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경의 열매―조엘 소넨버그 ⑸] 허벅지 살 3/4떼준 아버지 있었기에…
“조엘은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화상 환자였을 겁니다.
전신 화상도 큰 문제였지만 두개골에 입은 화상이 최악이었습니다.
의사들은 세계 각지에 전화를 걸어 두개골 화상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는 의사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심한 화상을 입고 살아남은 사람은 그때까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나는 슈라이너즈 화상연구소로 옮겨졌다.
당시 내 담당 간호사였던 베티 듀 여사는 나를 처음 보았을 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슈라이너즈 화상연구소는 미국 전역에서 유일하게 피부은행을 운영하는 병원으로 나처럼 중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치료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기금으로 운영되는 이 병원에선 치료비가 필요 없었다.
부모님의 큰 고민거리를 해소해준 것이다.
실로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비로소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한국의 친구들에게 내 치료 과정을 설명하겠지만 한 마디로 처절했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겪어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슈라이너즈 연구소에서 나는 ‘세균통제장치’라는 곳에 갇혔다.
침상을 중심으로 두꺼운 플라스틱 천막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드리워져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켰다.
다른 환자나 방문객,의료진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켜 세균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의료진은 플라스틱 천막 중앙에 뚫린 2개의 구멍으로 손을 집어넣어 내 기저귀를 갈고 상처를 치료했다.
나는 천막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목구멍에는 호흡용 튜브가 꽂혔으며 팔과 다리는 물론 기저귀를 찬 부분만 제외하고 온몸이 붕대로 감겨진 채 큰 대(大)로 누여 있었다.
한시가 급했으므로 나는 슈라이너즈 연구소에 도착한 다음날 바로 첫번째 피부이식수술을 받았다.
하복부의 건강한 피부조직을 채취해 온통 타버린 등의 상처를 덮는 게 수술 목적이었다.
좁은 아랫배의 피부를 등 전체에 이식하는 수술이었으므로 나는 1ℓ 이상의 피를 흘렸다.
1ℓ라면 어린아이의 혈액 총량의 배에 달하는 양이었다.
목숨이 걸린 위험한 수술이었다.
사흘 후 이번엔 가슴의 상처를 덮는 2차 수술을 받았다.
역시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렸다.
또 그로부터 나흘 후 아빠의 허벅지에서 피부조직을 떼어내 내 다리에 이식했다.
내 건강한 피부조직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다른 사람의 피부에 대한 거부반응을 줄이고 세균 감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몇 주 동안 씨름해야 했다.
내 체온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오후에 섭씨 40도를 오르내렸고 밤이 되면 그 이상으로 솟구쳤다.
나는 발버둥을 쳤고 간호사들은 내 손발을 침대에 묶어 다치지 않게 했다.
나도 나였지만 허벅지 피부조직의 4분의 3을 떼어낸 아빠도 며칠 동안 뜨거운 다리미를 피부에 대고 있는 것과 같은 고문을 당했다.
베티 듀 여사는 나중에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투사였어요. 당신의 모습에서 희망의 조짐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