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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변종(變種) 바이러스야, 가라! 조회수 : 1517
  작성자 : 정경일 작성일 : 2005-03-20
변종(變種) 바이러스야, 가라!



지금 전 세계는 조류독감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이번 조류독감이
혹시나 21세기의 페스트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입니다.

이것은 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변종 바이러스"와의 전쟁입니다.


14세기 이후 유럽인구의 25%를 사망케 했던
페스트이후로도 수 없는 전염성병 바이러스들은
인류를 괴롭혀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염성 바이러스들은 모두
"RNA바이러스"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 놀랄 일은
이 바이러스들이 발생하는 원인입니다.

그 하나는 복제과정을 통해 생겨나는 것인데,
곧 복제과정을 통해 작은 실수만 해도 생겨나는
변종 바이러스들입니다.

또 돌연변이를 통해서 생겨나고 있는데,
이것은 천연적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인위적인
실험 곧, 방사선이나 화학물질 등의 영향으로 생성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최근 들어 이런 신종 바이러스들이
왜 이렇게까지 많이 생겨날까요?

앞의 두 가지 요인은 학계에서 이미 발표한 내용이지만
저는 사회환경변화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것은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생존키 위한 다양한 삶의 방식의 결과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곧 무분별한 경제 개발 덕분에
산업화와 도시화는 이루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이 파괴되었고 또 생태계가 위협받은 대가로,

자연과 인간은 상생(相生)관계에서
적대(敵對)관계로 바뀌면서
이런 변종바이러스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광우병"이 왜 생겨났습니까.
초식동물들을 빨리 성장시키겠다고 주었던
사료가 문제되지 않았습니까.

바다의 "고기"가 왜 갈수록 줄어듭니까.
그것은 폐수(廢水)와 함께 지구온난화현상이
큰 원인이 되고 않습니까.



이렇게 인간은 자연의 순리(順理)를 외면하고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사람들의
새로운 경제원칙에 따라 단기간 고속성장을 위해
집단사육을 시키면서 동물을 통한 바이러스가 생겨났고,

또 그 과정에서 자연을 훼손시키면서 기본적인
먹이사슬을 끊어놓았고 또 무리한 인위적인 실험과
환경 변화 때문에 돌연변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사람에게 질병을 주지 않았던
동물 바이러스가 이제는 사람에게까지 감염시키는
"변종 바이러스"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종바이러스의 핵심인 "RNA바이러스"는
그냥 우연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이렇듯 뿌린 대로 거두는 자업자득의 열매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종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까닭은
바이러스 특성상 지속적으로 또 다른 변종을 양산하기에
설사 어느 나라에서 어떤 신약을 개발했다해도
그 바이러스는 계속 변신하기 때문에
듣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럼 이 변종바이러스를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사스"는 김치만 먹어도 어느 정도 예방이 되었지만
이것은 김치 먹는다고 넘어갈 녀석이 아닙니다.



이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첫 번째는 다름 아닌 "뜨거움"에 있습니다.
이게 무슨 궤변이냐고요?

아무리 무서운 적(適)도 빈틈이 있듯이
이 변종 바이러스도 75도 이상의 열(熱)에는 죽는다는
크나 큰 약점이 있다는 것이 천만 다행한 일입니다.


마치 열정적인 사람은
어떤 환경적인 어려움도 이겨나가듯이,

마음이 뜨거울 때
심령이 뜨거울 때
생(生) 자체가 뜨겁게 달구어진 사람에게는
어떠한 바이러스든지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자연(自然)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수원시를 가로지르는 수원천이 10년 전에 "一자 형"에서
다시 자연형 하천으로 바꾸어 놓자
지금은 물고기가 사는 1급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순응해 나갈 때
고맙게도 자연은 우리를 지켜줍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신자(信者)가 주일(主日)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이 신자들을 보호(保護)해 준다."

어리석을 정도로 율법대로 산다는 유대인 여자들이
여자 삼대 암에 가장 적게 걸리듯이,

우리가 자연의 질서를 지켜나간다면 자연은
우리의 적(敵)이 아니라 보호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나바다운동"이 다시 일어나야 하고,
또 생활폐수와 공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샴푸 대신 비누를,
또 가까운 곳은 걸어다니는 것이
인간과 자연이 상생(相生)하는 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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