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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 영적전투 대상 - 힌두교 3 " 조회수 : 1549
  작성자 : 정경일 작성일 : 2004-06-29
힌두교


힌두교와 불교 사상의 핵심적인 공통분모인 무지, 환상, 윤회, 업 등의 개념이 직결돼 있는, 인간의 근본 문제인 "고통"에 대해 정리해보자. 지난 호에서는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가 고통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남으로 초래된 죄(성)라는 사실과 인간들로 하여금 이 고통을 해소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게 하는 사탄의 전략과 그 위험성에 대해 살펴봤다.

이제 사탄이 얼마나 교활하게 진리를 왜곡시키는지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사탄은 고통이 무지(원인)에서 왔으며 이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중의 방법은 먼저 현실 세계의 존재와 고통의 실재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교묘히 속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부정케 한다. 그리고 결국 사도바울이 그렇게도 신랄하게 비판했던 다른 복음인 행위(율법/자신의 의)를 통한 고통에서의 자유(윤회를 통한 영적 진화/열반/절대 자유/우주의 궁극적 실재와 합일...)를 사탄은 가르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사는 복음과 율법의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결국에는 복음이 승리하리라는 것이다(언약)다. 이 흑암 세력과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도와 복음과 전도로 맞서야 할 것이다.

힌두교(또는 불교)에는 기본적으로 "원죄"의 개념이 없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짓는 "죄"는 단지 무지의 소산이며 나쁜 업을 쌓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쁜 업이 인간을 사망으로 이끌어 가는 치명적인 원인도 아니다.

힌두교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고통의 원인인 "무지"라면 기독교에서는 "죄"다. 그렇다면 우주 최초의 무지는 어디서 왔는가?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들은 모르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이들의 순환적 세계관에 의하면(우주와 역사의 시작과 끝을 전제로 하는 직선적인 성경적 세계관과는 달리) 시작도 끝도 없고 또 이에 대한 의문도 가지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이렇게 힌두교는 무지를 깨우치기 위하여 수행(요가, 탄트라...)을 강조한다. 인류의 수많은 종교와 사상과 철학을 검토해 보면 하나도 예외 없이 비복음인 "행위에 의한 구원"을 주장한다. 심지어 기독교 안에서도 "행위"라는 인간의 의는 늘 복음의 능력을 희석시켜왔으며
지금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얼마나 많은 혼돈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정말 인간의 두뇌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는 조건으
로 조금이라도 어떤 수행도 행위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인간은 구원받아
야 할 자격과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객관적으로 볼 때 모든 고통은 욕구의 좌절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욕구의 좌절은 부당한 욕구의 발생과 욕구의 충족을 좌절시키는 환경의 발생에서 온다. 성경은 이 두 가지 이유를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먼저 고통의 발생에 대해 뭘 말하고 있는가. 성경에 의하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 거기에는 어떤 고통도 없었다. 죄와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인식이나 관념의 영역뿐 아니라 주위의 환경에서도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연은 풍족했고 인간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통은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부터 왔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마음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을 몰랐다. 끝내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였다(창 3:5). 인간은 하나님 대신 모든 것을 자기 의지대로 하고 싶어하며, 자신을 내세우며 남을 무시하는 타락한 본성(미움, 살인, 다툼, 분쟁, 간음, 음욕, 시기...)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타락한 결과로 인해 땅은 저주를 받았고 인간에게 고통을 증폭시켜주는 환경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이제 자연환경은 그 풍성함과 안락함을 상실하고 결핍과 위험을 인간에게 안겨주는 무서운 곳으로 전락한 것이다.

또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교만에서 출발된 고통의 원인인 원죄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신 구속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써 죄인의 상태에서 타락 전의 아담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앞으로 있을 온전한 구원에의 자격을 얻은 것이지 지금의 고통이 완전히 해결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환경변화에 의한 궁극적 해소는 우주적 종말과 함께 성취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고통의 궁극적인 해소는 이루어질 것이다. 결국 고통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 제한된 인식 능력, 연약한 육신, 열악한 주위환경 등이 총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구원과 마찬가지로 이 고통의 완전 해소는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달려 있으며 인간의 노력으론 불가능하다.

다음 면에는 힌두교도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 고통을 해소하는가(실재/환상은 이때 다룰 것임), 이들의 구원관을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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