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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도의 축복(엡 1:1-6) 조회수 : 1859
  작성자 : 이길근 목사 작성일 : 2004-03-23
2004. 3. 21 하나로교회 주일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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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이길근 목사
◎ 성도의 축복 (엡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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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서론>
어느 목사님 댁에서 연세 많으신 분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찾아와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디 계시는지 가르쳐 달라고 질문을 했다. 만약에 우리 성도들에게 물어본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믿지만 그리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이 연세 드신 분이 청년에게 설명을 하시는데 청년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자네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예, 길 따라 쭈욱 왔습니다. 그럼 대문 밖에 무엇이 있던가? 예, 왼쪽에는 연못이 있고 오른쪽에는 큰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뭐가 있던가? 저기 보니 나무가 있고 풀밭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연세 드신 분이 젊은 사람을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어른을 속이냐고. 그러니까 청년이 분명히 맞습니다. 이놈아, 나는 안 보인다. 아니, 왜 안보이십니까? 저는 보이는데. 이놈아,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하는 것이었다. 이 청년은 눈이 보이니깐 다 보이는데 이 분은 앞이 보이질 않으니깐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있는 건 사실인데 안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하신 일이 있으시다. 사람들은 보기를 원하니깐 눈에 보이도록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절대 망하지 말고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기 위해서 보내셨다.

1. 반드시 확인할 것
그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 내가 얼마나 복된 존재인가, 인간이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어떻게 오셨는가? 성경에 예언한 대로 처녀의 몸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 뿐 아니라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셔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붙잡아 주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셔야 하므로 부활하셨고 지금 성령으로 함께 하신다.

1)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나 자신이 얼마나 복된 존재인가를 꼭 아셔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 꼭 아셔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하실만큼 가치있는 존재란 말이다. 성경의 말씀이 그렇다. 양으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이 이 땅 모든 사람 중에서 나만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를 위해서 예수를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처럼 나는 가치있는 존재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창세전에 택하셔서. 나를 창세전에 택하실만큼 나는 가치있는 존재이다. 꼭 확인하셔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개나 돼지처럼 먹고 자고 죽는 가치없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서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다 흘리시고 나 때문에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처럼 가치있는 존재이다.

2)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떤 분이 대학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다가 급하게 뛰어가는 한 대학생을 만났다. 여보게, 나 좀 보게. 왜 그리 뛰어가는가? 예, 공부하려고요. 왜 공부하는가. 실력을 얻으려고요. 좋은 회사 취직해서 돈 많이 벌려고요. 왜 돈 많이 버? 맘에 드는 여자 만나 장가가고 잘 살려고요. 아들, 딸 낳고 잘 살아야지요. 그 다음에는 뭘 할건가? 잘 먹고 잘 살아야죠? 아, 그 다음에는? 그럼 일하다가 은퇴하겠죠? 그 다음에는? 죽겠죠, 뭐. 그 다음에는? 몰라요. 그래서 이 분이 얘기하기를 자네가 막 뛰어가는데 중간을 생략해버린다면 결국은 죽으러 뛰어간다는 말이 아닌가. 죽은 다음에 모른다면 당신은 모르는 삶을 위해 뛰어간다는 것이 아닌가 하고 깊은 대화를 했다고 한다. 보세요. 도대체 나는 어떤 존재인가. 돈 벌려고 뛰어가는 존재인가 말이다. 인생이 그런건가. 정말 우리가 그런 인생인가 말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 교회는 왜 오셨나? 죽으러 오셨는가. 정말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인간에게 영혼을 빼버린다면 죽으러 가는 존재이다. 모르는 인생을 살기 위한 존재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실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영적존재란 말이다. 인간에게서 영혼이 떠나버린 것을 죽음이라 한다. 오늘 꼭 확인하셔야 한다. 인생이란 하나님이 너무도 가치있는 존재로 창조하셨고 이 땅에서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구원하신 것이다.

2. 축복의 기준
지금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인가. 축복을 받아야겠다 그말 아닌가. 저는 우리 성도들이 참으로 축복된 삶을 살기를 마음에 한을 품고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것이 진정한 축복인지를 아셔야 한다.

1) 육신적인 축복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거부가 된 사람이다. 가정의 가병만 해도 318명을 둔 사람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직원을 318명을 둘 만큼 부자인 사람이다. 우리가 세계복음화를 하려면 이런 축복을 받아야 하지만 이런 것이 정말 행복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 모세에게 얼만큼의 축복을 주셨는가 하면 나이가 120세가 되어도 눈이 흐리지 않았던 건강의 축복을 받은 자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잘 보아야 한다. 이 물질적, 육신적인 축복이 영원한 것이냐는 말이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총독이 나온다. 도지사쯤 되는 높은 직위의 사람이다. 국가에서 신분을 보장하는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육신적으로 얼마나 축복받고 성공한 사람인가. 그러나 이 사람에겐 뭔가 모르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박수 무당을 집에 두고 살았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육신적인 것이 분명히 축복이다. 그러나 이 성공만 가지고는 행복할 수가 없다. 내 속에 숨겨진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2) 정신적인 축복
사회적인 지위, 명예, 학적인 실력이 있으면 정신적으로 큰 기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얻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정신적인 것을 취했다해서 참 행복한 삶이겠는가? 잠언 17장 1절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하셨다. 너무 가난해서 마른 떡 하나만 가지고 가족이 나눠먹을 만큼 가난하더라도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싸우는 것보다 낫다는 말씀이다.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것보다 행복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9장의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율법학자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당시대 최고의 학자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장래가 촉망된 자였다. 하지만 이 사람속에 뭔가 숨겨진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들을 죽이는데 앞장선 사람이었다. 우리 모습을 보세요. 정신적으로 평안하면 남을 괴롭히는 법이 없다. 가정의 불화가 왜 일어나는가? 돈이 없어서도 일어나지만 정신적인 평안이 없어서이다. 가난하다고 늘 싸우는가? 그렇지 않다. 정말 내 마음속에 평안이, 행복이, 기쁨이 없으면 자기가 힘들기 때문에 남을 괴롭힐 수 밖에 없다. 사도바울이 예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축복도 완전할 수가 없다.

3) 영적인 축복
우리 집사님 중에 한 분이 그런 간증을 하셨다. 목사님, 제가 영적으로 얼마나 시달렸던지 얼마나 눌렸던지요,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수십년간 고생했습니다. 제가 정신병원에도 갔다 왔습니다. 그러셨다. 그런데 이 분이 육신은 온전하신 분이지만 영적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런 것을 경험하지 못하신 분은 이해하시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깨닫고 치유가 된 것이다. 지금도 연약한 부분이 있지만 예전보다 육신적으로도 연약한 부분이 있지만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살 맛이 난다고 간증을 하시는 것이다. 이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까? 보세요. 영적인 것이 무엇인가? 성경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온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날마다 잔치를 하는데 날마다 잔치를 해도 건강할 만큼 체력이 대단한 자였다. 지난번 우리 교회 임직식때 저희 어머니와 아내가 집에 와서 하시는 말씀이 한복을 벗으니깐 살 맛이 난다고 하셨다. 잔치가 좀 힘든게 아니다. 돌잔치하고 나면 아이가 몸살이 난다. 그런데 날마다 잔치를 했다고 한다. 이 사람은 돈 많고, 권력 있고, 명예가 큰 자였다. 이 부자가 죽었을 때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야, 좋은 사람 죽었네. 조문객도 많았을 것이고 장례도 성대하게 치렀을 것이다. 이 사람은 어디 갔는가. 지옥.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어떠했는가? 세상적으로는 아무것 가진 게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얻어먹지 않았겠는가? 병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다행히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이다. 죽은 후에 천국을 갔겠죠. 자, 우리가 이 거지 나사로처럼 살아라는 말씀이냐, 그건 아니다.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진정한 축복이냐는 말이다. 두가지를 단순 비교할 때 어떤 것이 진정한 축복인가하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육신적, 정신적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도 하나님의 소원이시다. 하지만 이 두가지 축복이 없다 할지라도 영적인 축복, 구원받은 축복이 있다고 하면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분명히 복된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땅에서 현실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물질이 없으면 많이 불편하다. 몸이 연약하면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축복을 꼭 확인하셔야 한다.

3. 성도의 축복
성도의 축복은 무슨 말인가? 구원 받은 성도만이 가진 축복이란 말씀이다. 이 축복이 우리에게 있음을 반드시 붙잡으셔야 한다.

1) 신령한 복
우리에겐 신령한 복이 주어졌다. 신령한 복이란 어떤 것인가. 창세전에 하나님께 택함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원받은 것이다.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함을 받은 것이 신령한 복이다. 우리 집사님 한 분이 다른 분들에게 그러시더라. 집사님, 우리 딸 예쁘죠? 너무 너무 그 딸이 예쁘대요. 제가 들으면서 그렇지, 물론 예쁘지. 제가 보기에도 예쁜데, 그 엄마가 보이게는 얼마나 예쁘겠는가? 이 예쁜 데에 이유가 있는가? 없잖은가. 이유없이 내 딸이기 때문에. 내 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너무 너무 예쁜 것이다. 우리가 신령한 복을 받은 것은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조건 때문에 우리에게 복 주신 것이 아니다. 참 감사하지 않은가?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셨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다. 창세전에 나를 택하신 것은 신령한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① 영원하다
우리의 삶을 영원히 인도하시려고 아예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신다. 영원토록 함께 계신다는 말이다.

② 인도의 보장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시고 기도할 때마다 깨닫게 하신다.

③ 미래의 보장
저와 여러분에게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생명이 심기워져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심겨져 있기 때문에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말씀에는 “우리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하셨다. 우리의 미래가 완전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2) 복 있는 자
성도만이 가진 축복이 무엇인가. 바로 복 있는 자이다. 예배의 축복이다. 하나님 없는 사람은 무언가를 섬기고 산다. 우리 과거에 예수 믿기 이전에 무엇을 섬겼는가? 어떤 분은 내 주먹을 믿어라. 자기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믿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믿고 귀신을 섬기고 살았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섬기고 사는 존재이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자기 부모, 자기 빽. 아무것도 안 믿는 사람은 그 아무것도 안 믿는 게 자기의 믿음이다. 그런데 성도만이 가진 축복이 있다. 예배의 축복이다.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이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아무나 예배드릴 수가 있겠는가? 오늘도 여러분이 못 나오셨다. 다 형편이 있을 것이다. 아무나 예배드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예배의 축복속에 있다는 것이 축복중의 축복이다. 예배를 드릴 수 있으려면 적어도 3가지는 갖춰져야 한다. 건강해야 된다. 병 들면 드리고 싶어도 못 드린다. 시간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바쁘면 못 드린다. 주일에 근무하면 나오고 어도 못 나온다. 믿음이 없으면 못 드린다. 이것이 축복이다. 적어도 건강과 시간과 믿음의 축복이 있어야만 예배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니까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시간 예배 드릴 수 있는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 모른다. 예전에 제가 서울에서 교회를 섬길 때 경찰서장이 한 분 계셨는데 아무리 권유를 해도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다. 제가 은퇴해서 한가하면 예배 드리지요. 그랬다. 그런데 나중에 언제 예배를 드리는가 하면 바쁘게 살다가 중풍으로 쓰러져 휠체어를 타고 온 것이다. 그분이 하는 말이 제가 제 발로 걸어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라도 예배 드리는 것이 감사하다 그러셨다. 보세요. 부끄러운 인생이 아닌가. 예배의 축복은 성도에게만 주시는 것이다. 시편 1편 1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즐거워하는가? 예배를 통해서이다. 예배를 통해 말씀을 받아야 그 말씀을 묵상할 것이 아닌가. 이것이 축복이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말씀을 듣고 지키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아무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다. 적어도 오늘 예배하는 성도들은 아! 내가 복 받은 자구나. 진정한 감사가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은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하셨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늘 영양분을 공급받듯이 계속 이 은혜의 축복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 축복은 계속해서 확인하고 누리셔야 한다. 예배는 드리면 드릴수록 축복이다.

3) 하나님의 소원
구원받은 성도에게만 있는 축복은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을 맞추는 것이다.

① 파숫꾼
에스겔서 3장에 보면 악인에게든지 의인에게든지 가서 말하라고 하셨다. 악인은 불신자, 의인은 교회 다니는 성도이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소원을 깨우치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불신자도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하고 의인, 믿음의 사람은 복음 전도에 방향을 맞추게 하라는 것이다. 바로 파숫꾼의 사명이다. 이 파숫꾼의 축복을 누려야 하겠다.

② 복음을 위한 헌신
오늘 본문에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영광의 찬송을 하게 하리라 하셨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 전체를 드리자는 말씀이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갔을 때 어느 부유한 집사님 가정에서 저희 부부를 초대를 하셔서 교인 30여명과 함께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샌프란시스코에 1년에 한, 두 번 금문교란 다리가 들리는데 그 다리가 들리면 몇시간씩 차량 정체가 되어도 불평 한마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니깐 그 날에 미국의 부자들이 요트경기를 하는데 그러면서 샌프란시스코 시에 많은 돈을 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시민들에게 혜택이 가니깐 불평을 안한다는 것이다. 보세요. 부자가 돈 많이 벌었다고 거드름 피우면 욕 먹는다. 그러나 뭔가 가치있는 일에 투자하면 아니다. 우리가 복음 받은 것은 영원한 축복인데 거드름 피우면 되겠는가. 이제 구원받았으니깐 아무렇게나 살면 되겠는가? 부자가 됐으면 사회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복음을 받았으니 복음을 위해서 헌신할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게 바른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잘 도와줄까. 불신자, 새신자들을 잘 도와줄까. 당연한 것이다. 교회 성가대, 식당, 차량, 청소 모두 복음을 위한 헌신이다. 부자도 자기만 알면 손가락질 받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도와주면 존경을 받는다. 복음을 받았으면 나의 달란트를 따라서 헌신할 게 뭔가 찾아서 헌신하는 게 바른 것이다.

③ 본론 인생
그러면서 이제는 본론 인생을 사는 것이다. 성도님 한 분이 저에게 특별히 기도를 해 주시기를 부탁하셨다. 왜요? 그랬더니 제가 좀 돈을 많이 벌려고 합니다. 돈 벌어서 지교회를 해야겠습니다. 저희 집에서 밥 먹고 잠만 자는 그런 곳 말고 생명 살리고 사람들 초청해서 대접하면서 복음 전하는 가정이 되도록 일 하려고 합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참 감사하지요. 우리가 왜 돈 벌고 승리하고 축복을 받아야 하는가. 본론 인생이다. 우리 가정에서 생명 살리고 제자 세우고. 이게 복된 것이다. 세상 사람들처럼 복 받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어떻게 할 거냐. 죽고. 이게 인생이 아니다. 왜 사는 지 우리의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왜? 제자 세우는 것이다. 이 땅에 많은 제자 남겨놓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본론 인생이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꼭 누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꼭 확인하셔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 육신적, 정신적, 영적 축복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축복을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 우리에게 있는 축복은 영원한 것이다. 이제 이 축복 받은 자로서 예배의 축복 누리면서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추며 인도받는 자가 되어야 겠다.

((언약기도))
우리가 가치있는 존재인 것을 확인하게 하시고 영적 존재인 것을 또 다시 확인시켜 주신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는 육신적인, 정신적인, 영적 축복이 다 필요한 것을 고백합니다. 이 땅에서 신령한 복을 받은 자로 예배의 축복속에서 가장 바른 인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춰서 내 생애가 생명 살리고 제자 세우는 일에 쓰임받도록 주님이 축복하시고 역사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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