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녹취
•홈  >  메시지  >  강단녹취
  제  목 : 영접의 축복 (요 1:9-13) 조회수 : 1800
  작성자 : 이길근 목사 작성일 : 2004-07-15
  첨부파일:   주일녹취040704.hwp(35K)
2004. 7. 4 하나로교회 주일메시지
■ ■ ■■■■■■■■■■■■■■■■■■■■■■■■■■■■■■
영접의 축복 (요 1:9-13) / 이길근 목사
■ ■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이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서론>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이 사실을 꼭 확인하셔야 한다.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우리를 보실 때 너무 기뻐서 심히 기뻐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인 것이다. 실감을 하시기 바란다. 창조하실 때부터 복된 존재로 창조된 원래부터 복 받은 자이다(창 1:27-28). 하나님과 대면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문제가 왔다.

1. 깨어진 문제
이 축복된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모든 축복을 주셨는데 한가지만 금하셨다. 선악과를 먹지말라고 하셨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단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 먹도록 속였다.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속삭거린 것이다. 사단의 말을 계속 듣다보니 불신앙이 하와의 마음속에 심겨진 것이다.

1) 깨어진 질서
하나님과의 모든 조화가 깨어졌다. 질서가 깨어지면 이 때부터 모든 문제가 온다. 하나님이 이 땅을 만드실 때부터 질서로 만드셨다. 나무는 뿌리를 땅 속에, 물고기는 물 속에, 새는 공중에, 인간은 영적 존재이므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축복을 누리도록 만드셨다. 결국은 인간 내면 깊은 속에 외로움이 들어왔다. 원래 인간은 외로운 존재가 아니다. 지금 이 땅의 심각한 문제가 외로움이다.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고 있는데 왜 이런가. 노인은 노인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외롭다.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든다. 뭔가 모르게 허무해 지는 것이다. 여기에 뭔가 사로잡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그렇다. 궁극적인 외로움이 있는 것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절대적으로 행복이 없다.

2) 깨어진 관계
평안도 소망도 참된 안식과 기쁨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니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가 없다. 죄 때문이다. 이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인간과 인간 사이를 끊어놓았다.

3) 깨어진 상태
인간은 영적존재로서 하나님과 늘 교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존재인데 완전히 그 영적인 기능이 마비되었다. 성경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엡 2:1)고 표현을 한다. 그 영이 저주를 받아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

4) 인간의 해결 방법
그래서 이 운명에서 해결 받으려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 결국은 지옥을 향한다. 여기서 발버둥치며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것이 점치고 굿하고 우상숭배한다. 믿어보려고 애쓴다. 어떤 이는 시달리고 눌린다. 점점 상태가 더 심해져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지면서 불안하고 허무하고 외롭고 쓸쓸해진다. 불면증, 스트레스, 비교의식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러면 여기서 끝나는가?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적 행복이 없으므로 육신은 점점 무너진다. 가정생활도 재미가 없다. 사람은 아무리 예쁘고 잘 났어도 한 달만 같이 살면 싫증나게 마련이다. 육신이란 게 이렇다. 상대편이 영적 존재이고 하나님의 형상 닮은 복 있는 존재라는게 안 보여지면 짐승과 똑같은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가정생활, 사회생활, 인간관계가 제대로 되지가 않는다. 내세의 소망이 없으니 삶의 의미도 가치도 없다. 돈 열심히 벌었는데 벌고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중년쯤 되면 철이 드는데 몸은 다 망가지고 돈 밖에 없으니 타락하고 방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에겐 정상적인 행동이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될 수밖에 없다.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그러다 어느 날 눈을 감았는데 지옥이다. 그 후손도 부모가 살아왔던 것을 그대로 따라 산다. 우상숭배 저주를 계속 받고 산다. 이 저주에서 빠져나오려고 종교를 믿고 산다. 위안을 받으려고 열심을 다하지만 가면 갈수록 더 불안해 진다. 잡히는 것이다. 종교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아니다. 선행은 좋은 것이지만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나와 상관없이 내게 와 있는 원죄와 조상들의 우상숭배죄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된다. 여기에 사단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 문제는 사단이 꺽여져야만 한다. 사람들이 이것을 모른다. 눈에 안 보이는 영적존재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방법
그래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

1) 하나님의 방법
우리는 이런 은혜와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 모든 문제에서 해결되는 길을 주셨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를 통해 해결자를 보내겠다고 하셨다. 수많은 왕, 선지자, 제사장, 모형들을 통해서 약속하셨다. 약속하신대로 하나님의 때가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오셔야 했기 때문에 처녀의 몸으로 오셨다. 인간을 사단과 죄와 지옥 권세에서 건져주시려 오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지옥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매여 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려 오셨다. 이 분이 예수님이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와 저주와 재앙을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 상에서 다 지셨다.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인간의 모든 문제를 100% 완전히 해결해 놓으신 것이다. 이 증거로 부활하셨다.

2) 그리스도
바로 이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① 참 선지자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성경의 모든 예언자와 상징과 예언과 비유는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창 3장 문제가 왔을 때 ‘여인의 후손’, 창 6장 ‘방주’, 창 12장 ‘가나안 땅의 비밀’ 모두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의미한다. 구약의 모든 메시지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있다, 그 주인공이 예수이시다라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참 선지자라는 뜻이다.

② 참 제사장
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참 제사장 되셔서 인간의 모든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다는 것이다. 우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 문제가 십자가 상에서 해결됐다. 참 감사한 일이다. 다시금 죄책감에 눌릴 필요 없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끝난다.

③ 참 왕
참 왕이 되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다(요일 3:8).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참 왕이 되신 것이다.

3) 나에게 성취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거는 나도 더불어 마시리라(계 3:20) 하셨다. 우리는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말씀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고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나의 맘속에 모시는가. 예수가 그리스도, 예수가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요,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이요, 마귀를 꺽으신 만왕의 왕이신 것을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기도로 내 마음속에 모실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 때 하나님의 생명이 심기워지고 풍성한 축복이 나타나는 것이다.

3. 영접의 축복

1) 영접의 축복
영접의 축복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 하여서 구원을 받는다. 영접한다는 것은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식, 모든 지혜, 보화가 감취어져 있어서(골 2:2-3) 하나님의 모든 지혜, 지식, 보화가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영접의 축복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운명에 매여있을 필요가 없다. 과거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흑암의 나라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완전히 옮겨졌다.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길은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고백하는 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면서 아줌마, 아저씨 취급을 한다면 불효자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 영접이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받은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2) 생명의 축복
영접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마음속에 심기워진다. 오늘 성경말씀대로 참 빛, 창조의 빛이 생명으로 우리 안에 들어온 것이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창 3장 타락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하는 생명의 축복을 가진 것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계신 것을 꼭 믿고 확인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신분이 수직 상승을 하는 것이다.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진 것 때문이다. 이 때부터 나의 몸도 소중하기 때문에 몸 관리도 잘해야 한다. 너무 술도 많이 먹지 않고 나쁜 음식도 자제하시기 바란다. 아이를 가진 엄마는 태교를 잘 하려고 애쓴다. 태중에 생명을 가져도 이러한데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심겨졌다.

3) 삶의 축복
삶의 모든 부분에 실질적인 변화와 축복이 일어난다. 어느 집사님이 예전에 저와 함께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남편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그 남편이 복음을 받으려하지 않자 그 집사님이 그러시는 것이다. “당신이 알지 않냐. 당신하고 수십년 살면서 내가 편두통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냐. 내가 예수님 영접하고 편두통이 싹 나아버렸지 않았냐. 목사님 오셨는데 왜 예수님 영접을 안 해?” 여기 증인들 많이 계시지 않는가. 육신적인 변화도 일어나는데 영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삶의 모든 부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한 성도는 복음을 받는 순간 술을 끊게 되었다.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밤낮 화투치던 사람이 예수님 영접하고 나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생각이 안 나니 얼마나 끊는 게 쉽겠는가.

4) 관심의 축복
이 때부터 관심이 바뀐다. 어떻게 하면 은혜를 받을까, 기도 제대로 할까, 복음 전할까, 복음을 위해 헌신할까 관심이 바뀐다. 자꾸만 예배 드리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 데리고 오고 싶다.

5) 소망의 축복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있는 것이다. 천국의 보장이 있는 것이다. 제가 하는 목사님이 교도소 전도를 하시는데 사형수 한 분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보통 불안하게 아닌데 영접하고 계속 은혜받고 말씀듣고 찬송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형 날짜가 되어서 목사님을 만나기 원해서 갔는데 검사가 그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 나라로 가는데 검사님도 꼭 예수님 믿고 천국에서 만납시다’ 했다는 것이다. 검사가 놀래서, 수많이 사형집행 했어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는 주로 담배 한 대 받아 피고 죽는데 이 사람은 찬송 끝절까지 다 부른 다음에 사형 집행하라고 하고는 목사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키스하자고 해서 키스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영접한 사람은 미래가 완전히 보장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완전한 소망이 있는 것이다.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삶의 모든 부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관심도 바뀌고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이 축복의 증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찬양합니다. 영원한 생명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시고 나에게 참된 소망과 기쁨을 주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에서 받은 영접의 축복을 계속 누리며 지금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리 한 생애가 쓰임받도록 주님이 축복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이전글 : 일꾼의 한 (마 9:35-38)
  다음글 : 자녀의 축복 (롬 8:12-17)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