일은 지속을 못 합니다. 그러나 행복하고 즐거우면 지속을 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한다. 하나님을 바라본다. 이거 자체가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2- 하나님의 집

1. 만물을 지으신 이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2. 장래에 말할 것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3.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4. 소망의 확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3- 그의 집이라

1. 지은 이

만물이 저절로 우연히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지은 분이 분명히 있다. 집은 누군가 필요해서 설계해서 건축해서 집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우연히 저절로 생겨난 것들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필요해서 만든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천지를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겁니다. 왜 창조하셨나요?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요. 이 땅을 정복하라고요. 이게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창세 전 우릴 택하신 겁니다. 왜 우릴 창세 전에 택하셨습니까?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인생 되도록.

2. 그리스도

집을 지으신 그 아들.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래에 오실 메시야를 설명한 그가 그리스도다. 구약성경에는 여러 모양으로 설명했지만, 그리스도가 실체로 오셨다. 그 피의 주인공이 오셨다. 언약궤의 주인공이 오셨다. 절기의 주인공, 율법의 주인공이 오셨다. 그가 그리스도.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로 오신 겁니다. 죄로부터 해방되는 분으로 오셨다. 마귀를 꺾으신 분으로 오신 겁니다. 그래서 우린 그 예수가 그리스도 됨을 믿고 내 인생의 주인으로 구주로 왕으로 모셨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제까지 내가 주인 되었던 것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나의 주인으로 왕으로 모셨습니다. 이게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들어와 계셔서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십니다.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저는 오늘 찬송가 151장을 선택했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한 일이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왕이다. 마귀의 일을 멸하신 왕이다. 사단과 지옥 권세를 꺾으신 왕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믿고서 내 눈이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왕 되신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꺾으시고 지옥 권세를 꺾으신 것이 우리에게 믿어지고 확인됐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참 기쁨 영원하도다.

3. 그의 집이라

하나님의 집. 지은 분이 계십니다. 지은 이가 있는데 우린 누구냐? 구원받은 우린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면 하나님이 관리하십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린 교만하다.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겁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이 땅에 내가 온 것이 아닙니다. 집을 지은 자가 있다. 하나님이 우릴 지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릴 보배로 존귀한 자로 세우신 겁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부활하심으로 나를 지으셨습니다. 이것을 알면 막 살지 않습니다. 자기 가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자기 가치를 모르니까. 아무렇게나 사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구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구나! 그래서 내 육신도 소중하구나! 내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주신 것이구나! 자식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그래서 소중한 겁니다. 잘못하면 내 자식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 그건 잘못된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다윗이 성전 지을 준비를 다 하고 하나님께 다 드리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하나님께 드렸을 뿐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내 인생, 내 생명, 내 물질, 기능, 재능 전부 다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내 인생 내 거야.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게 사단이 속이는 겁니다. 벌을 기르는 사람들 말이 벌이 아무리 강해도 여왕벌이 없으면 금방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왕벌이 있으면 굉장한 구성력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 능력과 우리 인격과 상관없이 그리스도가 왕이기 때문에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 겁니다. 사단이 무릎 꿇고 떠나는 겁니다.

4. 여호와의 제사장

저는 부흥을 묵상하면서 이번주는 61: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대신 하나님 앞에 고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가정에 제사장으로 우리 후대에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나를 세우셨습니다. 대신하는 자로 중보 하는 자로 세우신 겁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재물을 먹인다. 인생 책임진다는 겁니다. 증거를 주셔서 증인 되게 하신다. 말씀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행위가 아니고 사랑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 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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