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큰 구원 | 조회수 : 45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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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예배 |
제목 |
큰 구원 |
성경 |
히2:1-4 |
일시 |
2022년 3월 6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전도 운동
1. 기도의 행복
▶ 이경순 장로님께서 양양에 한 노인을 돌보고 계신 데 그분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이분은 사업을 크게 하던 분인데 그 재산을 자식들에게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은퇴하고 병이 심해진 겁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이분을 귀찮아한다고 합니다. 돈 쓰는 것도 아까워하고 그래서 돌볼 마음이 없는 겁니다. 그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자식에 대한 배신감으로 눈물 흘리겠죠. 그리고 자식들도 뭔가 모르게 힘든 일이 있으니까. 힘들겠죠. 저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답답하고 인생이 서글프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 동서가 장로님입니다. 그런데 가족 카톡이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가족들이 그 시를 읽고 공감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고 떳떳하고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 애당초 사치스러운 자존심을 버린 지는 오래구나!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소리가 없고 소리가 없으니. 목이 멜 수밖에 용기를 잃은 것도 열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많아서 살아가는 일은 버겁고 무엇하나 만만치 않아도 책임이라는 말로 인내를 배우고 도리라는 말로 노력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눈물이 없으니 가슴으로 울 수밖에. 아버지가 되어 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약해서도 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서 운다.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다. 하늘만 알고 아버지만 아는. 이런 내용의 시입니다. 이 땅에 아버지가 고달프다. 이게 아버지만 그렇습니까? 어머니도 그렇죠. 이 땅에 모든 부모는 나름대로 자식들 앞에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이런 노력을 하고 삽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도의 행복이 없다면 하나님 안에서 기도함으로 얻는 영적 힘이 없다면 인생을 헛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보좌의 능력. 하나님 나라의 배경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인생은 참 보잘것없는 것이다. 여겨집니다.
2. 항상 질문
▶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 앞에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뭘까? 하나님의 계획이 뭘까? 하나님의 소원이 뭘까? 이런 질문하게 되면 우리 생각이 바뀌게 되죠. 하나님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 노예 생활하다가 하나님 은혜로 거기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고 빠져나오게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광야 길을 가다 보니까.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신앙하고 그렇게 40년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문제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어려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살아가다가 실수 한번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잘못한 것 없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불신앙 한 번도 안 했어.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어쩌다가 실수하고 어쩌다가 불신앙하고 잘못한 것이 아니고 하는 일마다 실수하고 하는 일 마나 반복해서 잘못하고 하는 일마다 불신앙 한다면 심각한 겁니다. 사람이 살면서 쓸데없는 말을 많이 듣고 삽니다. 이상한 말, 틀린 말을 많이 듣고 삽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굉장히 옳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말을 통틀어서 우리 믿음이 떨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혹시나 쓸데없는 말, 틀린 말을 하고 옳은 말을 한다고 하면서 내 주변 사람들의 믿음을 떨어뜨린다면 그건 실패한 인생입니다. 잠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그 경우의 합당한 말, 그 말은 은쟁반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은쟁반에 금 사과가 있는 것처럼 귀하다. 류목사님이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굉장히 가난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툭툭 합니다. 그런데 장로님 한 분이 그냥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믿음의 말을 해 주셨다.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데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 장로님이 참 고마운 분이구나! 마음에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많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불신앙으로 사람의 믿음을 떨어뜨린다면 그건 저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위대한 일, 대단한 일, 자랑할 만한 일을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실제 내 삶 속에서 이렇게 조금만 사람을 세워주고 힘을 주고 믿음을 주는 말을 하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3. 추수할 일꾼
▶ 마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러 마을을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무리를 보고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목자가 없는 양처럼 고생한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추수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추수할 일꾼이 없다. 그러시면서 마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중풍 병자가 있습니다.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침상에 누운 대로 그대로 예수님 발아래 놓았습니다. 추수할 일꾼은 저 사람이 중풍병이네. 안 됐네. 좋은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중풍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야 살 수 있다. 그래서 침상을 들고 예수님 앞에 내려놓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고 추수할 일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중풍 병자가 누운 침상 그대로 예수님 앞에 들고 오는 동안 여러 가지 힘든 일도 장애물도 사람들의 말도 있을 겁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이 뭐냐? 예수님 앞에 가는 겁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보고 추수할 일꾼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땅에 필요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저 사람 참 안 됐다. 불쌍하다. 동정하는 사람이 필요하죠. 그런데 그 동정심을 넘어서 이 사람이 예수 앞에 가야만 살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이 뭔가? 힘들 수도 손해 볼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 앞에 가는 사람이 추수할 일꾼입니다. 지금 이 땅에 많은 사람이 있는데 저 사람 참 불쌍하다. 거기서 끝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사람이 없다. 이 추수할 일꾼을 구하라. 지금 이 땅에 문제가 뭘까요? 농사하는 사람의 관심은 밭에 뿌린 씨에 있습니다. 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람이 불면 어떻게 할까? 거기에 모든 관심이 있습니다. 농부니까요. 그게 힘들 수도 있습니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비가 오면 바람이 불면 내가 어떻게 하지. 그것을 알고 가는 겁니다. 왜 이렇게 하죠? 농사하는 사람은 이렇게 해야만 먹고 사는 겁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곡식 단을 들고 오리라. 이것을 알기 때문에 농부는 일하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추수할 일꾼입니다.
4. 전도 운동
▶ 류목사님이 원단부터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70 제자를 찾아라. 지역에 70현장을 그림 그리고 여기서 복음 운동 지속할 70시스템을 세우고 여기서 70 제자들 찾아내라. 그게 전도 운동이다. 교회 부흥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교회가 힘이 있어야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락방을 열어라. 그래서 70 제자를 찾아내라.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이런 제자를 세우고 현장에 숨겨진 자를 찾고 그래서 하나님이 작정한 사람을 찾아내라. 지금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니까. 우상에 빠져있고 점술에 빠져있다. 거짓된 행복이 참 행복인 줄 알고 거기에 올인하고 있는 겁니다. 나의 인생이 내 집이 내가 하는 일이 내 후대가 전도 운동 속에 있다면 가장 복된 겁니다. 지난주 신문에 보니까. 게임 회사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나이가 54세입니다. 그런데 하와이에 있다가 죽었습니다. 우울증 환자입니다. 그 사람 재산이 어느 정도냐. 우리가 하루에 1억씩 100년을 쓰고도 남는 재산이 있는 부자입니다. 그 돈이 있으면 의사 마음대로 부르고 좋다는 약도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마음의 병은 못 고칩니다. 그 사람의 영적인 병은 못 고칩니다. 우리가 영혼을 살리고 후대를 키우고 교회를 세우는 것은 얼마나 복되다는 가치를 모릅니다. 왜 우리가 건강해야 하고 밥 먹고 공부하고 성공해야 합니까? 그게 목적입니까? 그러면 얼마나 벌겠습니까?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우리 인생이 전도 운동에 같이 흘러가지 않으면 인생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겁니다.
2- 큰 구원
1. 들은 것
▶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큰 구원
▶ 천사들을 통하여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3. 뜻을 따라
▶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4. 함께 증언
▶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3- 나의 노래
1. 마땅하니라
▶ 그러면 뭐가 마땅하다는 겁니까? 들은 말씀을 간절하게 마음에 딱 담아서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럼 우린 무엇을 들었고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들은 만유의 상속자입니다. 이 아들은 모든 세상을 지으신 분입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입니다. 이 아들은 본채의 형상, 이 아들은 능력으로 말씀으로 말 문을 붙잡고 계신 분입니다. 이 아들은 죄를 정결케 하신 분입니다. 이 아들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분입니다. 이 아들은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간절하게 붙잡고 이것을 흘러가지 않도록 해라.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시작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우리 노력으로요. 열심히 해서요. 경건으로 아닙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신 그 예수가 그리스도구나!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받을 죄의 저주와 재앙을 십자가상에서 못 박히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해결하신 예수. 결국, 이 땅에서 실컷 살다가 지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데 지옥의 저주를 꺾으시고 천국의 소망을 주신 예수. 그분이 그리스도이신 것이 믿어졌고 깨달아졌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우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 그리스도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체험해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을 신비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부족하니까. 뭔가 율법을 잘 지켜야 해. 그것을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로 충족이 안 되니까. 뭔가 구제를 해야 하고 뭔가 좋은 일을 해야 해. 그것을 박애주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아니고 바르게 정의롭게 살아야 해. 그것을 정의 주의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리스도가 부족한 겁니다. 그러니까 자꾸 다른 것을 찾는 겁니다. 다른 복음은 없고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교회가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자꾸 다른 것을 말하는 겁니다. 성도들도 그리스도로 행복하지 않고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처럼 자꾸 찾아가는 겁니다. 교회 본질은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 양심적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이 땅에 그 어떤 신비한 것도 율법도 정의도 박애도 마귀를 못 이깁니다. 이 땅에 그 어떤 것도 죄로 인한 저주를 해결 못 합니다. 신비도 율법도 정의도 박애도 지옥 문제를 해결 못 합니다. 그런데 자꾸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사단에게 속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후대가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교회가 살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전부 저주받는 겁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속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마땅하다. 들은 것을 가슴에 새겨라. 이게 마땅한 것이다. 자꾸 다른 것이 들어와서 흘러간다.
2. 확증하라
▶ 그래서 확증하라는 겁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빠져나왔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왜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고 속국이 되었습니까? 반복되었습니다. 왜요?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겼다. 구원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구원의 높이와 넓이와 가치를 모르니까. 다른 것 하다가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고 속국이 되었다. 그래서 그 보응 받는 것을 봤잖는가? 성경을 통해서 수없이 봤잖는가? 노아시대 방주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다 죽었다. 모세 시대에 피 바른 사람은 승리했고 피 안 바른 사람은 실패했다. 그런데 왜 불평하고 불신앙하고 원망하냐? 그래서 세 절기를 지켜라. 어떻게 구원받았냐?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하냐? 어떻게 천국까지 보장하냐? 그것을 지키라는 겁니다. 지키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너희가 언약궤를 바라보고 따라갈 때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너희가 성막을 바라보고 성막 중심으로 살 때 가장 축복받지 않았느냐? 그것을 잊지 마라. 확증하라. 너희가 할례를 받았다. 너희는 절대 망하지 않는 언약의 백성이다. 사무엘과 다윗은 성전 짓는 것이 인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오고 가는 세대에 그리스도를 바라봐야만 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왜 일천 번째를 드렸습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모든 저주를 끝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분이 지금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각인 뿌리 체질 되게 하라.
3. 성령으로
▶ 성경에 많은 표적과 기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나누어 주신 것을 그들과 함께 증언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기적과 이사들과 권능과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설명하는 겁니다. 그 기적과 이사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신다. 기적이 목적이 아닙니다. 구원을 설명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이렇게 승리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렇게 보장하신다. 그거 성령께서 알게 하신다.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는 영원합니다. 누구도 뺏어갈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증거 하십니다.
4. 나의 노래
▶ 저는 부흥을 사모하면서 사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입니다. 저는 허무함이 많이 밀려오는 사람입니다. 제가 과거에 부른 노래를 보니까. 외로운 노래, 허무한 노래, 슬픈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게 제 인생이었습니다. 제 인생이 외롭고 허무하고 슬픈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노래를 택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는 의도적으로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힘이 나고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사명이 있는 노래를 부릅니다. 저는 슬픈 인생을 노래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외로운 노래, 허무한 노래를 부르면 거기에 빠져드는데 내가 그런 체질인데 더 이상 나를 거기에 넣으면 안 되겠다. 누가 우릴 구원하셨죠? 하나님. 정말 우리의 힘은 어디서 옵니까? 이 땅에 살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가 있죠. 얼마나 슬프고 아픕니까?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신뢰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그때 오는 슬픔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도 아픈데 내가 이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이러면 슬픕니다. 정말 우리의 힘이 어디서 옵니까? 나에게서 옵니까? 어떤 사람에게서 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이 땅에 살면서 사람 앞에 큰소리치고 대단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숨기고 삽니다. 나는 괜찮아. 큰소리치고 삽니다. 그런데 양심으로 들어가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린 떨고 있잖아요. 정말 누가 나를 구원하고 누가 나에게 힘을 주시고 무엇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노래 부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 나는 하나님의 자녀. 이게 제가 불러야 할 노래입니다. 저는 오늘 238장을 선택했습니다. 나 속죄함을 받은 후 주를 찬미하겠네. 주밖에 찬미할 분이 없습니다. 이게 내 노래입니다. 시57편에 보면 사울 왕이 군대 3천 명을 끌고 다윗을 잡으려고 옵니다. 다윗이 굴로 도망갔습니다. 3천 군대가 굴을 포위합니다.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다윗이 고백합니다. 다윗을 잡으려고 그물을 다 쳐놓고 다윗을 죽이려고 웅덩이를 파놓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그중에 빠졌도다. 누가 이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이때 다윗은 노래합니다. 시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말씀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 추수할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신분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 땅에서 확증할 것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노래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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