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수아 24:14-18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
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
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16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
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
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 이니이다.
1. 하나님의 걸작품
제가 아는 한 과학자가 자기는 이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하나님 살아계신 것을 확실히 안다고 한다. 그분은 로봇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현대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 손가락처럼 완벽하게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늘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마음대로 움직이니까 몰랐는데, 평생 로봇을 연구하는 이 학자는 지금까지 인간 문명의 결정체가 이런 것들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의 걸작품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의 마음이 흐뭇하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의 인체구조가 훌륭해서 걸작품이냐 그 말은 맞는 말인데,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우리 인체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실을 모른다. 하나님이 이 땅을 만드시고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존재다.
개는 아무리 영리해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한다. 제가 미경 자매와 얘기를 했는데, 전에 미경자매가 개를 이뻐해서 개를 길렀는데, 얘기를 듣다보니 개를 기르는데 완전 전문가요. 그래서 제가 “개 기르는 사람은 개를 보듬고 안고 잔다더라.” 하니까 저도 그랬는데요. 그러더라. 그래서 너는 전에 영적 문제가 심각했었구나! 사실 그랬다고 하더라.
왜 그런가 하니 사람과 살다보면 사람이 믿을만 하기도 하지만 사실 사람을 믿을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해주고 그럴 수 있지만, 어쩔 때는 상처주고, 삐지고 그러기도 한다. 그런데 개는 그런법이 없다. 주인만 좋아한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감정이 있어서 좋아졌다가 싫어졌다가 미워졌다가 그런다. 그러니 사람에 대해서 점점 미워지고 개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개를 좋아하고 개를 훈련시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그런데 아마 작년인가 재작년에 개가 예배를 드리더라. 여기 계신 집사님이 개를 품속에 넣고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인 따라서 예배당에 그냥 온 것이다. 그런데 제가 순간적으로 착각을 했다. 사람보다 훨씬 집중력이 있다고 그런데 그것은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냥 와서 예배 보는 것이다.
우리가 동물과 다른 것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다. 축복된 존재다.
2)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그러면 왜 인간만이 하나님의 걸작품인가 말 3:17절에 보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말씀하고 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우리에게 있다.
3) 하나님의 관심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우리에게 있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다.
구약성경을 한 마디로 우리 인간이 문제 가운데 있고 저주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자, 메시야를 보내겠다. 그러면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짐승들을 잡아서 피를 흘려서 죽이게 했다. 그래서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게 구약성경이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보내셨다. 그게 구약성경이다.
더 구체적으로 여호수아와 모세의 백성들에게 애굽땅에서 400년동안 종살이 하는데 거기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 어린양의 피 바를 때 빠져 나왔다. 그게 무슨 이야기냐?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진 우리에게 하나님은 영원히 함께 하시고 우릴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고 우릴 승리케 하시고 보장하시고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있는 것이다.
자식을 둔 부모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 자식에게 있을 것이다. 물론 똑똑하고 훌륭한 점도 있겠지만 자기 자식에게 자신의 생명이 심겨져 있기 때문에 자식이 소중하고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그 순간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심겨졌다. 이런 영원한 축복이 우리에게 와 있다.
2. 여호와만 섬기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져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요 최고의 걸작품인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시냐?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자세히 말씀하고 있다.
1) 섬긴다
여호수아서 24:14-18절 말씀 보면 섬긴다는 말이 9번이나 나온다. 섬긴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그 말은 크게 두 가지 뜻을 가진다.
그 중 하나는 농사하는 사람이 땅을 경작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농사하는 사람이 땅을 경작하는 이유는 내 땅이기 때문에 내 땅에서 수확을 얻기 위해서 경작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봉사한다는 의미가 있다. 영어성경을 보면 섬긴다는 말을 봉사한다는 말을 섬긴다고 번역을 했다. 이게 바로 예배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진 자들이 예배의 축복을 누리길 원한다.
오늘 받은 이 짧은 구절 가운데서 섬긴다는 말이 9번이나 나왔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원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꼭 알아야 한다.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이 정말 축복된 시간이다.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방법이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게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꼭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최고의 기쁨이 내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이다. 그게 섬긴다는 말이다.
2) 섬김의 대상은 누구냐
그러면 누구를 섬긴다는 말이냐 여호수아는 여호와만 섬긴다고 했다. 하나님만 섬긴다. 즉, 하나님 앞에만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다. 40일동안 금식하고 배가 고픈 예수님에게 찾아가서 시험한다.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한다. 그 다음에 성전 꼭대기에 데리고 올라가서 거기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에게 박수치고 존경하리라. 그러면서 세 번째 시험이 높은 산에 올라가서 천하만국을 다 보여주면서 나에게 절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마귀가 시험한다.
무슨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마귀가 하는 일은 경배의 대상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만 예배를 드려야 되는데, 예배를 다른 것에 드리게 하는 것이 마귀의 소원이다. 꼭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목사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 안드립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정말 우리가 하나님만 높이고 있는가? 하나님보다 다른 뭐가 더 소중하면 경배 대상이 바뀌는 것이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내 자식이 얼마나 소중한가? 어떤 사람은 자식이 하나님보다 소중한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경배 대상이 바뀐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이 우상이다. 남편 없으면 불편한데, 그런데 착각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 모든 축복이 다 오는 것이다. 우리가 한 하나님만 섬기고 있으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면 되냐? 다른 것도 적당히 섬기고 살아야지. 그런 사람은 참 모르는 것이다. 세상적인 예를 들께요.
올해 청년들 중에 결혼 할 사람들이 몇 사람 있다. 저는 결혼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왜냐면 결혼해서 틀림없이 언약의 후손들을 태어나게 할 것이니까.
그런데 사람이 결혼하면 바뀌는 것이 있다. 결혼하면 한 남자만 섬겨야 한다. 그런데 한 여자가 시집을 가서 한 남자만 섬겨야 하는데, 자꾸만 곁눈질을 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온다.
우리는 결혼을 하면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남자는 한 여자만 쳐다보고 살아야 한다. 만약 그것을 보고 싫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결혼하면 안된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 된 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다 있다. 우리의 섬김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다 있다. 그래서 예배의 축복을 우리가 누려야 된다.
3) 누가 섬길수 있는가
누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인가, 아무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녀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하나님 자녀가 아닌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그 사람이 뭔가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자녀 아닌 사람은 헛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다고 하는 것은 축복 중 축복이다. 하나님 자녀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그래서 이 축복을 하나님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사단은 이 축복을 빼앗기 위해서 어찌하든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배 축복을 놓치도록 만든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힘을 얻으면 가정문제, 내 문제를 뛰어 넘는다. 사단이 이걸 잘 알기 때문에 예배에 은혜를 받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꼭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된다.
4) 어떻게 섬길 것이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예배할 때 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마다,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고 그리스도가 누려지지 않으면 예배는 헛예배가 되는 것이다.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드린다는 말에서 진정이란 말은 진리로 예배드린다는 말인데, 진리는 그리스도다. 그래서 예배시간마다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되고 그리스도를 붙잡아야만 예배가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예배다.
우리가 찬송도 부르고 성경도 보고 말씀도 듣고 그런데 재미있는 얘기 싹 듣고 왔다. 그것은 헛 예배다. 어떤 것이 예배냐,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것이 예배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드는 것이 예배다.
그래서 창4장에 말하고 있다. 가인이 예배를 드렸는데, 곡식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안 받으셨다. 왜? 피의 비밀을 모르고 정성과 마음 중심으로만 모아서 예배를 했다. 그 예배를 하나님이 안 받으셨다. 꼭 이 사실을 알아야 된다.
우리가 강단에서 왜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되냐? 예배되기 위해서 우리가 예배시간마다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을 이유가 뭐냐? 예배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강단에서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으면 종교다. 그것은 예배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를 드리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예배 드릴 때 마다 그리스도의 이름 붙잡는 것이 예배 승리하는 것이다. 강단에서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으면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종교요 형식이다.
그것은 불교인들도 아주 경건하게 예불을 드린다. 불교인들이 예불 드리는 것을 보면 얼마나 경건한지 모른다. 오늘 예배드리기 위해서 목욕 깨끗이 하시고 미장원이나 이발소 갔다 오시면서 예배드리십니까? 우리 교인들 보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교인들은 예불 드릴 때 반드시 목욕하신다. 절에 다니시는 분들은 갈 때마다 목욕재개하시고 머리 빚으시고 그런데 예수 믿고 예배드리러 오실 땐 대충 오신다. 절에 다니고 산제사 지내는 사람은 그렇게 안한다. 부정탄다고, 그런데 예배 드릴 땐 대충온다. 그래도 관계없다. 그렇게 정성 드려도 하나님과 상관없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시간마다 그리스도 언약 붙잡아야 된다. 그리스도의 언약 붙잡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예배시간에도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아야 되고 우리는 매일매일 예배의 축복을 누려야 된다. 그래서 나 혼자 홀로 예배의 축복을 드리는 것이 축복이다. 우리가 같이 예배 드리는 것이 너무 귀한 것이고, 우리 또한 개인적으로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게 개인예배요 정시예배다.
3. 축복된 자의 신앙 자세
1) 말씀을 잡은 자
우리는 꼭 말씀을 붙잡아야 된다.
① 약속의 말씀
여호수아는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 여호수아 1:2에 보면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 여호수아서 1:6 너는 이 백성으로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무슨 말인가?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 내 마음에 드는 말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② 하나님의 계획
이 약속을 붙잡으면 어떻게 되는가? 약속 속에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여호수아가 약속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깨달아졌다. 그 계획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로 말하면 이 지역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계획임을 여호수아가 깨달았다. 이것은 여호수아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으로 주셨다. 그 말씀의 내용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이렇게 붙잡으면 된다. 오늘 하나님이 주신 강단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다. 이 계획은 성도들의 형편에 따라 다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붙잡았다. 그렇구나!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지도자로 세우셔서 이 백성들과 함께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점령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우리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 지역 복음화 3000전도제자를 세우는 것이다. 저는 이 지역에 3000전도제자를 세우는 지도자로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았다. 그러면 우리 하나로 교회 성도들은 이 지역에 3000전도제자를 세우는 일에 같이 응답받고 가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안에는 가정복음화도 있고, 가문복음화도 있고, 직장복음화도 있고, 현장 복음화도 있고, 다락방도 있고 다 있는 것이다. 나에게 맞는 이 계획을 발견하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인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계획이 확인되어졌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이 사실을 꼭 알아야 된다. 예배시간에 제가 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교회 목사로 하나님이 세우셨다. 그래서 강단에서 말씀을 한다. 그래서 제 인격이나, 수준이나, 삶이나 상관없이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에 강단에서 목사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붙잡아야 된다. 꼭 이걸 아셔야 한다.
만약 우리 성도들이 제 인격을 믿었다가는 큰일난다. 그렇다고 우리 목사님의 인격은 아주 나쁜 인격이구나라고 할 필요는 없다.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은 좀 못나셨구나! 그렇다고 제가 그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러나 제 지식을 의지하는 것도 제 인격을 의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되냐? 이 강단에서 하나님이 부족하지만 저를 통해서 선포되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된다. 이것은 저도 마찬가지이다. 저도 이 자리에서 말씀을 선포하지만 저도 이 말씀을 계속 붙잡고 인도받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그냥 어떤 사람들은 교회와서 예배 드리고 그냥 목사님 말씀 참 좋았어, 은혜 됐어 라고 하면 말씀이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다. 말씀을 꼭 언약으로 붙잡아야 한다. 목사님 안경꼈네, 우리 목사님 머리가 시원하겠네, 그런거 생각하지 마시고 저를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을 붙잡아야 사는 것이다.
만약 우리 성도들이 제 인격을 믿었다간 큰 상처를 받는다. 저는 화나면 성질내는 사람이다. 성질내는 모습 보고 우리 목사님 성질내는구나! 형편없구나! 형편없어도 하나님이 강단을 통해 세웠기 때문에 강단말씀 붙잡아야 한다. 형편없는 제 인격을 바라보지 마시고 강단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붙잡아야 된다. 이게 우리가 사는 길이다. 그러면 강단 말씀이 내 영혼 속에 마음속에 생각 속에 들어갈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강단 말씀을 마음속에 받고 이 말씀이 루디아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말씀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의 사자를 동원하셔서 고넬료의 마음 문을 열어서 그리고 하나님이 베드로의 마음문을 열어서 그래서 말씀을 고넬료에게 심어줬다. 하나님이 루디아의 마음문을 열어서 그 말씀을 심었다.
우리가 잘못하면 고넬료가 베드로를 봤다면 말씀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고넬료는 로마 정부에서 파송한 지방 행정관이다. 반면 베드로는 어부출신이다. 인격이나 수준이나 배경을 볼 때 말씀을 들을 수 없다.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베드로를 통해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 성도들은 제가 훌륭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그런 것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그 말씀 때문에 성도들이 저를 귀하게 여기시고 기도해 주시는 것이다.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온다. 지금 과학이 얼마나 발달했는가? 저는 휴대폰을 보면 깜짝깜짝 놀랜다. 제가 할 수 있는 휴대폰 기능은 전화 받고 전화 거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휴대폰이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휴대폰이 완전히 만능이다. 그만큼 과학이 발달한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그마만큼 발달했는데도 인간의 문제는 왜 더 심각해지는가?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꼭 아셔야 된다.
우리는 2005년을 시작해서 지금 한 달을 지내고 두 번째 달을 맞이하고 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인도를 받고 갈 것인가?
우리교회 초신자가 40여년동안 자기 힘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제가 그 분에게 얘기했다. 선생님, 지금껏 40여년동안 그렇게 내 힘으로 살았는데 안 됬지 않느냐? 언제까지 내 힘으로 살거냐? 예배드리고 은혜받고 하나님 주신 은혜로 살아라. 그런데 이 사람이 그 말을 못 알아듣는다. “아, 그래도 목사님, 내 힘으로 살아야죠~” 아니,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이냐? 그 분을 보면 얼마나 부지런한지 모른다. 그런데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 그런데도 못 깨닫는다.
우리는 내 고집대로 살면 안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내 고집대로 살았다면 그 고집 다 내려놓아야 한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주님 따르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연세 많으신 분들은 잘 알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별로 노력 안하는데 잘 되는 분들 있고, 어떤 사람들은 죽어라고 일하는데 안 되는 사람 있다. 내 방법대로 살면 안 된다. 제일 힘든 사람이 고집 센 사람이다. 이 사람은 자기고집대로 하니까 성령인도를 못 받는다. 그래서 무너지고 깨진 다음에 두 손 들고 오는 것이다. 깨지기 전에 두 손 드는 것이 가장 바른 것이다.
우리는 내 방법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2005년 새로운 길을 가는 거기 때문에 꼭 강단을 따라 가는 것이 바른 인도를 받는 것이다.
2) 유일성을 아는 자
그리고 여호수아는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했다. 그 말은 유일한 길이다는 말이다.
지난 화요일 지교회 집회를 갔었는데, 성도들이 기도를 많이 해준 동렬이를 만났다. 예원교회 4층에 자리가 없어서 제가 거기를 갔는데 집회를 참석하고 잠깐 쉬는 시간에 동렬이가 나와서 내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 친구가 위암이잖아요. 위암인데 신장까지 전이가 됬는데, 한양대학병원의 의사선생님이 위암 전문의인데 너무 형편이 안 좋아서 수술을 못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얘가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주셨다. 예원교회를 1층에서 4층까지 올라갔는데 평상시 같으면 5-10분 걸리는데, 나한테 그러더라. “제가 오늘 단숨에 올라갔습니다.”
저는 늘 단숨에 다니니까 그걸 잘 모르는데, 얘는 다른거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거기를 올라가려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쉬고 올라가고 쉬고 올라가고 젊은 얘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런데 단숨에 올라갔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지금 치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의사의 얘기는 위암 환자는 검정변이 나오는데, 황색 변으로 바뀌는게 치유된다는 것이다. 황색변으로 되고, 통증이 없어지고, 지금 잠도 잘 자고, 살도 찌고, 이번 주 총신 입시 시험 보는데, 내려간다고 한다.
이 친구가 한 일이 오직 주님만 바라봤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 손에 달렸다. 우리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렸기 때문에 계속 주님만 바라보고 은혜만 받았는데 하나님이 치유하신 것이다. 그래서 제가 그랬다. “야, 너 복음편지다! 넌 증인이야! 하나님이 너를 세계 복음화에 쓰임 받게 하시려고” 여기 복음편지 많잖아요.
우리가 오직 여호와만 바라볼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직 여호와만 앙망하면 새 힘을 얻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육체적인 부분도 치유되어 버린다. 회복되는 것이다. 꼭 이 사실을 아셔야 된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고 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네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했다.
어린 아이는 엄마 젖만 먹으면 다 된다. 그 안에 모든 영양소가 다 있다. 하나님 자녀 된 우리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볼 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눈에 안 보이는 엄청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된다.
3) 후대를 사랑하는 자
이렇게 되니까 여호수아가 수24:1에 모든 지파를 다 불러 모으고 24:2에 보면 모든 백성에게 말을 했다. 무슨 말을 했는가? 너희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라. 그리고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이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라. 나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 너희들은 어떻게 할거냐? 지금 이 얘기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여호수아가 그 백성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왜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는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어야 할 존재 이유다.
여기 우상숭배를 많이 하신 분들이 있지 않았냐? 우상숭배해서 되는 일이 있었냐? 되는 것처럼 망했잖아요. 망하고 빈손들고 왔잖아요. 한 맺히지 않습니까?
여호수아가 이걸 안 것이다. 모든 백성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너희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숭배하지 말아라. 이 지역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숭배하지 말아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 너희는 어떻게 할 거냐?
왜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하는가? 귀신 섬기는 거기 때문에 귀신 섬기면 망하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후대들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된다. 여호수아는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고, 지금 노년에 그가 할 일이 모든 백성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언약을 전달했다.
여기 연세 많으신 분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무엇을 유언으로 넘겨 줄 것인가? 큰 밭은 큰 아들이 가져라, 작은 밭은 둘째 아들이 가져라. 그런거 안 해도 상관없다. 만약 그런 거 있는 사람은 공동체 훈련장 위해서 헌금하세요. 그런 거 자식들에게 물려줬다가는 자식들 싸움만 일어나요. 그 재산 놔두지 말고 공동체 훈련장 위해서 헌금하세요. 아멘이 잘 안되나봐요. 헌금하라니까 부담됩니까?
안 하셔도 되요. 관계는 없지만 정말 후대들에게 언약을 전달해야 한다. 자손들에게 유언을 넘겨야 된다. 우상숭배하지 말아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라. 그것이 사는 길이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이것을 심어주면 이것이 사는 길이다. 이것을 꼭 알아야 된다.
4) 은혜를 깨닫는 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깨달은 자들이 있다. 우리 정 사모가 애를 낳았다.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니까 정사모가 지난 주 메시지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는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계속 붙잡았는데 마음이 평안하다고 했다. 애를 낳고 너무 좋다는 것이다.
지난 주간에 병원에 있다가 퇴원하기 전에 제가 학교 가기 전에 병원에 들렸는데 정사모가 내게 하는 얘기가. 성도들이 기도를 많이 해 주셔서 기도의 배경이 있어서 마음도 평안하고 회복도 빠르고 애도 그렇게 잘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다르다. 똑같이 예배드리는 데도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 그것은 확실히 사단의 역사라고 확신한다. 어떤 사람은 강단 메시지 붙잡고 은혜 받다가 문제 생기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애 낳을 때 얼마나 힘든가? 그런데 강단 메시지 붙잡고 기도하니까 평안해지고 그러면서 왜 내가 회복이 빠른가? 하니까 성도들이 기도를 많이 해줘서 기도의 배경이 든든하니까 회복이 빠른 것이다 너무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제가 어제 부교역자들에게 식사하라고 해서 왔다. 사모가 힘든데 와서 밥먹으면서 너무너무 감사해하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그렇다.
못 깨달은 사람은 뭐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지 얼굴에 내창살을 쓰고 말이에요 우리 교인들 말고, 얼굴에 내창살을 쓴 사람들은 은혜 못 받아서 그렇다. 제 앞에서 얼굴 피고 사세요. 들통나니까. 은혜 못 받으면 말이 많고 복잡하다. 그런데 은혜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이게 깨닫는 것이다.
이 백성들이 깨달았다. 17절에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의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중에서 우리를 보호 하셨음이여. 무슨 말인가? 이 은혜를 계속해서 깨닫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시고 해방시키셨고 그리고 내 삶을 보장하시고 승리케하시는 이 은혜를 계속 깨닫고 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람이 깨닫지 못한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이 은혜를 깨달아야 된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5) 일어난 일
마지막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여호수아가 그 백성들을 다 불러놓고 자기 인생의 전 생애를 두고 백성들에게 말한다. 우상숭배하지 말아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다. 이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이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하게 된다.
왜 우리가 여호와만 섬겨야 하는가? 이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우상숭배하는 길은 망하는 길이요 이 길만이 사는 길이다.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볼 때 모든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어느 바닷가 한 마을에 있었던 일이다. 이상하게 그 마을에 들어오는 배들이 들어오다가 자꾸만 배가 파선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될까? 어부가 바다 속을 들어가 보니까 바다에서는 안 보이는데, 밑에는 큰 바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배들이 들어오다 보니까 그 바위가 안보이니까 바위에 걸려서 배들이 파선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이 바위를 치우든지 어떻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낸 것이 등대를 하나 세웠다. 그러니까 배가 오다가 무엇이 있으니까 그것을 피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배들이 파선 안 되고 마을까지 편안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사람들이 한번 두 번 오다 보니까 그걸 알게 된 것이다. “만약에 저 깃발 없었으면 내 배가 파선 되었을텐데, 누군가 저 깃발 세워서 피해갈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누가 이것을 했을까 하고 찾아보다 보니 어떤 아저씨가 이것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아저씨에게 가서 “고맙다고 당신 때문에 내 배가 파선이 안 되었다고” 그러니 동네사람에게 이 소문이 퍼지게 되고 나라에 까지 소문이 나서 정부에서 이 사람에게 포상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게 무엇인지 아는가? 사람들이 전부 다 사단에게 속아서 우상숭배 하고 귀신섬기고 있다. 그래서 우리 는 가정에서 왜 깃발을 들고 말씀운동을 펴야 하는가?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사람들이 멋모르고 가다가 결국은 거기에 걸려 넘어져 죽는다. 이걸 꺽는 길, 사는 길을 말하는 것이 바로 다락방이다.
왜 이 시대에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셔서 말씀운동을 하게 하는 겁니까? 왜 우리 교회는 성도들이 모여서 말씀운동을 펴게 하는 겁니까? 이것이 사람 살리는 길이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배를 파손하게 하지 않으니까 마을에서도 칭찬받고 나라에서도 칭찬받게 된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사람 살리는 일 할 때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이런 축복을 우리 성도들은 다 누려야 된다.
결론 맺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요, 하나님의 걸작품인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우리 신앙의 자세만 바르게 갖추면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의 문을 여신다. 이런 축복을 우리가 같이 누려야 할 줄 믿습니다.
[기도]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요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복된 존재인 것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소원이 예배의 축복을 누리는 것임을 알게 하셔서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뿐 아니라 정말 사람을 살리는 일에 등대의 역할을 하는 이런 축복된 자로 우리 생애가 쓰임을 받도록 주님이 복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한 생애 살아가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게 하시고 우리 가정이 생업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