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14 주일강단메시지
출애굽기 13:17-22 앞에 서신 하나님
이길근 목사
<본문말씀>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20 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1. 복음의 능력
1) 심각한 문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통이 뭔지를 모르고 살아간다. 이 땅에 하나님 모르는 것처럼 큰 고통이 없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안 믿는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사단에게 잡혀서 종노릇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사단에게 끌려다니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 자기도 모르게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어서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모르는 것이다. 왜? 영적 생명이 없기 때문에 감각이 없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불행한 것이 없다.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왔는지 모르고 그냥 밥 먹고 사니까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감각이 없는 사람, 영적 생명이 없는 사람은 우리에게 있는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에게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라고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다. 그렇다면 멸망 받지 말라고 하는 멸망이 무슨 상태인가? 하나님 모르는 것이 멸망 받은 상태이다. 자기도 모르게 우상숭배하고 귀신섬기고 제사지내고 이것이 멸망인지를 모르고 살아간다. 영적 감각이 무뎌져서 죄와 허물로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영혼이 아무 기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다. 멸망받지 말라고...
우리에게 생명이 없으면 아무런 감각이 없다. 사람이 언제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가? 하나님의 생명이 정말 내안에 들어와서 내가 하나님 자녀되고 은혜를 받고 보니까 잘 산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과 대적하고 살았고 하나님과 귀신숭배하고 살았구나! 그래서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멸망상태에 있을 때는 사단에게 속고 있다는 것 조차도 모른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다 보니까 생애가 사단에게 속아서 사단이 좋아하는 짓만 하고 살았구나!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수 믿고 하나님 은혜 받고 보면 ‘아, 내가 죄인중의 괴수였구나!’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것이다.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망하고 죽이게 하려는 것임을 모르고 살았잖아요. 그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길을 몰라서 얼마나 방황하며 살았는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는데, 얼마나 괴로운 생활을 살아왔는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더 이상 망하지 말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내가 받아야 할 모든 죄값을 십자가상에서 다 해결하셨다.
3) 복음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제 죽었던 영적 감각이 회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진 이후부터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깨우쳐주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이 말이다.
출애굽기를 보면서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어린양의 피를 바르는데 만약에 애굽의 백성들이 복음의 능력을 알았더라면 왕명을 어기고 자기 집 앞에다 몰래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애굽 사람은 한 사람도 어린양의 피를 바를 줄 몰랐다. 그 당시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섞여 살았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은 아무리 재앙을 봐 왔어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말 복음의 능력을 사실적으로 믿었던 것인가? 긴가민가하고 발랐을 것이다. 믿음으로 했던지 그냥 했던지 간에 이 사람들은 다 발랐다. 그런데 모든 애굽의 사람들 중의 첫 자식은 다 죽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살았다.
모세는 어떠했는가? 일어날 결과를 다 알고 있었겠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비록 지금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머리로 계산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면 된다는 사실을 믿었다. 우리는 자꾸만 내 머리로 계산하고 무엇을 하려고 한다.
바울이라는 분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교회를 없애려고 했던 사람인데 하나님 은혜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복음을 받았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자랑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 말은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관심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을 믿었다는 말이다. 그 말은 자기 인생을 두고 알았다는 것이다. 내 인생이 결국은 그리스도를 만나니까 다 바뀐다면 복음만 사람들에게 들어가면 그 인생이 바뀐다. 바울의 믿음이었다. 바울의 모든 관심과 즐거움과 기쁨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 복음을 전하는 것 밖에 없었다.
2. 앞에 서신 하나님
1) 익숙한 과거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인도하면 가까운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뉘우쳐서 애굽 땅으로 갈까 함이었더라.
사람들은 과거에 익숙하다. 부모님에게서 좋은 것을 많이 보고 자란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인데, 좋지 않은 것을 많이 보고 자라면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체질이 된다. 체질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습관이 반복되어 체질이 되기 때문에 그 부모 밑에서 자라는 자식이 가슴에 한을 품는다. 나는 절대 저런 모습으로 안 살려고 결심하는데, 나이 들면 자기 부모와 똑같이 되어 있다. 부모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왜 우리가 은혜를 지속해서 받아야 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져야 된다. 우리의 결심으로 체질을 바꾸지 못한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저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를 지속해서 받지 못하면 문제만 생기면 옛날로 돌아가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뉘우쳐서 애굽 땅으로 돌아갈까 함이었더라. 그래서 먼 길을 택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속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어느 날 불신자 상태에 젖어있다. 그것이 나의 모습이다.
사람이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다. 내 결심과 결단으로 되는 것은 언젠간 옛날로 돌아가 있다. 왜 우리가 은혜를 지속해서 받아야 되는가? 말씀을 지속해서 받아야 되는가? 사람들이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려 하면 안 된다. 저도 문제만 오면 주님을 바라봐야 되는데, 어떤때는 하나님 은혜로 믿음을 붙잡기도 하지만 어떤때는 불신앙을 잡는다. 아직도 옛 체질이 많이 남아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은혜 받고 말씀 사모하고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된다는 말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망하는 길이다.
2) 요셉의 유언
19절에 보면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모시고 이 길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창 50:24-25에 보면 요셉이 죽으면서 요셉이 백성들에게 유언을 한다. 내가 죽거든 내 해골을 앞으로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요셉은 죽을 때 백성들에게 유언을 했는데, 이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도 요셉의 해골을 모시고 가나안 땅으로 간 사람이 없다. 그것은 무엇을 얘기합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을 놓쳐서 430년 동안 애굽에 노예 생활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내 해골을 모시고 가나안 땅에 가라는 말은 너희들이 애굽 땅에 잠깐 와있는 것이지 여기서 정착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놓쳐 버린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망한다.
롯의 두 사위에게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망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우습게 여긴 두 사위는 유황불에 불타서 죽었다. 농담을 할 것이 있고 안 할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인생은 비참한 인생이다. 지금 요셉이 죽을 때 유언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 언약을 업신여겼다. 언약을 놓치면 노예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시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인 언약을 놓쳐버리면 결국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사실적으로 확인시키기 위해서 요셉의 해골을 메고 가는 것이다.
3) 앞에 서신 하나님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셔서...”
하나님은 앞서서 행하신다. 왜? 우리를 인도하셔야 되기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셔야 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앞서가신 하나님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어떻게 앞서가신 하나님을 따라가면 되는 것인가?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이 강단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강단을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을 따라 가는 것인데, 사람들이 이것을 잘 놓친다.
4) 떠나지 않음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하나님이 앞서가시면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셨는데, 22절에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와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떠나지 않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항상 누리셔야 한다.
3. 잘사는 것
1) 잘사는 것
2007년 새해 벽두에 잘 살아야 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문제는 삿21:25에 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행하였다. 사람들은 잘 산다고 하는 것이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다. 밥도 잘 먹고, 돈도 잘 벌고, 집 잘사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그 말은 하나님과 가장 Oneness되는 것을 말한다. 임마누엘을 잘 누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가장 잘 받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한나’ 라는 여인이 아들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식이 다 있는데, 왜 나만 자식이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 떼를 쓰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한나가 깨닫게 되었다. ‘이 땅에 자식은 많은데 하나님 앞에 드린 자식이 없구나!’ 그래서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자식을 주면, 하나님 앞에 드려서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쓰임받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얻은 아들이 사무엘이다. 그러면 한나의 가슴속에 한 맺힌 것이 있다. 자식 없었던 한이 풀어졌는데, 그 한 맺힌 자식,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드린다.
그러면 한나의 생애와 사무엘의 생애는 망했습니까?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고, 한나는 모든 세대의 모든 여인의 대표자로 쓰임을 받았다. 우리가 가장 잘 사는 것은 내 인생을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쓰임 받도록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것이 가장 잘사는 것이고, 나를 부르신 이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가장 잘사는 것이다.
2) 성도의 그릇
그러면 이렇게 잘 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성도와 저는 어떤 그릇을 갖춰야 되겠습니까?
① 현장교회
바울은 행 20:28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치리하셨다고 했다. 옛날에, 바울은 교회를 없앤 사람이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깨닫고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일꾼을 세웠다. 현장교회를 세웠다. 일꾼을 만나면 일꾼에게 복음을 설명하고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현장교회를 세웠다. 바울의 생애다. 그것이 우리는 지교회 운동을 하자는 것이요, 개인적으로는 다락방 운동을 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곳이다. 아무리 공부 많이 하고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병원이 사람을 죽인다면 그 병원은 헛것이다. 현장교회는 무엇인가? 영혼 살리는 곳이다. 우리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사람이다. 이게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다. 이게 가장 잘사는 것이다.
② 중직자의 마음
그러면 또 어떤 그릇을 갖춰야 하는가? 중직자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상숭배하던 아브라함을 불렀다. 처음부터 복의 근원으로 불렀다. 부를 때부터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 지도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부터 지도자로 부르신 사실을 믿으셔야 한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원하는 자들을 부르셔서 함께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전도도 하며 사람을 살리는 자로 부르셨다. 중직자의 마음은 사람을 살리는 마음이다.
중직자의 마음은 결국 하나님과 통하게 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좋은 의사는 사람을 살려주는 의사이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영혼을 죽여버리면 좋은 성도가 아니다. 조금 우리가 부족하고 허물이 있더라도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세우는 사람이 중직자다. 중직자의 그릇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2007년 우리가 잘 사는 것이다.
③ 선교원
김석순 권사님의 한맺힌 기도제목이 속초 하나로교회 선교원이다. 그런데 권사님 외아들이 사업을 하는데 아들에게 “내 소원이 속초 하나로교회에 선교원을 세우는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아들이 사업 잘되기를 기도한다고 한다. 우리 성도들은 메시지를 늘 받으면서도 기도하는지 안하는지 잘 모르는데, 김석순 권사님은 가슴에 한이 있다. 속초 하나로교회에 선교원을 세워야 되는데, 죽어도 아들에게 말을 할 것이다. 우리 아들이 해 줄겁니다. 제가 아멘하죠.
그러면서 또 기도 팀을 운영한다. 기도 팀 명단에 또 있을 것이다. 왜 우리가 후대에 가슴을 담아야 하는가? 체질이 안 바뀐다. 어릴 때부터 말씀 붙잡는 체질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씀 붙잡았다가 불신앙 붙잡았다가 어릴 때부터 후대들에게 가르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말씀 붙잡고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청소년 수련회가 이번주간인데, 후대들을 위해서 기도하길 바란다. 선교원, 우리 후대를 가슴에 한을 품고 기도하길 바란다.
3) 캠프 인생
2007년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사람들이 자기가 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빛이 없어서. 자기가 지옥으로 지금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왜? 전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바로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발하는 것이 캠프 인생이다. 영적 기능을 다 상실해버렸다. 자기가 죄인인지, 사단의 종노릇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우리는 이 일을 말해주는 것이 캠프다.
4) 기도팀
2007년을 잘 사는 것이 기도팀, 이 일에 생을 걸어야 한다.
우리 아파트가 180세대다. 아파트 앞에 놀이터가 있는데 밑에 기계실이라고 한다. 제가 깨달았다. 아파트가 저절로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180세대가 살아가는데 기계실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하는데 있어서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뭔가 안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이 기도이다. 우리가 사람을 살리고 현장을 살리고 후대를 살리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 팀이 사실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하는 신분적인 기도와 권세적인 기도를 같이 해야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 당시 그 핍박을 이겼던 힘이 무엇인가?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했던 그 힘이 역사가 일어났다.
지금 하고 있는 기도 작은 것 아니다. 매주 기도제목을 주고 있다. 하나님은 언약가진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가 아무리 큰일을 한다고 해도 기도팀이 없다면 아무 힘이 없다. 우리 전 성도들이 이 일에 동참하셔서 가정과 후대와 지역과 교회를 살리는 축복을 누려야 된다.
<말씀정리>
복음의 능력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언약가진 자에게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함께하시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체질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잘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현장과 후대와 지역을 가슴에 품고 기도속에서 인도받는 것이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같이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복된 날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언약을 붙잡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성취됨을 믿습니다. 인도받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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