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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엡1:3-4) 조회수 : 1425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02-24
  첨부파일:   20130224.hwp(26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성경
엡1:3-4
일시
2013년 2월 24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 길근 목사


1- 훌륭한 생각
1. 사람의 마음
1) 사람의 기준
▶ 사람들은 다 자기 기준이 있습니다. 자기 기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이 기준은 어떻게 생겨날까요? 대부분 내가 듣고 보고 읽는 것으로 형성됩니다. 이것이 자기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후대들이 세상 음악만 듣고 학교에 가서 공부만 하고 책만 읽으면 어떤 기준이 형성됩니까? 세상 것만 듣고 보고 읽어서 영적 지식은 전혀 모르게 됩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기 기준, 자기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방법으로 해결해보려다가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영적부분에 굉장히 관심이 있고 경험이 있으면 영적인 부분에 예민해 집니다. 사람은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는가에 따라서 그쪽으로 발전을 합니다. 영적인 부분에 관심이 있으면 그쪽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기준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2) 사람의 마음
▶ 창3장 이후로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롬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살아오면서 늘 듣고 보고 읽은 것이 세상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3장에 사단의 유혹을 받아서 망했잖아요. 그때 여인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말씀 하셨습니다. 이악한 마음을 여인의 후손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어야 합니다. 결박하고 밟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 하니까 결국 세상적인 생각, 방법, 세상적 관심 이렇게 살다가 결국 인간은 눈에 안 보이는 사단에게 끌려 다니고 죄의 종노릇하고 나도 모르게 지옥 배경 속에 사는 것입니다.
인생이 속임을 당하다가 결국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다니는 사람도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상 숭배하던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부르시자마자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고 축복하는 자는 축복 할 것이다.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 예수 믿는 첫 번째 날부터 이 축복이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불신앙으로 자기 방법으로 살다가 문제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알았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지? 나는 복의 근원이고 나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그런 사람인데 내가 왜? 이러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불신앙을 버리고 조카 롯에게 다 양보하고 하나님 앞에 본격적으로 제단을 쌓습니다.
2. 하나님 앞에
▶ 세상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일이 생길 때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불신앙에 잡힙니다. 이것이 인생 문제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 만왕의 왕이시구나. 이 문제를 해결하셨구나.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예배 속에 들어가면 되는데 이것을 다 놓치고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아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구나. 내가 막 애쓰고 결단하고 수고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거구나 알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불안이 옵니다. 불신앙이 들어옵니다. 외롭고 쓸쓸 합니다. 답답하고 힘듭니다. 이거 사실은 속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불평, 원망하는 것은 사단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 믿는 순간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새로운 피조물이고, 과거에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이고,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이 하늘로 가겼듯 우리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미래까지 보장되어 있습니다. 혹시 문제가 생기면 불신앙하게 만드는 흑암의 세력을 여인의 후손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사람들이 좀 내가 성실하고 열심이고 바른 사람이 주로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잘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은 아닌데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우습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조금만 가르쳐줘도 인생이 바뀌고
조금만 도와줘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감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로 성공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무리 사랑을 베풀고 도와줘도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로 실패합니다. 부부 지간에 살아가면서 내가 아내를 내가 남편을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내 자식을 내가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되고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로 성공한 사람들, 열심히 사는 사람들, 성실한 사람들, 문제가 오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기 보다는 내가 노력을 막 하려고 합니다.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사람이 10년 100년 하는 것 보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더 큰 일들이 일어납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데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단번에 되는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내가 아무리 도와주고 사랑을 베풀어도 안 되는데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단 순간에 되는 수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압니까? 내가 듣고 보고 읽은 것이 아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비교가 됩니까? 불치병에 걸렸다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불치병에 걸리면 어떤 사람은 죽습니다. 그런데 안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영혼을 불러 가시려고 작정하셨으면 이 땅에 모든 의사가 달라붙어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 좋은 다 갔다가 먹여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러 가시려고 작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불치병에 걸려서 병원에서도 포기를 합니다. 그런데 살아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술이 포기해도 하나님이 살리시려고 하면 살아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부분을 안 믿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를 크게 하시고 낮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 가져가시고 다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기준이 모든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어떤 문제도 그리스도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슥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리스도로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 믿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3. 훌륭한 생각
▶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제일 먼저 생각이 훌륭해 집니다. 믿음의 생각을 갖고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의 행동을 합니다. 생각이 아름다워지고 멋있어지고 그럽니다. 아무리 모질고 이상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람이 바뀝니다. 성경에 에스더 왕후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3일 금식을 하면서 내 백성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자복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목숨을 내 놓고 왕에게 갑니다. 이것이 은혜가 임하지 않고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왕후니까 자신과 상관없이 살 수가 있습니다.
은혜가 임한 사람은 생각이 행동이 다릅니다. 다윗의 경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증거. 사울 왕이 3천 군사를 데리고 다니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왜? 왕이지만 저 사람이 악령 들려가지고 시달린다 이 말이야 그래서 원수 갚은 생각을 아예 안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원수 갚을 생각도 안합니다. 은혜가 임하니까 참 불쌍하구나! 원수 갚은 생각을 아예 안 합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께 항상 감사합니다. 어떤 집사님이 제게 목사님 교회 이런 일들이 있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십니다. 정말 은혜 받은 사람 아닙니까?
또 어떤 분은 목사님 제가 교회 주변에 전도를 해야겠습니다. 라고 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목사님 제가 성전을 놓고 기도합니다. 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은 생각이 수준이 다릅니다. 생각이 참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람을 대하는 말도 행동도 달라집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생각을 하느냐는 얼마나 은혜 받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은 은혜를 못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2-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1. 찬송하리로다
▶ 너무 너무 기뻐서, 너무 감격, 감사가 다 포함되는 단어가 찬송하리로다. 이다. 일본을 이긴 것처럼 감격되는 것, 바울은 과거에 자기 기준으로 남 판단하고 정죄하던 사람이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할 때는 이런 감격이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남을 죽이는데 이런 감격이 없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깨닫고 그 은혜가 물밀듯 들어오니까 찬송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은혜가 벅차서 찬송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의 외적 표현이 찬송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생각이 훌륭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 답답한 문제가 와도 그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재산도 자식도 다 죽었는데 인간의 얘기로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몸 조금 아파도 사업이 조금 안 되도 원망하는데 욥은 내 입술로 여호와를 찬양한다. 이것이 욥에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임했으면 이렇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복음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거기서 찬송을 합니다. 신문에 보니까 이기현이라는 음악 감독의 얘기가 있었습니다. 야곱의 축복이라는 복음성가를 지은 분입니다. 미숙아로 태어나고 사고로 눈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하는 일을 하는데 기자들이 물어봅니다. 앞 못 보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맞나요? 하니 조금도 망설임 없이 예 맞습니다. 라고 합니다. 정말 내가 할 말을 하나님 은혜 밖에는 없습니다. 그 분에게는 구원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다. 찬송가305장입니다.
2. 그리스도안에서
1) 하나님 아버지
▶ 하나님이 나에 아버지시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영역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안에서
▶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가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벧전2:10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엡2:3-6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오는 축복입니다.
3.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 바울이 찬송하는 찬송의 내용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나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시구나. 세상의 복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복이 아닙니다. 구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인도, 응답, 역사, 흑암이 꺾이고, 지키시는 구나. 이 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4. 우리에게 주시되
▶ 이 축복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사실을 듣고 믿는 자에게 이 축복이 왔습니다.
3- 주께서 주신 권세
1. 영적 실제
▶ 정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을 누리는 영적인 부분이 사실로 와 닿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훌륭한 생각으로 바뀝니다. 그러니 성령의 지배받고 가르쳐주시고 성령인도 역사 하시니까 바뀝니다. 바뀌는 것이 삶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열매가 나타납니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렇게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하나하나 맺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예배가 축복이구나. 예배 속에서 내가 힘을 얻어야 갰구나. 하나님께서 기도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구나. 기도 속에 인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전에는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아무 의미 없는 TV앞에서 멍하니 있던 내가 이제는 어떻게 하면 말씀을 들을까? 기도 할까? 이렇게 바뀌는 것입니다. 헌신, 헌금의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2. 간절한 마음
1) 말씀을 들음
▶ 결국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고 읽는 것이 중요한데 그럼 무엇을 듣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흘려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누구의 소리를 어떻게 듣느냐 이것이 인생입니다. 미래입니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람이 누구의 말을 어떻게 듣느냐 그것이 인생을 바꿉니다.
2) 간절한 마음
▶ 그래서 승리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것이 축복 받는 사람입니다.
욥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먹는 것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하게 여겼다. 이것이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하루에 세끼 먹는데 바쁘면 밥을 서서라도 먹습니다. 한 끼라고 안 굶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듣는 다면 축복의 사람이 아닙니까?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밥을 먹지 않더라도 기도하는 시간은 가져야겠다. 이런 사람은 영적 상태가 되는 사람입니다.
3. 한 사람의 증인
▶ 교회에 한 사람의 증인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영적분위기, 교회를 살리는 불씨가 되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귀합니다. 요셉 한 사람이 전체를 다 살립니다. 요셉은 상처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집에 가서 상처 때문에 이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집을 살려야겠구나. 하고 그 집을 살립니다. 똑같은 노예라도 다른 것입니다. 주인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집을 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옥에 가서도 억울하다 그게 아니고 감옥을 살려냅니다. 총리가 되어서도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애굽을 살리고 자기 가족을 살립니다.
한 사람의 증인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십니다.
4. 주께서 주신 권세
▶ 마지막으로 창3장15절 원수가 나옵니다. 원수는 사단 마귀입니다. 원수는 절대 돕는 자가 아닙니다. 나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얼마나 저질적으로 악랄하게 비열하게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 원수가 가정에 들어와서 풍지박살내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합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복음운동에 올인 하지 못하도록 오만 짓을 다 합니다. 목사와 중직자가 하나 되지 못하도록 이간질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고후10: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옛날 전쟁은 군인의 용기에 승패가 좌우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전은 무기에 따라서 승패가 달라집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 보다 미국의 무기가 강력하니까 며칠이 안 되어 전쟁을 이겼습니다.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사단을 꺾을 강력한 무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단이 아무리 강해도 강력한 무기 그리스도 앞에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나의 힘과 용기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힘없고 용기가 없어도 무기가 좋다. 사단이 벌벌 떠는 무기 그리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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