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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복을 받은 이삭 조회수 : 2072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5-06-21
  첨부파일:   20050619 주일강단 메시지.hwp(55K)
2005년 6월 19일 주일 강단 메시지 - 복을 받은 이삭(창 26:12-22)

● 창세기 26:12-22 ●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18)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강단 메시지

1. 복을 주시는 하나님
▶ 김문상 집사님이랑 포럼을 하게 되었다. 원래 김문상 집사님은 예수 믿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집사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장남으로서 힘든 일이 참 많았고 부담이 참 많았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다 참을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새로 시집을 가서 의붓아버지가 생겼는데, 그런데 의붓 아버지가 옆집 아저씨보다 못할 만큼 자식들을 괴롭히는 가운데 아무래도 장남이니까 힘든 것이다. 어머니가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같이 싸움하는 것을 보고 싸움을 말리고, 어머니를 달래면서 살아 왔던 것이다. 어머니가 견디지 못하는 가운데 신을 받아서 무속인이 되었고 아버지와 이혼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정말 너무나 고난스러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살아보기 위해서 애쓰는 가운데 식당을 하게 되었는데, 술 한잔 드시고 차 사고가 났는데, 박재우 집사님 차를 들이 받은 것이다. 저는 잘 모르니까 속초병원을 갔는데, 다리가 부러져서 깁스를 하고 앉았는데, 제게 “목사님, 제가 사고났는데, 그건 별 문제가 아니고, 그 친구 영접했어요.”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어봤더니, 사고가 났으니 합의를 하러 오지 않았겠는가? 그러니까 집사님이 합의를 하는 것은 나중 일이고, 당신 예수 영접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제 생각에는 합의를 해야 되니까 합의할 욕심으로 엉겹결에 예수 영접한 것 같다.
그러면서 집사님이 회복이 되어서 퇴원을 하고 두 부부가 같이 나오게 되었는데, 한 두 번 나오다 마는 것이 아니라, 안 빠지고 계속 나오는 것이다. 그러더니 자기 집에서 다락방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집사님 댁에서 다락방을 하게 되었는데, 말씀을 사모하시더라. 그러면서 이 집사님 부부가 지금은 성가대에 앉아계시면서, 또한 교사도 하시고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하나님이 나를 택해 놓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내가 정말 어려운 가정에서 예수 예자도 몰랐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겠는가? 정말 하나님이 나를 택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 사건을 통해서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고백을 하더라.
지금도 집사님 가정에 많은 답답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바라보고 하나하나 넘어서는 것을 보면서 참 감사하다. 제가 먼 길 가면서 피곤 할텐데, 막 제 마음속에 힘이 솟아오르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가 어디를 왔다갔다 하면서 기도하거나 포럼하는 것이 참 좋다. 괜히 우두커니 있으면 사람이 조금 이상해진다. 포럼을 해도 은혜 받은 포럼을 해야지, 불신앙 포럼 하고 염려 포럼 하면 영적으로 굉장히 손해본다. 정말 하나님 주신 은혜 누리면 된다.
1) 네가 복이 있도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을 했을 때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정말 복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 집사님 같은 경우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허락하셔서 예수를 알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게 된 계기는 각자 다르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다. 어떤 사람은 집사님처럼 사고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모의 덕으로 복음을 깨달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방황하고, 고생 진탕하다가, 율법주의, 신비주의 온갖 다 하다가 이걸 깨달은 사람도 있다. 어떻든지 간에 우리가 이 복음안에 있다는 것은 참 복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다.
2) 그래서 말씀을 받은 사람은 말씀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제가 볼 때 연세가 70정도 되시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이고 얘기를 언뜻 들어보니까 서울에 아파트가 몇 채가 있는 것 같고, 승용차가 5대라고 한다. 그 분이 저를 학교에 대려다 주면서 보니까 그 박사님에게 이게 무슨 차인가라고 물어봤더니 벤즈라는 것이다. 제가 그래서 벤즈도 타 봤다.
그런데 이 양반이 “목사님, 제가 심장병이 있어서 수술을 받았는데, 음식을 조심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하는 얘기가. 나이가 40이면 40%가 막히고 70이면 70%가 막히고 100살이 되면 100%가 막혀서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혈관이 잘 통하게 할 수 있는 길은 평상시 하루 6km 이상을 걷고 음식을 잘 가려서 먹어야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건강이 먹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평상시 운동을 부지런히 하고 먹는것과 건강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심장이 좋은 것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심장에 좋은 것은 혈액순환이 잘 되어야 되는데, 마늘, 양파, 등푸른 생선, 야채 이런 것들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늘 드시면 건강이 많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음식도 아무거나 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 맞도록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마 영적세계도 그렇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야 되었다. 영적 세계가 그렇다. 나이는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돈은 많은데, 몸이 약해지니까 몸을 많이 도사리는 것이다. 음식을 하나 먹어도 가리면서 먹는다.
영적세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말 들으면 안된다. 율법적인 말을 자꾸 들으면 율법적이 된다. 신비주의 말 자꾸만 듣게 되면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게 된다. 왜 우리가 강단에서 지속적으로 복음을 말해야 되는가? 육신적인 건강도 아무거나 먹으면 안된다. 제 나이만 되어도 음식을 가려서 먹어야 되고, 몸을 관리할 줄 알아야 된다. 하물며 영적인 것이겠는가?
왜 우리가 강단에서 오직 복음만 들어야 되는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듣는 것이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식과 지혜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정말 우리는 지속적으로 유일한 인생문제의 해결자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나도 알지 못하게 영적인 힘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그래서 신령한 젖을 사모한다는 것이다. 갖난아이에겐 엄마 젖만 먹으면 다 된다. 그 안에 모든 영양소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에게 어머니의 젖을 주지 않고 다른 것 자꾸만 주면 병든다.
우리는 신령한 젖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영적인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오만 때만 것을 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된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릴 때 죄문제가 다 해결되고, 알지 못하는 영적인 문제들이 치유 받는 것이다. 이게 말씀의 축복이다.
교회가서 아무런 말만 들으면 되는가? 육신적으로도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음식도 아무렇게나 여기지 않는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산다. 밤 12시에도 통닭 시켜먹고, 밤 1시에도 피자 시켜먹고 산다. 나는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자기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먹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이 술통인줄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이 굴뚝인줄 안다. 막~피워댄다. 그것은 내 몸의 소중함을 몰라서 그렇다.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알면 관리한다.
하물며 또한 영적 관리를 해야 한다. 아무 말에나 아멘 아멘 하면 안된다. 신비로운 말 자꾸 들으면 안된다. 율법주의도 자꾸 들으면 안된다. 복음을 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3) 이 말씀을 계속해서 받게 되면 말씀이 확인된다.
어머니 젖만 계속해서 먹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부모를 알게 된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계속해서 들을 때 하나님이 체험되어지고 확인되어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신앙생활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말씀 계속 들으면서 내 속에 있는 많은 문제가 치유되어지고 안정되어지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축복을 정말 누려야 된다.
4)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창세기 1:27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28에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지배하고 충만한 축복을 주셨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 인간을 복을 주신 분이다. 꼭 이걸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자마자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말씀에도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심으로 시 115:15에도 천지를 지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로다. 우리는 복을 받은 자다.

2. 그러면 이삭이 어떤 복을 받았는가?
1) 이삭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택하셨다.
아브라함에게 계속해서 약속하셨다.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자녀라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약속의 자녀다. 우리가 어느 날 우연히 예수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해 놓으셔서 약속의 자녀로 이 땅에 보냄 받은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이것을 깨달은 것이다.
(1) 이삭은 말씀을 약속으로 받았다.
창세기 26장 1절에 보면 이삭시대에 또 흉년이 들었다. 이삭이 농사 잘 되는 애굽으로 가려고 그랄지방으로 갔는데, 하나님이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하겠고 복을 주겠고,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그래서 네 자손을 인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이 이삭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꼭 우린 이것을 붙잡아야 한다.
(2) 그래서 이삭은 이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았다.
창세기 26장 6절에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랄에 거하였다. 그랄 지방이 어떤 땅인가? 흉년이 들어서 살기가 힘든 땅이다. 이 땅을 하나님은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삭은 무엇을 깨달았는가? 이 땅이 약속의 땅임을 알았고, 그 땅에 거하게 되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진 것이다. 지금 환경은 어렵고 흉년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진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영적 관계가 제대로 된 것이다.
요한삼서 1:2에 보면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네가 잘 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무슨 말인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게 바로 약속을 붙잡은 것이다.
(3)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는 것이다.
12절에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랬다. 성경을 자세히 봐라, 어느 땅인가? 그 땅이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이 떠나지 말라는 그 땅에서 그 해에 농사를 했는데 100배의 축복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3절에 그 사람이(이삭)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할 만큼 되었다. 약속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꼭 붙잡아야 하겠다.
또 15절에 보면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여기에 그 아비라고 되어 있는데, 그 아비가 누구인가? 아브라함 얘기 아닌가? 영적인 축복이 어떻게 임하는지 보라. 부모가 영적인 축복을 누리면 후손에게 영적인 축복이 가게 된다. 부모가 영적인 축복을 누리지 못하면 후손에게 영적인 축복이 갈 수 없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원리다. 그러니 이삭이 축복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적인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어지니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까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실을 보게 된다. 전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시간표 따라 이런 축복이 회복될 줄 확신한다. 꼭 언약으로 붙잡으라! 하나님과 영적 관계가 회복되면 하나님은 나머지 것을 책임지신다.
2) 승리케 하신 하나님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이런 축복을 받을 때 주의를 해야 한다.
(1) 시기하는 일이 일어난다.
도대체 이 시기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우리나라 속담 중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나쁜 속담이 있다. 왜 그런가? 저는 그것을 귀신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이 늘 귀신만 섬겼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은 귀신에게 늘 속아서 산다. 현재도 우리나라 사람 70%가 우상숭배한다. 귀신에게 속고 살고 있기 때문에 사촌이 땅을 사는데 배가 아프다는 것은 귀신이 그 사람에게 속닥거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고 있다.
지금 그 지방에서 이삭이 복을 받고 있으니까 주변의 블레셋 사람들이 배가 아파서 시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하는 일을 보라. 아브라함이 팟던 우물을 다 막아 버렸다. 이성을 잃어 버린다.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의 특징은 이성을 잃어버린다. 얼마나 바보같은 짓을 하는지 모른다. 이스라엘 땅과 같이 물이 귀한 나라에 우물을 막아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 말은 다 죽자는 말이다. 사단에게 잡힌 사람들의 특징이 가정이 깨지든지, 자식이 망하든지 눈에 안 보인다. 다 죽자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단에게 잡힌 사람들은 교회가 깨지든지, 망하든지 상관 없다. 맨날 싸움박질만 하고 있다.
혹시 싸울일 있으면 자식들 없는 바닷가에 가서 싸우라! 혹시 부부지간에 싸울일 있는데 도저히 못 참겠으면 대청봉 올라가서 싸우라! 왜 자식들 보는 앞에서 싸우는가? 자식들이 망하든지 죽든지 관심이 없다. 그거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인가? 우리 성도들은 복음 가졌기 때문에 정 싸울 일 있으면 어디가서 숨어서 싸우라. 부부간에 싸우면 후대들이 얼마나 불안한지 모른다. 그 받은 상처가 평생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문상 집사님이 의붓 아버지가 어머니를 괴롭히는데, 정말 동생들 생각해서 참았다고 한다. 어떨때는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고 한다. 얼마나 큰 상처를 가져다 주는 것인가?
2) 샘의 근원을 얻음
블레셋 사람들을 보라! 그게 배가 아파서 집단으로 여기를 떠나라고 한다. 그래서 이삭이 떠나주고 그 밑의 지방에 와서 장막을 치고 아브라함이 팟던 우물을 다시 파는데, 샘의 근원을 찾아냈다. 하나님이 찾아내게 하신 것이다.
복음 가진 자들은 가면 갈 수록 더 큰 축복을 받는다. 복음가진 자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제 풀에 죽는다. 나중에 계속 파내니까 결국은 좇아다니다가 지친다. 그래서 다투지 않았다고 했다. 하나님이 승리케 하신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막을 자가 없다. 이걸 꼭 알아야 한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다.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할 것이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할 것이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대표적인 축복을 우리가 받게 될 것이다. 이삭을 그들이 우습게 봤다가 그들이 제풀에 넘어졌다. 그래서 다음엔 그들이 결국 이삭에게 와서 화해한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이를 이루실 것이다.
3) 하나님의 영광
22절을 보라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이 장소를 넓게 하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3. 전도자의 축복
1) 복음의 축복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직 안되어서 말씀은 분명 맞는데, 돌아가서 실제로 환경에서 무너진다.
로마서 7장에 보니까 복음을 가장 누리는 바울이 이런 고백을 했다. 내 안에, 내 속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는데, 내 속에 다른 법이 있어서 싸우는구나!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라! 이렇게 갈등이 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분명 우리가 언약을 붙잡고 나가면 된다고 믿었는데, 한 쪽에는 나도 모르게 조급증, 불신앙, 염려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고백한 대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아, 그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구나!
우리는 구원 받았어도 그리스도 아니면 100%실패한다. 이걸 꼭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는 아멘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노맨 그런다. 말씀 들을 때는 아멘 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낙심하고 좌절한다. 자기도 모르게 속는다. 그러면서 믿는 사람 앞에서는 믿는 것처럼 하고, 돌아가서는 아니고 왔다갔다한다. 그래서 바울이 고백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이 내게 이해가 되어졌다. 그렇구나! 내가 순간적으로 낙심하고 좌절할 때 마다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되는 구나! 내가 조급증이 올 때마다 정말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나로 하여금 이 그리스도를 붙잡으라는 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말씀 몰라서 방황하는 것도 아니요, 말씀을 안 들어서 염려 속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니요, 조급증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다. 머리속으로는 이해가 되었는데, 5분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5분을 못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 되시고 그리스도로 완전히 뿌리내려야 하며 그리스도의 다스림 받아야 되겠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멋 모르는 사람이 자기는 다 된 줄 알고 착각하면서 폼 잰다. 이런 사람일 수록 선 줄로 알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이런 사람이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넘어질 때 겸손해진다. 그래서 나는 완전 그리스도 아니면 안되겠구나! 그완전 그리스도 이 축복을 누려야 하겠다.
2) 전도자의 축복
(1) 그래서 우리 자신도 예전엔 실패했었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많이 실패하고 있다. 왜 그런가 보면 우리 주변 사람들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를 안다.
a. 나도 모르게 내가 예전에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를 혼미케 하는 귀신에게 우리가 속고 있었다. 그러니까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b. 우리가 정확하게 말하면 길을 모르니까 방황하고 있었다. 이게 길인가 하고 열심으로 찾아가보고, 선행 쪽으로 가보고 신비주의로 빠져보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은 실패했다.
c. 어떤 사람들은 내 사상 내 의지 이것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내 사상과 의지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날 무너진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 술끊을려고 애쓸 것 없다. 결심할 것도 없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술을 끊으려 했는데 못 끊으면 낙심하게 된다. 둘째로, 반대로 술을 끊으면 술을 못 끊는 사람들 보면 교만해지고 이들을 정죄하게 된다. 그래서 결심할 필요 없이 은혜 속에 들어가면 어느 날 생각이 안 나게 하셔서 하나님이 끊어 주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끊어주게 하시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 계속 받으라는 것이다. 이게 복음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걸 몰라서 망하는 길로 가는지 모른다.
(2) 전도자가 받은 축복이 어느정도인가?
마 10:42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상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복음과 전도를 위해 쓰임 받는다는 것은 절대 낭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과 전도를 위해서 마음을 담고 생각을 담고 기도를 담았다는 것은 영원한 축복이다. 우리가 지금 캠프를 놓고 기도하고 있고 전도대상자를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이게 보통 축복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서 냉수 한 그릇이 쓰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지난 주간에 총회 고시부 모임을 가졌는데, 낙지회집을 갔다. 그런데 산 낙지를 팔팔 끊는 물에 집어넣는 것이다. 옆에 있는 목사님이 전도하려고 “아이구, 아주머니 극락 못 가겠네!”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그 분이 “아닌데요, 저 예원교회 나가는데요.”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옆에 있는 목사님이 괜찮다고 하면서 하는 얘기가 “아, 요놈들이 오늘 복음 전하는 목사님들을 위해 쓰임받는게 얼마나 축복이냐.” 낙지가 죽어도 누구 때문에 죽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복음 전하는 자기 때문에 낙지도 쓰임받는구나!
우리가 복음 전하는 일에 냉수 한 그릇도 상을 잃지 않는다. 이게 영원한 축복이다.
3) 피의 복음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 복음이 전달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거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왔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이 복음은 피의 복음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서 죽으셨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우리의 죄 문제 해결할 수 없다. 사단의 세력도 꺽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100%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지만 예수님은 피를 흘리셨다.
성경에 보니까 바울에게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해 주어서 지금 우리가 이 복음을 받고 있다. 그런데 복음 전하는 바울은 복음전하는 것 때문에 40에 하나 감하는 매를 세 번이나 맞았다. 그리고 핍박과 조롱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단의 괴수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파된 복음은 100% 하나님의 은혜지만 복음 전파자는 피를 흘렸다. 내게 오는 복음은 피의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이 깨달아지면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구나!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이런 복음 전파자들은 핍박과 조롱을 받으면서 이런 고생을 하면서 죽어가면서 이 복음이 우리에게 전파되었구나! 그러니까 이 복음을 내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거저 받았구나! 그러면서 감사가 회복되어진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내가 힘을 얻어서 나도 이 피의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아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들이 생기게 되고 헌신하는 것이다.

말씀 정리
1.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고 복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메시야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우리가 택함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시켜 주신다. 택함받은 우리를 승리케 하기 위해 말씀을 주시고 반복해서 주시고 뿌리내리게 하셔서 승리케 하신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이 복음 그리스도를 꼭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이 사실이고 이해되고 깨달아 지는데, 현장에서 실패하고 낙심하고 좌절할 때 있다. 그 때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축복을 회복할 수 있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우리에게 전파된 복음은 거저 준 것이지만, 피의 복음을 통해 전파되었다. 우리는 참된 감사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 은혜 주셔서 우리가 이 일에 동참하는 축복을 누려야 되겠다.

언약 기도
지금도 말씀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택하셨기에 승리할 수 밖에 없도록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축복이 우리에게 와있는데, 우리는 연약한지라 나도 모르게 체질이 잘못 되어 있어서 불신앙할 때 있고 좌절할 때 있고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축복이 회복되어질 수 밖에 없는 축복이 회복되어지게 하옵소서.
우리는 거저 복음을 받았지만, 이 복음이 전파되기 까지는 피의 흔적들과 핍박과 조롱과 그리고 많은 고통과 환란이 있었음을 알게 하시고 우리에게 참된 감사가 회복되게 하시고 하나님 주신 은혜로 우리는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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