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녹취
•홈  >  메시지  >  강단녹취
  제  목 : 네 자손에게 주리라 조회수 : 909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8-06
  첨부파일:   20170806.hwp(27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말씀을 따라 갔고

성경

12:4

일시

2017730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영적 심부름

1. 기도하는 아이

선교원 화장실에서 남자 아이들이 소변을 보다가 소변이 튀었습니다. 서로 잘못했다고 싸웠습니다. 선생님이 얘기했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은 사람은 용서하고 그래야 한다. 조금 뒤에 아이들이 서로 화해하고 둘이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잡고 하나님 앞에 회개기도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아동센터에 한 아이가 아빠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엄마가 안 계십니다. 아빠가 새엄마를 맞았는데 서로 갈등이 일어나니까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이 아이가 아빠가 예수 믿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한 겁니다. 지난주에 아동센터에 그 아빠가 오셔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고 이건 대단한 일입니다. 아빠를 위해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아이가 체험한 겁니다. 저는 참 앞으로 이 아이들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2. 일 중심인 사람

부산에 제일 큰 교회 중직자 한분이 계셨습니다. 얼마나 일을 잘하고 능력이 많은지 참 훌륭한 분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중요한 일을 맡아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한 사람만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새해가 되어 그분이 하던 일을 다른 분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힘이 빠지는 겁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을 고발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분은 뭔가 잘못된 것에 사로잡혀서 내가 해야 해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해 내가 안하면 모든 것이 싫은 겁니다. 완전 자기중심인거죠. 왜 그럴까요? 사단이 주는 생각에 잡혀서 그럽니다. 내가 잘했지만 다른 사람이 잘할 수 있도록 교회가 잘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임명하니까. 자신을 밀어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문제를 일으키는 겁니다. 일 중심인 사람이 그렇습니다. 우린 은혜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헌신하는 것 아니면 인생이 이렇게 됩니다. 잘못된 것이 그의 생각 속에 각인되면 결국 사단의 심부름꾼이 되는 겁니다.

3. 영적인 역사

무당들이 굿하는 것을 잘 보면 대단합니다. 몇 시간씩을 뜁니다. 자기 힘으로 뛰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이 힘 줘서 뛰는 겁니다. 저도 어릴 때 보니까. 어머니가 무당을 불러서 방에서 굿을 하는 겁니다. 계속 두드리다가 칼을 던지는데 마당에 딱 꽂히는 겁니다. 무당 대단하다. 무당이 작두를 걷고 무슨 일입니까? 귀신의 역사죠. 분명히 영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복음전도를 생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한 과학자가 통계조사를 했습니다. 환자가 있는데 이 환자와 함께 찬송하고 예배하고 기도했더니 3배정도가 빨리 회복이 된다는 겁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전도사로 있을 때 서울 경찰병원에 교사들과 찬양전도를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저희와 연결되어 같이 예배한 환자들이 빨리 회복이 되는 겁니다. 정말 영적인 역사가 있구나! 사람이 영적으로 풍성한 사람이 있고 영적으로 빈곤한 사람이 있습니다. 겉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풍성한 사람은 미래가 다릅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영적인 일이 일어나는데 우리 영이 살아나고 영이 살아나는 겁니다. 이런 영적인 사실을 알고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람과 모르고 하는 사람과는 삶의 질이 다릅니다.

4. 영적 심부름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심부름은 영적인 심부름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에 갔을 때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레미야 엘리야 선지자 중에 한명입니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긴 하는데 그리스도를 모르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성령께서 베드로를 깨닫게 하셔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사단을 꺾으신 왕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죄의 저주를 해결하신 제사장입니다. 그리스도는 지옥의 문제를 해결하신 선지자입니다. 그 고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고백을 귀신도 압니다. 문제는 그 그리스도를 내가 누리고 내가 체험하고 확인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자임이 나에게 체험되어지고 확인되고 누려져서 그것을 전달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베드로가 어느 날 기도하러 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보았습니다. 내 인생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내가 누리고 체험하고 확인하고 있는 그리스도 전하면 저 사람이 낳겠다. 믿음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여기에 성령이 역사하신 겁니다. 이 땅에 무슨 심부름을 해야 할까요? 영적인 심부름. 그 복음이 나의 복음이 돼야지 지식적인 복음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내 문제 앞에서 우리 가정문제 앞에서 우리자녀 문제 앞에서 내 고질적인 문제 앞에서 정말 그리스도가 적용되고 확인되고 체험돼서 아 그래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셨구나! 이것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구호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2- 말씀을 따라 갔고

1. 말씀을 따라 갔고

오늘 성경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그랬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이 있고 사단이 하는 말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말을 들어서 실패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단순합니다. 사단의 말을 따르냐 하나님 말씀을 따르냐 이겁니다. 사람의 말은 참고하는 겁니다. 우리가 차 운전하다보면 내비게이션 도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 때문에 헷갈릴 때도 종종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참고하는 것이지 진리는 아니다. 다윗은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이 말씀을 떨리도록 소중하게 붙잡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권고하신다. 그냥 말씀을 듣고 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돌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은 소중히 여기신다.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2. 그와 함께 갔으며

롯은 그와 함께 갔으며.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롯은 아브라함 때문에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3. 하란을 떠날 때에

하란에서 떠날 때에. 아브라함은 삼형제가 있었습니다. 한명은 갈데아 우르에서 죽었고 한명은 고향에 남았고 아브라함만 아버지를 따라서 왔습니다. 그러다 하란에 머물었습니다. 그 하란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버지가 가다가 못간 가나안땅을 향해서 떠났다. 생각만 하고 결실만 한 것이 아니고 발을 옮겼다. 실천한 겁니다.

4. 나이 75

그때 나이가 75세입니다. 나이가 들면 결단하기가 힘듭니다. 새로운 길을 가기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있었던 모든 것을 다 놔두고 떠납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3- 아브람의 축복

1. 아브람의 축복

이것을 보면서 아브람은 참 축복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거저 받은 축복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축복입니다. 은혜로 받는 겁니다. 우린 아멘하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축복입니다. 두 번째 복음 실천하고 순종할 때 오는 복이 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따라갔고 그랬습니다. 하란을 떠날 때 말씀을 이해하고 결단했다는 겁니다. 우린 정말 행동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발을 떼야지 그게 중요합니다. 형제는 죽고 남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제는 혼자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하란에 머물 것이냐 떠날 것이냐 가나안으로 갈 것이냐 자신이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자기가 앞장서야 합니다. 이제는 자신이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고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하나님 인도만 받아야 합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보장도 안 됩니다. 겁나고 불안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게 지도자의 외로움입니다. 이게 가장의 외로움입니다. 아브라함은 판단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것인가? 내 주변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야 할 것인가? 내가 편한 대로 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것이냐? 우린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복음의 유익한 쪽으로 선택하면 바른 인도를 받습니다.

2. 사람의 기준

마가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은 얼마나 핑계가 많겠습니까? 이단 누명썼죠. 로마가 핍박하죠. 그럼 잠깐 피할 수도 있습니다. 타당하죠. 그러나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 약속을 붙잡고 마가다락방에 모인 겁니다. 우린 이일 하다가 죽어도 좋다. 감옥에 가도 좋다. 왕따 당해도 좋다. 그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였을 때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사장님 예수 믿으셔야 해요. 그랬더니 그분이 목사님도 나쁜 짓 할 수 있나요? 네 저는 많이 합니다. 화도 잘 내고 신경질도 잘 내고 욕도 합니다. 내가 그런 인간입니다. 그랬습니다. 자기 기준이 있는데 자기 기준에 안 맞는 일을 했다. 그런 뜻이죠. 사람의 기준이 어디까지입니까? 사람의 기준이 정말 옮은 겁니까? 사람 따라 기준도 다 다릅니다. 성경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영적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완전 죄인입니다. 사단에게 완전 잡혀있습니다. 결국 지옥으로 끌려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망해야 하고 죽어야 하는데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 자녀가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겁니다. 사람의 기준으로는 탕자는 아버지께 돌아올 수 없습니다. 사람의 기준으로는 안 됩니다.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망해야 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주인에게 큰 손해를 끼친 오네시모는 교도소에 갔습니다. 거기서 바울을 만났습니다. 회개하고 새사람의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심복으로 쓰겠다고 했습니다. 후에 골로새 교회 감독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기준으로는 이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고쳐서 쓰셨습니다. 예수님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한 베드로를 사람 취급합니까? 사람의 기준으로는 용서가 안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찾아오셔서 더 큰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핍박한 바울을 하나님은 전도자로 바꾸어 쓰셨습니다. 사람의 기준은 끝도 없습니다. 사람의 기준은 다 자기중심입니다.

3. 나의 말씀

1) 말씀의 흐름

찬송가 205을 불렀습니다.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우린 새로운 말을 들어야 합니다. 왜 집중훈련을 합니까? 왜 말씀을 또 듣습니까? 내 영혼 속에 잘 박힌 못처럼 각인되는 겁니다. 이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는 사람은 말씀흐름을 잘 타고 있습니다. 그럼 반드시 증거가 옵니다. 그런데 말씀흐름을 타지 못하는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나를 말씀 앞에 살려야 내가 살아야 가족을 살리고 후대를 살리고 내 주변을 살립니다. 그것이 말씀흐름 따라가는 겁니다.

2) 나의 말씀

우리 교회 아이들을 보면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 습관처럼 말합니다. 감사하죠.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이 나의 말씀이 되면 달라집니다. 나의 복음이 되면 달라집니다.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고 나의 찬송이 되고 나의 전도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면 달라집니다. 왜 우린 말씀을 듣고 내가 깨달은 것, 붙잡은 것, 갱신, 기도제목을 잡습니까?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하루가 바빠서 말씀도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생각이 안 날수도 있습니다. 그럼 말씀이 전혀 생각이 안 나는 상태로 하루를 지내고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한주를 지내고 그럼 내 영적상태는 황폐해집니다. 그럼 사단이 가만히 있습니까? 영적으로 힘을 잃어버립니다. 믿어도 불신자와 똑같이 삽니다. 그런데 내가 바쁘게 살아도 강단 말씀이 생각나고 한줄, 한 단어라도 붙잡고 있으면 어느 날 말씀이 성취됩니다. 우리 삶은 다 나중심입니다. 내 생각, 내 방법, 내 기준, 내 주장, 내 감정 이것이 우리 삶이었습니다. 다 이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안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결국 사단에게 당하는 겁니다. 이 세상은 다 자기를 위해서 돈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이게 세상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부딪히면 갈등과 상처가 생깁니다. 그 배후에 인생을 속이고 망하게 하는 사단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 안 나는 것 자체가 실패입니다. 나의 말씀으로 새겨지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4. 문제 앞에서

우린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33:1-3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러면서 치유, 회복, 용서, 축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린 알게 모르게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약해진 부분이 많습니다. 상처받은 부분이 많습니다. 이것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드러납니다. 지금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혔는데 얼마나 힘든 상황입니까? 그때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왜 부르짖으라 했을까요? 제대로 집중하라 다른 생각이 없어지도록 하나님께 집중하라. 사람이 배가 고프면 먹는 것에 집중합니다.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소망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이게 와야 합니다. 예배를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가 왔는데 예배사모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문제에 빠져서 포기하고 그 문제 때문에 낙심하고 상처받고 시험 들고 그 문제를 피해 도망가고 엉뚱한 일에 집착하고 그 사람은 틀림없이 무너집니다.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우린 하나님의 자녀기 때문에 어떤 문제든지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는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 기도했습니다. 동기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바꾸어 응답받게 하셨습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

  이전글 : 말씀을 따라 갔고
  다음글 : 하나님의 보호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