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조회수 : 3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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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예배 |
제목 |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성경 |
요5:1-7 |
일시 |
2025년 7월 6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예배하는 자
성막 운동
▶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광야에 나와서 생활하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광야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이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셨고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모일 때마다 성막 주위에 모이고 항상 성막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리고 집을 지을 때도 항상 성막을 향해서 문을 열어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정착할 때는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 교회와 연결되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궤, 성막, 성전의 핵심은 언약궤 안에는 돌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나 담은 항아리가 있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이 우릴 인도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왜요? 이 땅에 분명히 사람을 속이고 망하게 하는 사단을 꺾는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우린 어떤 노력, 어떤 방법으로도 죄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 죄를 해결한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지옥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옥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시고 주인이시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고 인도하신다. 이게 성경의 본질이고 교회의 본질입니다.
예배하는 자
▶ 그러면 이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이 사는 동안 가장 축복 된 일 중의 하나가 예배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예배가 되고 있다. 이건 은혜고 축복입니다. 마가다락방교회를 보면 행2:42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그게 마가 다락방 성도들의 삶입니다. 사도의 가르침 즉 말씀을 따라. 그리고 그들이 서로 교제하고 그 말은 천국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우린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천국 백성이기 때문에 서로 교제하는 겁니다. 그리고 떡을 떼며 이건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 기도 속에서 영적 힘을 얻고 산다. 행2:46절 이하에 보면 날마다 집에서 날마다 성전에서 그들이 그 믿음 속에서 승리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확인하고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고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겁니다. 구약성경에 레위기를 보면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피 제사 곧 예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배드릴 때 어떻게 합니까? 어떤 사람은 양을 잡아서 특별한 사람은 소를 잡아서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잡아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럼 잘 보세요. 짐승을 드릴 때는 죽여서 털을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피를 흘려야 합니다. 불을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럼 그것을 잡고 털을 뽑고 불에 태우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시간과 정성과 수고를 거기에 담는 겁니다. 그게 예배입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보면 일 계명부터 사 계명까지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우상 섬기지 말아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 안식을 지켜라.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 속에는 말씀도 있고 기도도 있고 찬양도 있습니다. 헌금도 있습니다.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이것을 가장 잘했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았습니다. 다윗의 인생은 예배축복 속에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이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늘 보좌
▶ 사람이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 그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누구의 말을 듣느냐? 사람이 누구와 함께하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누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최고 축복입니다. 다윗은 어떤 고백을 합니까? 시11: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다윗은 늘 예배 속에서 하늘 보좌를 사모했습니다. 계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우리의 구원이 어디서 오느냐? 하나님과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에서 온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하늘 보좌를 사모하고 사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주기도문을 합니다. 주기도문을 보면 마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 나라. 하늘 보좌를 늘 의식하고 사모하고 산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합니다. 사도신경을 보면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이게 하늘 보좌입니다. 우린 하늘 보좌를 늘 의식하고 고백하고 사는 겁니다. 이게 영적 생활입니다. 성경 속에 기도 속에 신앙고백이 하늘 보좌를 누리는 겁니다. 이것을 누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임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키운 사람
▶창37:2에 요셉이 17세 때 일입니다. 청소년이죠. 뭔가 생각이 있는 때죠. 그런데 그때 형들과 양을 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한테 고자질합니다. 또 아버지가 다른 형제보다 요셉을 편애합니다. 채색옷을 요셉에게만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자기를 다른 형제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알고 거드름 피는 겁니다. 형들이 좋아할 리가 없죠.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한테 내가 꿈을 꿨는데 형들의 단이 내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합니다. 귀싸대기 맞을 일이죠. 형들이 더 미워할 수밖에 없죠.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엄마 없이 자란 그 상처가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겁니다.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지혜롭거나 선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아버지가 답답하죠. 아마도 가슴 아픈 얘기를 했겠죠. 나도 몰라서 엄마가 나를 많이 사랑해서 거드름 피우면서 형 에서한테 잘하지 못해서 결국 내가 쫓겨났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나에게는 기도의 비밀이 있었다. 아마 이런 얘기를 했겠죠. 이게 가슴에 담긴 거죠. 요셉은 실제 기도가 되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갔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더 주님을 의식하고 바라보며 기도하며 일을 했을 겁니다. 감옥에 갔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나중에 왕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셉이 총리가 되어 권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가 할 일은 형들의 가족을 다 살리고 보디발 장군의 집도 살리고 자신을 잃어버렸던 장관도 살리고 전 세계를 다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했을까요? 요셉이 훌륭해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그를 키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키운 겁니다. 저는 이런 은혜를 사모합니다. 엄마 없이 아버지 품에서 10여 년 자라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숨겨진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생각을 바꿔주시고 마음의 그릇을 넓혀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인내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시고 살리게 해주시고 용서하게 하시고 배려하게 하시고 섬기게 하신 겁니다. 이게 자기 노력으로 인격으로 된 겁니까? 저는 이것을 보면서 제가 저를 봅니다. 알게 모르게 제게 숨겨진 상처가 드러나는 겁니다. 이게 내 발목을 붙잡는 겁니다. 어느 날 보면 나도 모르게 못된 짓을 하는 겁니다. 알고도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요셉에게 임한 그 은혜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 이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릴 바꿔주셔야 합니다. 그 은혜가 임하면 요셉처럼 별로 좋지도 않은 사람을 하나님이 바꿔주십니다.
2- 네가 낫고자 하느냐
유대인의 명절
▶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삼십팔년된 병자
▶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3- 절대 은혜
많은 병자들
▶ 지금 이 말씀에 보면 그 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병자들의 소망이 뭡니까? 하나밖에 없습니다. 물이 움직이면 내가 빨리 들어가야겠다. 아주 절박합니다. 단순합니다. 쉽게 말해 치유받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이때가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명절은 축제고 잔치고 많은 사람이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그 잔치 자리에 명절에 갈 수 없는 병자들이 있는 곳이 베데스다 연못이었습니다. 그 잔치를 많은 사람은 즐기고 행복해하고 좋은 시간을 갖는데 그 잔치와 상관없는 외로운 사람, 쓸쓸한 사람, 소망 없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찾아가신 겁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잔치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병
▶ 그런데 그 많은 병자들이 가장 오래된 병자가 38년 된 병자입니다. 예수님이 그 많은 병자 중에 제일 오래된 병자인 38년 된 병자를 본 겁니다. 그럼 이분은 적어도 나이가 38세 이상인데 38년 동안 누워있었다는 것은 하체는 아예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육신만 그렇습니까? 마음과 생각은 힘을 잃었고 환자를 돕는 가족과 주변 사람은 한계가 왔겠죠. 예수님이 바로 이 사람에게 가서 대화하시는 겁니다. 우리 말에 긴병에는 효자도 없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고 싶고 돌보고 싶은데 너무 오래 병에 걸리면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38년 동안이나 병이 지속하니까. 누가 거들떠나 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묻는 겁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의 대답
▶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제가 낫고 싶습니다. 제가 낫고 싶어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럴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물이 움직일 때 저를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날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내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기를 쓰고 내려가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서 나는 순서도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수없이 많은 실패와 노력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생각도 마음도 삶도 다 무너진 겁니다. 자기가 거기에 있는 것은 낫고 싶은 건데 그 본질을 잃어버린 겁니다. 환자의 아픔이 뭔지를 압니다. 육신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한 것이 있습니다. 육신의 고통만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과 다르게 사소한 일에도 외로워하고 소외감을 느끼고 슬퍼합니다. 그만큼 마음이 무너지고 약해진 겁니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비참한 사람이죠. 예수님은 바로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묻는 겁니다.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이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너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이건 절대 절망입니다.
절대 은혜
▶ 자기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누구도 이분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절대 은혜밖에는 없다. 저는 이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야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율법을 다 지키다가 잠깐 실수해서 하나만 안 지키면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한 저주받은 자가 되는 겁니다.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우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습니다. 화낼 수도 있습니다. 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옥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우리가 24시 하나님을 생각하고 선한 생각을 하고 바른 삶을 살다가 잠깐 실수해서 화가 나고 욕하고 못된 생각을 하고 그럼 법을 어기는 겁니다. 성경에는 그래서 지옥 간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얘기입니까? 율법주의자들이 사실은 속이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서 구원받겠다고 생각한 바울이 복음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린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 자꾸 사람은 착각합니다. 내가 뭘 해서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찬송가 83장을 선택했습니다. 나를 위로할 이 나를 구원하실 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이. 나의 갈길 인도하실 이. 주 예수밖에 없네. 슬퍼 낙심될 때 내 친구 되시는 구주 예수밖에 없도다. 저는 이 고백이 찬양이 제 고백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선택했습니다. 저는 제 성격, 성질, 인격을 안다고 생각하는데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저는 주님이 나의 왕,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가 주인의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저는 절망 합니다. 저는 내 인생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주님 마음대로 사용해 주세요. 이렇게 고백하고 기도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내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내 속에 숨겨진 뿌리 깊은 것이 남아있구나! 그런 절망이 올 때가 있습니다. 너의 양심적인 고백이 있다면 내가 아직 들통나지 않았을 뿐이구나! 그럴듯하게 사람 앞에서 포장하고 있었을 뿐이구나! 저는 그럴 상황, 그런 자리에 없었을 뿐이지. 이게 다행이고 은혜지! 저는 안된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이 저의 양심적인 고백이 되는 겁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게 이해가 되고 고백이 됩니다. 정말 주 예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절대 안 되는 나를 보면 절대 은혜밖에 소망이 없습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가 예배한다는 것은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겁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우리의 본질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주변에 내 마음을 뺏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주 예수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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