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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에릭리들'의 불의전차 조회수 : 7553
  작성자 : 시몬 작성일 : 2007-08-07



에릭 리들은 1902년 중국 천진에서 스코트랜드 선교사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중국 선교사의 자제로서 먼 거리를 걷고 달리던 습관이 있어서 인지,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육상 재능을 보이면서 스코트랜드에서 교육을 받았다. 에딘버러 대학에 입한한 뒤 본격적인 육상선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당시 수년간에 걸쳐 스코트랜드는 물론이거니와 전 영국 단거리 육상대회를 모조리 휩쓸었으며 스코트랜드 국가대표 럭비팀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에릭 리들은 영국대표로서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 경기의 금매달 후보였다. 그러나 100 m 경기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첫 예선일자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다. 그는 그 일정표를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뜁니다." 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다. 그의 그런 결정은 그의 주일 성수를 위한 자기 희생적 결정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에릭 리들의 100 m 출전 포기를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척 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100 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는 스콧츠 커크(Scats kirk) 장로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하였다. 그 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100m 경기에서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기록은 에릭 리들보다 약간 뒤졌었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하나님은 에릭 리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 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 m 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400 m 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다. 예선에서만도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 같은선수들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각광을 받았었다. 드디어 결승의 날이 왔다. 에릭 리들은 신들린 사람처럼 첫 코너를 돌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 고 불안함을 표현하였다.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 등 우승후보를 제치고 47초 6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쪽지가 응답되었던 것이다. In the old book it says, "He who honours me-I will honour" Best wishes always> <구약에 이런 글이 있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삼상(사무엘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그는 처음 400 m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처음 200 m 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 m 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은 자기를 위한 날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설교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 영웅이 되었지만, 에릭 리들은 하나님과의 헌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영광을 버리고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갔다. 그 이듬해 그는 영웅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내던진 채 그는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24세의 젊은 나이로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 그는 운동선수의 화려한 명성이 중국의 무지한 농부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비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리들은 12년 간 톈진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으며, 그 후 7년 동안 산둥 반도의 곳곳을 다니며 농촌 지역에서 전도를 했다. 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 이 끝나기 전 몇 년 간 1,800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본군 치하 웨이시엔의 수용소에 갇혀 지내며 타인들을 격려하는 삶을 살다가 그의 나이 44세때인 1945년 뇌출혈으로 사망했다. 약한 나로 강하게(마21:9)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 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 주셨네 ♠ 호산나 [hosanna]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옵소서’라는 뜻을 가진 헤브라이어. 아람어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구약성서에는 여호와(야훼)께 구원을 구하는 짧은 기도로서 《시편》 118편 25절에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초막절 때 사람들이 제단의 주위를 돌면서 외친 환호성인데, 이 축제 때의 기도는 거의 이 말로 시작되었다. 종려나무, 도금향, 버들가지 등을 흔들면서 환호하였다. 신약성서에는 종려주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고, 아이들이 성전 뜰에서 예수를 향하여 소리지른 기쁜 외침이다(마태복음 21:9, 15). 《누가복음》을 제외한 세 복음서에서 의미를 번역하지 않고 음역한 것을 보면 의미의 변화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과 관련하여 모두 6회 쓰여져 있다. 이것은 메시야를 대망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아로서 영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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