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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아비가 우거하던 땅(창 37:1-4) 조회수 : 1917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5-11-01
  첨부파일:   20051030 주일강단 메시지.hwp(56K)
2005년 10월 30일 속초 하나로교회 주일 강단 메시지
아비가 우거하던 땅(창세기 37:1-4)

본문말씀)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야곱의 약전이 이러 하니라 요셉이 십 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설교내용)
1. 유업을 이을 자
1) 영원한 반석
① 신령한 복
감리교 신학을 졸업하시고 목회를 열심히 하는 분이 계신데, 이 분이 아무리 목회를 해도 목회가 힘들고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분이 다락방 복음운동에 동참하게 되어서 다락방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해서 얼마나 다락방을 열심히 했냐 하면 수십군데 다락방을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다락방에 참여하는 사람도 그렇고 자기도 그렇고 계속 졸더라. 그러니까 내가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분이 내가 감리교 신학에서 배운 것이 열심히 하면 된다. 노력하면 된다고 배웠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는 것이지 내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증하는 것을 제가 들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굉장히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뭔가를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겠는가? 내가 열심히 더 많이 하면 더 많은 복을 주시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한다. 물론 나쁠 것은 없다. 우리가 게으르고 마땅히 할 일을 안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복이 임하는 것인가?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이 부분을 확인해야 된다. 이게 확인이 안 되어지면 나도 모르게 이 목사님처럼 결국은 실패하다가 나중에 고생 고생하다가 나중에 깨닫게 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의 말이 예레미야입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엘리야입니다. 선지자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대답한다. 이때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었을 때 베드로가 고백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을 하는데, 물론 정말 예수가 하나님 만나는 길이고, 죄문제 해결하시고, 사단을 멸하는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고백을 했다. 그런데 그 때 베드로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바요나 시몬아 네게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되심을 깨달은 것은 베드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시는 것이다고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확인해야 되는가?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믿을려고 노력해서 믿음이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믿음이 오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한 말씀이 그것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게 복이 있도다. 이를 내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또 이르시되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고 천국열쇠를 네게 주겠다고 했다. 베드로가 “예수님, 제게 반석같은 축복, 음부의 권세를 이길수 있는 축복, 천국열쇠를 내게 주세요!” 해서 이런 것들이 임한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되고 깨닫는 그 순간 반석같은 축복과 천국열쇠가 주어졌다.
우리는 이 부분을 확인해야 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종교성이 있어서 내가 기도와 헌신과 봉사를 많이 하면 축복을 많이 받을 것이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떤 고백을 하냐면 “하나님이 나를 창세전에 택하셨다. 왜냐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창세전에 택하셨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찬송할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이 부분을 꼭 확인해야 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천국 백성이 되었는가? “하나님 나를 천국 백성을 삼아 주세요” 해서 천국 백성이 되었는가? “하나님 내게 천사를 보내 주셔서 나를 지켜 주세요” 해서 천사가 동원이 되었는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우리의 이름이 천국에 기록되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그 순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미 천사들을 구원받을 후사들을 도우라고 천사를 이미 보내셨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천사들이 동원된다. 이게 성경의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을 착각한다.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종교성이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우리가 전에 이렇게 배웠다. 그런데 성경에는 어디에도 이렇게 가르친 적이 없다.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그리스도가 깨달아지고 이 고백을 하니까 반석같은 축복이 임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고 천국 열쇠가 주어지는 것이지, 베드로가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많이 따라다녔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많은 헌신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깨달아지는 순간 임하는 축복이다. 이 신령한 복이 우리에게 임했다.
② 영원한 반석
그러면 이사야 26:4에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시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영원히 의뢰해야 될 분이 누구인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반석같은 축복을 주시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시고 천국열쇠를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신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영원한 반석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가 이 축복을 누리지 않으면 영원한 반석이 없어지고, 누리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겐 영원한 반석이 주어졌다. 그래서 이 영원한 반석을 우리가 누리는 것이 여호와를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를 바라보면서 영원한 반석같은 축복이 내게 있음을 꼭 확인하는 복된 증인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유업을 이을 자
그러면 무엇이 깨달아지냐면 갈라디아서 3:29에 바울이 이런 고백을 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우리가 그리스도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자라는 것이다. 유업을 이을자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나의 것으로 받을 수 있는 상속자라는 말이다.
우리가 자녀를 길러보면 이 말을 잘 알 수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준다. 자식이 내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자식이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모든 헌신을 다하며, 그 아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부모가 모아 놓은 모든 재산도 자식에게 물려준다. 그것이 유업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나를 사랑해 주세요, 나를 가르쳐 주세요 하기 때문에 부모가 가르쳐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자녀기 때문에 부모는 일방적으로 모든 사랑을 다 베풀어주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유업을 이을 자다. 꼭 확인하셔야 한다. 이런 축복된 사람이기 때문에 사단이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우리를 속이는 것 밖에 없다. 우리가 전에 어떠한 운명 가운데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지지 않도록 영원히 붙잡고 계신다.
3) 훌륭한 생각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자요 영원한 반석을 붙잡을 신령한 복을 받은 자인데 우리에게 문제가 올 수 있다. 어떤 때는 억울한 문제, 답답한 문제,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실패를 당하기도 하고 한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인도를 받느냐가 중요하다. 훌륭한 생각을 하는 것 이것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알고 보면 하나님의 허락 속에 있는 것이다.
저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공부를 했는데, 떨어져서 1년을 재수했다. 얼마나 힘이드는지, 기차를 타고 고향에 가는데 솔직한 마음으로 뛰어 내려서 죽고 싶더라. 어머니 아버지가 죽도록 나를 공부시켰는데, 대학에 떨어졌지, 일가친척 볼 낯이 없지, 친구들 볼 낯이 없지, 자존심은 상하지 솔직한 마음으로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리고 싶었지만 제가 겁이 많고 용기가 없어서 뛰어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참 하나님의 은혜다.
그런데 그 때 제가 대학에서 떨어지고, 1년을 시골에서 공부하며 많은 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이런 것을 허락해 주셨구나! 제가 그 뒤로부터 내 삶을 살아가며 염려도 오고 불신앙도 왔지만,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더 큰 일을 하실 것이다.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제가 이런 믿음이 생겼다. 성도들에게 혹시라도 어려운 문제 생기면 하나님을 바라보라. 이게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하나님은 우리를 망하게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혹시 실수하고 잘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이것을 바꾸셔서 축복으로 인도하신다.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2. 아비의 우거하던 땅
1) 장자의 축복
오늘 본문 창세기 37:1에 보면 야곱이 아비가 있었던 가나안 땅에 있었다고 했다. 원래 아비가 있었던 이 땅은 장자가 있어야 될 곳이다. 우리가 자녀를 길러보면 부모님의 것이 장자의 것이 된다. 부모의 살던 집이 장자의 집이 된다. 그런데 아버지가 우거하던 가나안 땅에 지금 야곱이 살고있다. 즉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미 창28:13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도망하다가 벧엘에서 너무 피곤하여 잠들었을 때 하나님이 꿈에 보여주셨다. 네 누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그런데 그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땅이다. 그래서 야곱이 가나안 땅에 있다는 것은 이삭의 장자의 축복을 이어받은 것이다. 장자의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이것이 야곱에게 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축복에 대한 얘기가 있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에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를 따라간다. 마지막에 엘리야가 물어본다. “엘리사야 니가 내게 무엇을 원하느냐? 무엇 때문에 너는 끝까지 나를 따라오느냐? 다른 생도들은 가다가 그만두는데,” 그래서 엘리사가 “선생님의 영감의 갑절을 받길 원합니다.” 그 말은 장자의 축복을 받고 싶다는 얘기다. 엘리사가 자기 선생님에게 많은 제자들이 있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있어서 장자의 축복을 내가 받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이 축복은 갑절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엘리사가 장자의 축복을 사모했는가? 엘리야가 사는 시대보다 엘리사가 사는 시대는 더 완악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갑절의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 성도들은 꼭 확인해야 된다. 지금 제가 어렸을 때 모습과 후대들이 자라는 모습하고는 전혀 다르다. 훨씬 더 힘든 세상을 우리 후대들은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 현장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다른 어떤 때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한계를 많이 경험한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세상을 이길 길이 없다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세상을 이길 길이 없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저같은 경우 성질이 급한 것이 고질적인 문제다. 제가 은혜 충만하면 제가 저를 자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은혜를 유지 못하면 성질이 올라온다. 내게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저는 안 되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한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다스려주지 않으면 제가 제 성질을 이길 수 없다고 하나님 앞에 고백한다. 오죽하면 제 아내와 지금은 어디를 가도 생각하면서 가지만, 옛날에는 10m 정도 앞에 다녔었다.
한번은 제 아내가 당신이 혼자 운동하지 말고 영랑호를 같이 걷자고 해서 같이 갔었는데, 같이 가면서 나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저 사람은 천천히 오는데, 저는 이게 빨리 걷지 않으면 성질이 난다. 천천히 걸어서 무슨 운동이 나겠냐고 하는 것이 제 생각이다. 그 다음부터 성질이 나서 당신 혼자 다니시라고 하면서 포기했다. 제 수준이 그렇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필요하구나!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주지 않으면 세상을 어떻게 살겠는가? 부인 하나도 맞춰주지 못하는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겟는가?
내 고질적인 문제는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많이 착각한다. 내가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자신 앞에 내 양심을 내놓고 잘 생각하면 저는 안되더라. 그래서 저는 장자의 축복이 정말 필요하다. 제가 정말 하나님 은혜를 받아야 성도들을 도울 수 있다. 성도들이 안 따라오면 제가 속으로 정말 죽는다. 하나님 은혜로 느긋해지고 기다려주고 이렇게 되는 것이 장자의 축복이다.
2) 후대의 축복
그리고 야곱은 후대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저는 에서가 야곱을 보니까 물질의 축복은 에서가 더 많이 받았다. 왜냐면 에서는 장정 400명을 데리고 있었다. 그 말은 그 당시 얼마만큼 축복을 받아야만 장정 400명을 거느릴 수 있겠는가? 지금으로 말하면 우리가 기업을 하면 직원이 400명이라는 말이다. 물론 야곱도 많은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지만, 제가 볼 땐, 야곱과 에서가 받은 축복을 서로 비교해 볼 때, 야곱이 더 적다. 그런데 에서는 나중에 보니까 후대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는가? 나 자신은 축복을 받았는데, 후대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야곱은 에서에 비해서 물질적인 축복을 덜 받았지만 12지파의 조상이다. 요셉같은 후대를 하나님이 주셨다. 이것을 우리가 노력해서 되었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다. 에서는 은혜 받는 일에 관심 없었다. 세상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야곱은 늘 하나님 앞에 나와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인도 받았는데, 그 후손 중에 하나님의 소원을 이룰 후대가 나왔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내가 조금 실패했어도 우리 자식이 잘 되면 성공한 인생이다. 그런데 내 자신은 성공했는데, 자손이 다 망해버렸다면 우리 인생이 실패하고 만 것 아닌가? 야곱과 에서의 생애를 보면 야곱은 후대까지 축복을 받았다.
3) 가나안의 축복
① 하나님의 인도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야곱은 가나안의 축복을 받았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 물론 자기가 너무 급해서 인도를 잘 못 받지만 삼촌 라반의 집에 가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였다. 언약가진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재산이 많아져서 하나님이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할 때도 인도받는다. 그리고 나중에 디나 때문에 고생하면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렇게 야곱의 생애는 완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항상 축복을 예비하시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신다. 우리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말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듣고 행할 때는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다. 우리가 야곱의 생애를 봐도 하나님이 항상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떠나라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다.
개인적으로 봐도 과거에 우상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교회와서 말씀 듣다 보니까 우상숭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다. 이것을 제사를 안 지내고, 우상숭배를 안 하려고 하다보니 많은 갈등과 힘든 일이 있었는가?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하지 않음으로 이것이 축복의 길임을 알게 되었지 않은가?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는 항상 축복을 예비해놓으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야곱이 이렇게 인도받는 것이 바로 우리는 가나안이다.
② 그리스도 안에
가나안 땅에 있게 되었는데, 가나안은 메시야가 오실 땅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이삭에게 말씀하셨던 이 땅은 야곱이 차지한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데로 이 땅은 야곱이 차지할 땅이 아니다. 원래는 에서가 차지할 땅이다. 그리고 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살았다. 장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결혼하고 가나안 땅에서 축복받았고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런데 에서가 가나안 땅을 떠나고 아무 상관없는 야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
야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에서를 보내고 야곱을 그 곳에 오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있다. 야곱이 인본주의 쓰고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시간에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다 받는다. 이게 야곱의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③ 임마누엘
그러면 가나안 땅은 결국 메시야가 오실 땅인데, 그것은 메시야와 함께 산다는 것 아닌가? 이것이 임마누엘이다. 결국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말은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며 살라는 말이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어떤 문제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한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오 주는 나의 산성이시다.” 주님이 함께 하는 것을 늘 경험하고 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이시오 큰 도움이시요 나의 힘이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하는 고백이다.

3. 우리의 미래
1) 나의 감사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붙잡아야 된다. 우리 미래는 어디에 달려 있는가?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저는 우상숭배하는 가정에서 유교집안에서 자란다. 지금도 저의 육촌 8촌 식구들은 우상숭배하며 살고 있다. 제가 만약에 예수님 믿고 있지 않다면 우리 친척들처럼 우상숭배하고 제사 지내며 영적으로 시달리며 고통당하고 있을 것이다.
저희 친척들 중에 술 때문에 돌아가신 분이 여러분 계시다. 저의 작은 아버지 같은 경우는 평생에 알콜 중독으로 사시다가 너무너무 비참하게 돌아가셨다. 제삿날이 되면 저희 어머니가 음식을 장만하고 저를 데리고 제사하는 큰 집에 갔다. 어머니가 아무리 음식준비를 많이 해가도 관심이 없다. 저희 큰아버지는 어머니 손에 소주 댓병이 들려 있느냐 없느냐에 관심이 있다. 그것만 들고 오면 잘 왔다고 우리 어머니에게 그러셨다. 다른 것 아무리 해가도 관심이 없다. 평생 소주만 드시다가 돌아가셨다. 제가 만약 예수를 안 믿고 살았더라면 제 모습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까 틀림없이 저는 우리 친척들처럼 우상숭배하고 제사지내고 소주병 붙들고 “이게 제 주님입니다!” 아마 제가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저는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하다. 나를 그런 우상숭배하는 집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불러내셨다. 영원한 저주와 운명 가운데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나를 복음 깨닫게 하시고 복음 전하는 일에 내 생애 방향 맞추고 살게 하신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사실은 야곱의 생애도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까 야곱의 모든 삶의 모습이 나중에 보니까 모두 축복이었다. 그래서 야곱의 생애엔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도 한번 보세요. 병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암이라고 하는 병은 우리에게 병이 발견되는 것이 지금이지만, 거의 10년 20년 전부터 암이라는 병이 걸릴 수 밖에 없는 뭔가가 우리속에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쌓여져서 10년, 20년 후 이게 암이라는 병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가 길 가다가 자빠져서 아플 수 있고, 전염으로 인한 병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거의 일반적인 병은 쌓여져서 오게 된다. 알콜중독도 계속 술을 많이 마시게 되니까 혈액속에 알콜의 농도가 계속 유지되어야만 하는 것이 알콜 중독자 아닌가?
그러니까 내 생활습관이 나의 미래다. 불신앙하게 되면 불신앙의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 내가 지금 답답하고 어렵지만 믿음을 선택하게 되면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참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된다. 내가 지금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게 되면 감사의 열매가 맺어진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면 열매가 그렇게 맺어지게 된다. 나무를 심어놓으면 그 열매는 그대로 거두게 된다. 자기가 심은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감사를 회복하고 있으면 감사의 열매가 맺어진다. 이것을 저는 깨닫게 되었다.
2) 나의 관심
나의 관심이 우리의 미래다. 야곱의 관심은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단을 쌓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았다. 에서의 관심은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제가 야곱과 에서의 성격을 비교해 보았을 때, 에서의 성격이 더 낫다고 보여 진다. 남성답고 호방하고 그런데 야곱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생애가 축복을 받았다. 그러면 야곱이 잘못했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냐? 그것이 아니고 야곱의 관심은 자기의 부족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단을 쌓고 인도를 받았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가 어릴 때 동화책에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얘기가 있다. 개미는 겨울이 올 것을 대비하며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겨울을 준비한다. 베짱이는 계속 즐기다가 어느 날 겨울이 왔는데, 개미는 일 할 수 없을 때 그동안 쌓아놓은 것을 먹고 사는데, 베짱이는 먹을 것이 없어서 개미에게 와서 먹을 것 달라고 하는 것이 개미와 베짱이 얘기다. 이렇게 세상의 하찮은 곤충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이 땅에서도 육신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를 준비한다. 지혜 없는 사람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몽땅 쓰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육신적으로도 미래를 준비한다면 우리의 영적 미래는 지금 우리가 은혜를 사모하고 예배에 승리하게 되고 말씀의 인도를 받는 것이 쌓여져서 우리의 미래가 된다.
저는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 나이 먹어서 이상하게 되는 사람을 저는 봤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 오래하면 할수록 늘 은혜를 사모하고 더 멋있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런가? 늘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멋있어진다. 그런데 은혜를 못 받고 말씀인도 안 받는 사람들은 나이 들면 들수록 자기 고집만 생기고 이상해진다. 지금 은혜 생활 못하는 사람들은 미래가 뻔하다. 영적 미래가 뻔하다는 말이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저와 연세가 비슷한 사람들은 저와 같이 늙어가는데, 나이 들면서 멋있어져야지, 아이구, 저인간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제가 나이가 들면서 “우리 목사님 갈수록 멋있어진다.” 이렇게 되어야 되지. 아이구 우리 목사님이 나이가 늙어가더니 하는 꼬라지 봐라. 하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말씀의 은혜를 받고 말씀의 인도 받으면 날이 갈수록 멋있어진다. 우리의 지금의 모습이 나중에 영적 미래이다.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지금 조금 부족하더라도 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날로날로 은혜 가운데 있다. 지금 은혜 못받고 있는 사람은 가면 갈수록 마른 막대기처럼 이상한 사람 된다.
3) 나의 기쁨
정말 나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다락방 하기 전에는 주일만 지나면 피곤해졌다. 이 지역에 저와 형제같이 지냈던 목사님들이 여러분 계셨다. 그래서 월요일만 되면 같이 모여서 볼링도 치고 사우나도 하고 남대천에 가서 고기 잡으러 가기도 하고 하면서 지냈다. 너무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이상하게 목사가 주일만 되면 기분이 좋아야 되는데, 주일만 되면 눌려서 오늘 무슨 스트레스 받을까 고생했는지 모른다. 주일 저녁이 되면 완전히 파김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월요일만 되면 사는게 귀찮아서 목사님들끼리 모여서 떠들고 교인 흉이나 보면서 하루를 지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이렇게 지냈는데, 월요일을 그렇게 안하면 한주간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래서 고기를 잡는데(고기 잡는 것이 재미있기는 하지만)거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왜냐면 다 잊어버리기 위해서 고기 잡는데 생을 다 드렸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다. 지금은 성도들이 하기 이전에 다락방 하면 힘나는 사람이다. 월요일날 다락방을 하는데, 물론 육신적으로는 피곤하다. 그런데 어떤 기분이냐면 우리가 일을 열심히 하고 나서 샤워 한 번 하고 나면 기분이 좋은 것처럼 월요일 날 다락방을 몇 군데 뛰고 돌아오면 육신적으로는 피곤한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복음 전하도록 사용하는데 너무너무 기쁘고 감사한 것이다.
우리 성도들의 기쁨이 무엇인가? 이것이 우리의 미래이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좋은일이 생기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그런데 나를 통해 생명들이 살아난다. 성도들이 복음이 뿌리내리고 제자들이 세워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 제가 1부 예배드리고 밥을 먹는데 어떤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떤 분을 영접해달라고 내가 밥 먹다 말고 숟가락 놓고 왔다. 그런데 제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기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 분 감사하고 그 분 따님 영접하고 나를 통해 생명이 살아나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여기 앉아계신 성도들 중에 저를 통해서 영접한 사람들 있잖아요. 이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를 통해 생명들이 살아나고 있고 성도들이 복음이 확립되고 있고, 그리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복음을 말하게 해서 치유하고 있고 나를 통해 제자들이 세워지고 있고, 얼마나 감사한가? 이것이 나의 기쁨이다.
성도들의 기쁨이 무엇인가? 우리는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도 기쁘다. 그런데 나를 통해 생명이 살아나고 제자들이 세워지는 것 이것만큼 기쁘고 감사한 것이 없다. 다니엘서 12:3에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인도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다. 정말 우리의 기쁨이 찰나와 같이 육신적인 기쁨인가? 한 생명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면 그 생명은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이다. 바로 이 일에 우리가 쓰임받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내가 직접 복음 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도 대상자를 놓고 기도하고 연결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오늘도 그 권사님이 창원에 계신 권사님인데,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자기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니까 너무 감사해서 엉엉 울더라. 자기가 그렇게 한을 품고 기도했는데, 아버지가 영접하니까 얼마나 감사한가? 또 막내 동생은 경상도 왜관에서 사는데, 동생이 예수영접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그 권사님이 다락방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꼭 우리교회에다가 연결을 시켜줘야 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까 그 권사님 친구가 다락방을 하는 사람이더라. 참 감사하다. 전혀 보지도 못한 사람인데, 연결시켜서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이 일에 쓰임 받고 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통해 생명 살리는 일 하길 원하신다. 이게 정말 우리의 기쁨이 되면 우리 미래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는 것이다.

말씀정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원한 반석 신령한 복을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이을 자기 때문에 어떤 문제사건 와도 믿음 선택하면 승리한다.
가나안 땅의 축복을 우리는 받았다. 이 땅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장자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것이다. 이 때 우리 후대들이 살아나고 나 자신은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감사하는 것, 내가 지금 관심 갖고 있는 것, 지금 나의 기쁨이 나의 미래의 기쁨이다.

언약기도)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신령한 축복 속에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약속대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로 이 축복 속에 있사오니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도 믿음을 선택하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시고 후대의 축복을 주시고 가나안의 축복을 주셔서 가장 바른 인도 받게 하시고 나의 참된 감사 나의 참된 관심 나의 참된 기쁨이 하나님께 있게 하시고 사람 살리는 일에 우리 생애가 쓰임받도록 주님이 축복 하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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