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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다함이 없으리라 조회수 : 480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2-27
  첨부파일:   20220227.hwp(256K)

분류

주일예배

제목

다함이 없으리라

성경

1:9-14

일시

2022227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다함이 없으리라

1. 어느 길에 서 있는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과 방향 맞는 것이 복된 길이다. 그게 성경에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결국은 마귀의 길에 섭니다. 하나님 떠나서 마귀의 길을 따라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짜 성공 아닙니다. 실패입니다. 우상을 섬기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건 저주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망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하게 하려고 오신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처음부터 너는 복의 근원이야. 그러면서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다른 길을 가다가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합니다. 그래서 깨닫고 돌아옵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습니다. 모세가 피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이건 모세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말씀을 하라고 전달자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 길이 사는 길입니다. 축복의 길이고 승리의 길입니다. 전달자가 모세가 훌륭하냐. 잘났냐. 깨끗하냐. 실수가 없냐.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 피 제사만 사단을 꺾고 죄의 저주를 해결하고 피 제사만 지옥 권세를 꺾는다. 그 길을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서 백성들에게 말해주라는 겁니다. 그런데 모세가 사람이니 실수도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이방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러니까. 형 아론과 누가 미리암이 잘못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죠. 그런데 하나님은 아론과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게 합니다. 모세가 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아론과 미리암을 문둥병 걸리게 합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모세에게 고라와 그를 따르는 250명이 와서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땅을 갈라서 고라와 250명을 생매장해서 죽입니다. 이 피 제사를 방해하는 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지적하는 것은 잘못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 보실 때는 피 제사를 방해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둥병에 걸리는 겁니다. 고라의 자손이 모세에게 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땅을 갈라서 생매장합니다. 피 제사를 방해하는 것은 저주다. 하나님은 피 제사에 방향 맞추고 따라가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고 응답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힙니다. 이때 사무엘이 미스바 운동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우상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 블레셋을 하나님이 꺾으시고 사무엘의 말이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모든 것을 회복하는 축복이 임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간다면 그건 최고 축복입니다. 우리는 많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 있는가? 이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다윗은 성전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그럼 다윗 인생을 하나님은 완전히 보장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따르는 자들을 다 승리했습니다. 다윗이 훌륭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방향이 맞는 겁니다. 그래서 1:1-2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래서 16: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선한 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우리는 이 땅 살면서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추고 사는 겁니다. 악한 것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아는 것은 아무런 관심이 없고 하나님과 반대되는 일만 찾아서 합니다. 그게 저주입니다. 성경은 바리새인의 길과 마가다락방 성도의 길을 비교합니다. 육신 적으로 보면 바리새인들이 훨씬 훌륭하죠. 그런데 그들은 저주를 받습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연약하고 실수하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영혼 살리고 후대 키우고 교회 세우는 일에 방향 맞춥니다. 이게 복입니다. 우리는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린 먹고 마시는 모든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드러나게 하는 일을 하라. 그게 복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을 하는데 하나님을 낮추고 하나님의 방향을 막는 것을 저주다. 이게 성경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2. 영적 상태

광야 40년을 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신앙합니다. 영적 상태가 병든 겁니다. 그래서 광야 가는 길 동안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세 절기를 통해서 너희가 어떻게 구원받았냐? 유월절.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 오순절. 너희가 농사해서 추수한다. 천국이 너희 것이다. 수장절. 이것을 지켜라. 왜 지키라는 겁니까? 영적 상태입니다. 언약궤를 바라봐라. 그게 영적 상태입니다. 성막을 짓고 성막 중심으로 살고 성막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게 영적 상태입니다. 이 백성들은 반드시 가나안 땅에 가야 할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오고 이것을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면 되는데 문제만 생기면 원하고 불평하고 불신앙하고 문제가 문제가 아니고 영적 상태가 이미 황폐해진 겁니다. 우리에게 정말, 이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영적 상태가 되면 나머지는 따라옵니다. 그래서 나를 점검해 보세요. 우린 지금까지 교육받고 온 것이 옳은 말, 바른말을 해야 한다. 배웠습니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잘 점검해 보면 옳은 말, 바른말, 그게 내 영적 상태를 든든하게 세워준다면 복입니다. 그런데 옳은 말, 바른말을 한다면서 다른 사람을 까고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그러면 그 영적 상태는 어떻게 됩니까? 이것을 사람들이 모릅니다. 갈렙이 45년 동안 무엇을 붙잡았을까요? 세상이 줄 수 없는 근원적인 힘이 있으니까. 불평하지 않은 겁니다. 갈렙은 얼마든지 불신앙하고 원망할 수 있고 비교의식 속에 좌절할 수 있고 낙심할 수 있는데 45년 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영원한 언약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 상태가 황폐해지면 모든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와도 영적 상태가 충만해 지면 모든 것이 발판이 되고 디딤돌이 되는 겁니다.

3. 기도의 흐름

그래서 다윗은 평상시 기도를 합니다. 다윗을 보면 어린 시절에도 목동으로 생활합니다. 다윗의 삶을 보면 주위에 얼마나 배신자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윗 인생을 보면 내가 항상 여호와를 내 앞에 모심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다윗은 자기의 기도에 리듬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왕은 과정입니다. 다윗의 인생 방향은 성전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모든 축복과 응답과 역사는 전부 성전 짓는데 드립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께 받는 것 드렸을 뿐입니다. 대상29:17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백성들이 자원해서 하나님 앞에 성전 짓는데 드리는 겁니다. 그것을 보면서 다윗은 너무 기쁜 겁니다. 우리가 기도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지금 9시 기도회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자. 열심히 하자. 물론 포함되어 있죠. 그러나 기도의 흐름 속에 있자는 겁니다. 기도의 흐름을 타자는 겁니다. 이게 우리가 인도받는 길입니다. 불신자는 세상 풍속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불신앙하는 사람들은 불신앙의 흐름 속에 있는 겁니다. 그게 안타까운 겁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은 복음의 흐름 속에 있고 믿음의 흐름 속에 있고 전도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종교의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복음과 언약과 세계복음화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얼마나 훌륭하냐. 똑똑하냐. 바르냐.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흐름이 잘못된 바른 것, 흐름은 잘못된 똑똑한 것, 흐름이 잘못된 어떤 것은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흐름, 전도의 흐름, 언약의 흐름, 살리는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9시 기도회를 통해서 기도의 흐름 속에서 사람을 축복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흐름 속에 나를 드리자는 겁니다.

4. 보좌화의 축복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정말 복된 자입니다. 이것을 누리는 것을 보고 보좌화의 축복이라고 합니다. 9장에 보면 침상에 누운 앉은뱅이를 데리고 예수님 발 앞에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믿음을 봤습니다. 그래서 중풍병자에게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중풍 병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 불쌍한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 앞에 가야만 해결된다. 그 믿음이 있는 겁니다. 믿음은 축복입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믿음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복을 받은 사람이구나!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나쁜 사람이 아닌데 안 믿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믿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믿음이 없으면 내 방법으로 내 수단으로 삽니다. 그게 나쁘다 좋다. 이 말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겁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도 가치가 없고 기도도 신통치 않고 그런 겁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예배드려야지. 기도해야지. 영혼 살려야지. 이것이 하나님 주신 믿음입니다. 우리가 정말 땀을 흘리고 수고한 돈을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그것을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지금 보좌의 축복이 임했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겁니다. 중풍 병자 병자와 이 사람을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 보좌의 축복이 임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럽니다. 운명이 해결되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있었던 죄와 재앙과 운명에 붙들렸던 그 현장으로 돌아가라. 증인이다. 우리에게 이 축복이 와 있습니다.

2- 다함이 없으리라

1. 기름을 주께 부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 기름을 부었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2. 땅의 기초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창조자다.

3. 다함이 없으리라

주께서 지은 것, 옷과 같이 낡아지고 의복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이렇게 다 변하는데 주님은 영존할 것이다.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4. 모든 천사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3- 일곱날의 빛

1. 기름부음 받은 자

하나님께서 아들 되신 예수께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사단을 꺾으신 왕이다. 죄의 저주를 생명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을 해결하신 제사장이다.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선지자다. 그러니 천사와 비교할 수 없는 겁니다. 천사의 활동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런데 천사는 구원자가 아닙니다. 천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다. 이건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천사가 사단을 꺾습니까? 죄의 저주를 해결합니까? 지옥 권세를 해결합니까? 그리스도만 사단을 꺾습니다. 죄를 해결하고 지옥 운명을 해결합니다. 바울이 이것을 몰라서 내가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고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 착각한 겁니다. 그래서 메시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말하니까.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그 교회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왜요? 그리스도를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분이 나를 구원하셨구나! 이게 하나님 은혜로 깨달아졌습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 한 분 몰라서 평생 우상 섬기고 귀신 섬기고 그리스도 한 분 몰라서 내가 마귀 자녀인 것도 모르고 세상 풍속을 따라서 그렇게 열심히 바르게 최선을 다해서 살다가 지옥에 끌려갑니다. 또 교회를 다닌다고 성경을 안다고 헌신한다고 충성한다고 구제한다고 다 하는데 그리스도 한 분 몰라서 종교 생활하다가 망한다. 억울한 겁니다. 그리스도 모르는 것은 저주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았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2. 주는 여전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어느 날 없어집니다. 옷과 같이 낡아지고 의복처럼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직 주는 영존하신다. 오직 주는 여전하시고 연대가 다함이 없다. 여전하다는 동일하다. 다함이 없다는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변함이 없다. 영원하시다. 우리가 변하는 것, 없어지는 것, 흔들리는 것을 붙잡고 산다면 그건 불행입니다. 인생을 드려서 시간과 마음과 정성과 물질을 다 드려서 우상을 섬겼다. 그런데 지옥으로 갔다. 이거 얼마나 불행한 겁니까? 평생 열심 최선을 다해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발버둥 쳤던 바리새인들은 종교 생활하다가 결국 지옥으로 끌려갔다. 인생 속은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는 일을 보면 예수님께 계속 시비를 겁니다. 그 후손이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찬송가 488장을 선택했습니다. 주 나에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리스도만 영원한 반석입니다.

3. 상속자

그래서 우린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와 계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습니다. 왜요? 우린 구원받은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우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가 임하게 됩니다. 그 말은 상속자라는 말입니다. 사극을 보면 아무리 높은 영의정도 어린 왕자 앞에서는 저하 그러면서 절을 합니다. 왕자가 영의정한테 절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높고 연세 많고 심지어 왕자를 가르쳐준 스승도 왕자 앞에는 무릎 꿇고 왕자를 길러준 유모도 왕자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게 상속자입니다. 우린 질그릇처럼 연약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구원받은 상속자인 우리를 섬기라고 보내셨습니다. 이게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생명으로 계십니다. 영원한 언약입니다.

4. 일곱날의 빛

부흥을 묵상하면서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 구원받은 우리의 상처를 싸매 주십니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맞은 자리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고쳐주십니다. 그래서 달빛은 햇빛같이 바꾸십니다. 그 햇빛은 일곱 날의 빛과 같이하겠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싸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맞은 자리를 고쳐주십니다. 하나님은 달빛을 햇빛으로 바꿔주시고 햇빛을 일곱 배가 되는 일곱 날의 빛으로 바꿔주신다. 완전히 회복하게 하겠다. 완전히 증인으로 세우겠다. 주님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는 겁니다. 어둠에서 광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꿔주시는 겁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마귀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꿔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살리고 가정으로 살리고 현장 살리고 교회 살리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보좌화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영적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는다. 상속자 된 우리를 하나님은 완전히 회복시키셔서 증인 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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