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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예수를 보니 조회수 : 529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3-13
  첨부파일:   20220313.hwp(272K)

분류

주일예배

제목

예수를 보니

성경

2:5-9

일시

2022313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다 내게로 오라

1. 보좌의 축복

제가 아는 어떤 분을 만났는데 악수를 청했는데 악수하지 말자는 겁니다. 목사님, 속초에 코로나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통계에 의하면 8명 중에서 1명이라는 겁니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죠. 바이러스는 눈에 안 보입니다. 누가 걸렸는지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우린 이 세상을 살면서 참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안심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보좌의 축복을 모른다면 얼마나 어려운 시대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보좌의 축복으로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 어려움이 왔을 때 그가 숲속에 들어가서 제단을 쌓고 24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보좌의 축복을 누린 겁니다. 하나님은 그 문제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겁니다. 아브라함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병 318명을 주셔서 아브라함이 승리하게 합니다. 다니엘이 죽음에 위협이 왔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전에 행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해서 감사하며 기도한 겁니다. 보좌의 축복을 누리고 있었던 겁니다. 다니엘은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파송해서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보좌의 축복을 누리는 영적 상태를 만드는 겁니다. 우린 지금 9시 기도회 일천번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당연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서도 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겁니다. 제가 해외 사역을 돌아오는 길인데 바로 오는 비행기가 없어서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중간에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그 공황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겨우 앉을 자리를 찾아서 앉았습니다. 제 앞에 기둥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담요를 깔고 거기서 절을 하는 겁니다. 이슬람교도였습니다. 그 사람 많은 공황에서 정시기도를 하는 겁니다. 전혀 사람 의식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참 저 사람 대단하다. 이슬람은 하루에 5번씩 정시기도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메시지가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보좌의 축복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세상의 것만 바라보고 산다면 비참한 인간이 됩니다. 보좌의 축복. 이게 나에게 누려지고 우리 가정, 우리 후대, 우리 일터에, 우리 교회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이 보좌의 축복이 나에게 임하도록 하는 겁니다. 우리가 만약 기도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흑암이 덮치는 겁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보좌의 축복 누리지 못하면 신앙생활 실패하는 겁니다. 구원은 바뀌지 않지만 사단에게 이용당하고 속고 그래서 망하는 겁니다.

2. 믿음으로만

영적 세. 보좌의 축복은 믿음으로만 알게 됩니다. 이게 눈에 안 보이는데 믿음으로만 알게 됩니다. 영적 세계는 실재합니다. 어떤 사람은 귀신이 보입니다. 보통사람은 안 보입니다. 그래서 시달리고 무서워합니다. 보이는 사람에게는 실제인 겁니다. 우리가 악몽을 꿀 수 있습니다. 본인은 얼마나 힘듭니까? 가위눌리는 사람은 너무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영적 세계는 사람 눈에 안 보이니까. 안 보이는 사람은 뭐 그런 게 있어 하면서 안 믿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고통을 당합니다. 실제로 시달리고 눌립니다. 우리가 과거에 굿하고 제사 지내고 부적 부쳐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눈에 안 보이게 흑암이 역사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음에도 염려하고 불신앙하고 낙심하고 상처 속에 미움이 가득하면 눈에 안 보이게 흑암이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 사모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사모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쓰임 받으면 눈에 안 보이게 성경이 역사하시고 흑암은 무너지는 겁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좌의 축복이 누려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생각 속에 믿음이 역사하니까. 보좌와 연결이 됩니다. 이게 믿어지는 사람은 예배를 사모하고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그래서 믿어진다는 것은 은혜고 축복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훌륭합니까? 착합니까? 그렇지 않지만,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영적 세계가 믿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예배 사모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듣고 말씀 운동 사모하는 겁니다.

3. 다 내게로 오라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모르게 고통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삽니다. 저도 제 인생을 돌아보면 시골에 가난한 집, 질병, 우환질고가 끊임없었습니다. 그러니 불편한 겁니다. 가난은 불편한 겁니다. 병이 들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힘듭니까? 내가 아프지는 않지만 힘듭니다. 그러니까. 자꾸 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 것 같은데 나만 불행한 것 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저는 이게 마음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 앞에 나오고 교회에 나오면 굉장히 위로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내 삶에 중심이 되는 겁니다. 새벽에 교회 나오고 잠 깨면 아무 시간에 나옵니다. 마음이 좋으니까요. 낮에도 나가고 그랬습니다. 교회에 사찰 집사님이 청소하고 계시면 도와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종을 쳤습니다. 새벽에 낮 예배에 종을 쳤습니다. 교회에 종탑이 있습니다. 밧줄이 있어서 밑에서 치는 겁니다. 430분에 새벽기도 준비하라고 종을 칩니다. 그리고 5시에 본 종을 칩니다. 사찰 집사님은 교회 종탑 바로 옆에 방에서 주무시고 종을 치시는데 어떤 때는 저한테 새벽종 부탁을 하는 겁니다. 제가 여러 번 새벽종을 쳤습니다. 그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가는 시간이 고요합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겁니다.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제 마음이 평안하고 기쁜 겁니다. 참 이게 은혜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문제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참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15장에 보면 탕자가 나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놈은 나쁜 놈입니다. 유산 받아서 못된 짓만 하는데 다 쓴 겁니다. 돈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습니다. 돼지가 먹는 것도 못 먹는 형편이 된 겁니다. 그때야 아버지 집이 생각난 겁니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 집은 먹을 것이 있다. 우리 아버지 집에 종들도 먹고 사는데 내가 무슨 꼴인가? 그래서 아버지께 가서 종으로 써달라고 해야겠다. 갑니다.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죽은 자식이 돌아왔으니 너무 기쁜 겁니다. 그래서 저 아들에게 목욕시켜라. 옷을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잔치를 열어라. 그런 겁니다. 이 탕자가 편안했으면 아버지 앞에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처절하게 망한 겁니다. 처절하게 망한 것이 알고 보면 그 사람에게는 축복입니다. 처절하게 망한 것이 알고 보면 은혜입니다. 자기 방법이 안 통한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생각이 난 겁니다. 아버지 생각난 것이 축복입니다. 탕자가 무슨 생각 했겠습니까? 탕자가 나는 정말 못된 짓을 한 사람인데 아버지는 변함이 없구나! 나는 이렇게 못된 짓만 했는데 난 자녀구나! 자녀로서 사랑받고 있구나! 이것을 깨달은 겁니다. 이 탕자가 목욕을 했다. 좋은 옷을 입었다. 가락지를 꼈다. 잔치를 베풀었다. 그건 지나가는 것이고 따라오는 겁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구나! 난 하나님의 자녀구나! 그래서 우리가 다 내게로 오라. 이게 축복입니다. 응답입니다.

4. 전도 현장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 방황한다. 그래서 추수할 일꾼이 적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해라. 류목사님은 모든 성도는 70 지역을 놓고 기도해라. 그러면 70 제자가 나온다. 그러면 70 제자가 나온다. 그러면 70현장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올 수 있는 다락방. 플랫폼을 만들어라. 우리 인생이 영혼을 살리고 후대를 키우고 교회 세우는데 쓰임 받는 것은 그 어린아이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줘도 그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신 그 축복이 임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 현장에는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 많습니다. 귀신에게 속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앙과 질병에 빠진 사람이 많습니다. 완전히 흑암에 빠져서 어둠 가운데 살고 마음이 병든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 중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들 중에는 하나님이 구원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보기도하고 축복기도 하면서 인도받는 겁니다. 하나님이 루디아 마음 문을 열어서 바울의 말을 듣게 하셨습니다. 창세 전에 준비된 자가 있습니다. 이것을 찾는 것이 전도 현장입니다.

2- 예수를 보니

1. 장차 올 세상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천사들은 하나님의 종이니까. 자신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천사의 위치가 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죽음의 고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서 우리가 받을 저주, 고난을 대신 지신분이다.

3. 예수를 보니

그런데 그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가 보이게 된 겁니다.

4. 하나님의 은혜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구원받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3- 보이는 은혜

1. 잠시동안

이 말씀을 보면서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잠시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 그러면 잠시동안 이라는 말은 본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셉이 잠시동안 형제들에게 왕따를 당합니다. 본질이 아닙니다. 요셉이 잠시동안 노예로 갔습니다. 본질이 아닙니다. 요셉이 잠시 동안 감옥에 갔습니다. 본질이 아닙니다. 성경에 믿음의 사람들, 쓰임 받는 사람들은 잠시동안이 뭔지를 알았습니다. 잠시동안은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잠시동안 여기에 인생을 건다면 실패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왜 나밖에 모르고 성공, 물질밖에 모를까요? 잠시동안 좋으니까요. 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죄를 짓습니까? 잠시동안 좋다고 여기니까요. 우리가 영원한 것을 안다는 것은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2. 보이는 은혜

그래서 영적 세계 보이고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이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7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님이 재판장에서 그리스도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죽이려고 돌을 들어서 죽이려고 하는데 스데반에게는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무엇을 보느냐? 누구를 보느냐? 여기에 모든 축복이 담겨있습니다. 영적인 것이 보여 스데반이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 예수가 누굽니까? 우리에게 문제도 많이 일어납니다. 사건도 생깁니다. 여러 가지 환경도 있습니다. 이때 무엇이 보이면 될까요? 사단을 꺾으신 만왕의 되신 예수, 죄의 저주를 해결하신 만주의 주가 되신 예수, 지옥 권세를 꺾으시고 천국을 보장하신 예수. 그 예수가 보이면 승리합니다. 그 예수가 보이는 사람이 축복 된 사람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보려고 했다. 이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겁니다. 농부가 어느 날 빌린 밭에서 농사하다가 그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겁니다. 이것을 봤습니다. 이 보화를 보니까. 이 밭을 내가 사야겠다. 그래서 그의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이해를 못 합니다. 이 보화 밭을 발견한 사람은 남이 모르는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뭐가 보이는 것이 복일까요? 사람들이 마귀의 자녀구나! 저 사람이 죄와 허물로 죽어있구나! 세상 풍습에 메여서 살고 있구나! 지금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끌려다니고 있구나! 본질상 진노의 자녀구나! 이게 보이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결국, 이 사람이 지옥으로 끌려갈 텐데. 그럼 이 사람을 어떻게 살릴까? 기도가 안 나옵니까? 이게 안 보이면 그 사람 잘 먹고 잘사는데. 나보다 더 좋은 옷 입고 더 맛있는 것 먹고 잘 사는데. 영적인 눈이 열리면 저 사람이 육신 적으로는 잘 살아도 영적으로는 어떤 상태인지가 보입니다. 8장에 보면 에티오피아 국고를 맡은 자. 재정 담당한 자. 성공한 사람이죠. 이 사람이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배하러 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갑니다. 흔들리는 마차 타고 돌아가는 길에 이사야를 읽고 있습니다. 빌립 집사님이 에티오피아의 성공자에게 다가가서 묻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것을 깨닫는가? 그 사람이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깨닫습니까? 내 마차에 타서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그 예수가 누군지를 가르쳐 준 겁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불신자나 신자나 전부 전도 대상자입니다.

3. 영광과 존귀의 관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가 보였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이는 겁니다. 왕이 되셔서 사단을 꺾으셨구나! 그 예수가 제사장이 되셔서 죄의 저주를 해결하셨구나! 그 예수가 선지자가 되셔서 지옥 권세를 꺾으시고 천국을 보장하셨구나! 그 예수. 그 예수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것이 보인 겁니다. 야곱이 늘 들었던 것, 하나님 살아계셔. 그런데 듣긴 들었는데 안 믿었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가는 길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인 겁니다. 28:16 과연 하나님이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구나! 그래서 야곱이 서원합니다. 기름을 붓고 거기다 제단을 쌓고 서원합니다. 하나님 제가 돌아올 때는 이곳이 성전이 될 겁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겁니다. 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뭔가 보이니까. 결단합니다. 대상29장에 보면 다윗이 뭐가 보였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모든 것을 들여서 성전 짓는데 올인 합니다. 내가 왕이 된 것도 과정이다. 내 인생은 성전이다. 그러던 다윗이 대상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뭔가 본 사람입니다. 뭔가 보니까. 그 영광의 주님이 보이고 왕 되신 주님이 보이니까. 거기에 인생을 올인 하는 겁니다. 우리가 뭔가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복을 받는다. 그 얘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찬송가 96장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4절에 온 교회의 머리와 온 세상의 구주시며 모든 왕에 왕이시며 심판하신 주님 되고. 예수가 나의 왕. 나의 주인. 이게 보이는 인생은 복된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을 거기에 올인 합니다.

4. 내 보배니라

부흥을 소원하면서 33:6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실 것이고 풍성함을 주실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우린 질그릇처럼 연약하지만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사단을 꺾으시고 죄의 저주를 해결하시고 지옥 권세를 꺾으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영원히 함께하시고 인도하시고 천국까지 보장하십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내 보내니라. 말씀 정리합니다. 다 내게로 오라. 주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주님이 보이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가 나의 왕, 나의 주인 된 사람이 보배로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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