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류독감·사스등 신종, 최근 20년간 쏟아져 수시로 돌연변이…"통제불능" 변종 만든 탓
최근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사스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온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인류 사회에는 지난 20여년 동안 유난히 신종 또는 변종 바이러스가 많이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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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에이즈 증세가 처음 보고됐고, 원인 바이러스인 HIV를 1984년 발견했다. 그리고 20여년간 200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했다. 1993년에는 미국 뉴멕시코의 포코너스에서 수십명이 폐에 액체가 가득 차는 증세로 사망했다.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탄바이러스와 유사한 ‘신놈브레 바이러스’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주범이었다. 1995년에는 아프리카 자이레에서 사망률 50%가 넘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16년 만에 재등장, 80여명이 숨졌다. 1997년에는 조류독감이 인간에게도 감염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닭 등 조류를 감염시키는 H5N1형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였다. 지난해 겨울에는 ‘사스’로 명명된 전염성 폐렴이 중국·홍콩·싱가포르와 캐나다 지역까지 휩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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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주고 있는 이들 바이러스의 공통점은 모두 ‘RNA 바이러스’라는 것이다. DNA에 유전정보를 담는 인간과 달리, 이들은 RNA에 유전정보를 담고 있다. RNA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것은 자신을 복제하면서 똑같이 복제하지 않고 ‘불량품’을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RNA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는 신약을 만들었다 해도, 그 신약은 복제 과정에서 변질된 복제체에는 듣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잘못 복제된 ‘불량품’ 덕에 RNA 바이러스는 웬만한 치료제에도 떼죽음을 당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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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는 야생 조류의 장에서만 기생할 때는 큰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야생 조류의 변을 통해 닭, 오리 등 가금류에 감염되면 호흡기는 물론 전신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형태로 자신을 변질시켜 심각한 질환을 일으킨다. 특히 조류독감 중 홍콩 H5N1형 바이러스는 인간에게까지 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H5N1형 바이러스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퍼지지 않는 ‘막다른 감염(dead-endinfection)’이지만, 독성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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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 바이러스가 변질된 복제체를 만드는 경로는 돌연변이, 유전자간 재조합, 유전자 재구성 등 세 가지다. 돌연변이란 유전정보가 원래의 청사진대로 복제되지 않고 변질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RNA 바이러스의 게놈 염기서열이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U(유라실)로 이뤄져 있을 때, G가 들어갈 자리에 C가 삽입되면 돌연변이가 생긴다. RNA 바이러스는 한 번 복제할 때마다 이렇게 실수할 확률이 3만분의 1정도로, DNA 생명체가 실수할 확률(10억~100억분의 1)보다 훨씬 높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는 주로 돌연변이를 통해서 약물에 내성을 지닌 변종을 만든다.
유전자 재조합은 서로 다른 조각에 있는 유전정보가 잘려서 이동, 혼합형이 생겨난 것. 또 유전자 재구성은 바이러스의 전체 게놈 중 1개나 그 이상의 조각이 다른 조각들과 뒤섞여 복제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바이러스는 유전자 재조합 비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사스를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려 25%에 이른다.
최근 들어 이런 신종·변종 바이러스가 자주 출현하는 것은 급속한 사회·문화·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신놈브레 바이러스는 1992년부터 1993년 사이에 있었던 뉴멕시코의 기후 변화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그 해에 신놈브레 바이러스의 숙주인 들쥐가 좋아하는 콩이 많이 자랐고, 이로 인해 들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 들쥐들이 인간과의 접촉 빈도가 높아지면서 감염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에이즈는 성문화가 다양해지면서 빠르게 전파됐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철새의 이동경로, 닭과 돼지의 사육 방법, 가금류의 인위적 집단사육 등이 주요 변수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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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성 바이러스는 어떤 지역이나 국가를 휩쓸면서, 심할 경우 특정 민족을 말살시킬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독성 바이러스로 인한 재앙을 막기 위해 인류는 빨리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선영(金善榮·49) 교수는
▲서울대 자연대 생명과학부 교수
▲옥스퍼드대학 이학박사(분자유전학 전공)
▲96년 국내 첫 대학 내 바이오벤처기업 설립
▲서울대학교 유전공학 인큐베이팅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