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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와서 보라 조회수 : 64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5-06-01
  첨부파일:   20250601.hwp(304K)

분류

주일예배

제목

와서 보라

성경

4:27-30

일시

202561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힘을 얻는 시간

1. 영적 세계

인기 영화배우가 있습니다. 하희라씨입니다. 남편도 인기 연예인입니다. 속초에서 대조영을 촬영했던 최수종씨입니다. 하희라씨는 부모가 불교를 열심히 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원한 건 아닌데 8년 동안 귀신들이 자기를 따라다녔다는 겁니다. 인기 연예인으로 배우 생활을 할 때도 귀신들이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밤에 잠을 못 자는 거죠. 그리고 동료나 주변 사람 중에서 죽는 사람이 있으면 죽은 사람이 계속 보인다는 겁니다. 어떤 때는 귀신이 침대에 자기 옆에서 잔다고 합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늘 보이고 들리는 겁니다. 하희라 씨에게 귀신이 실상이고 실제로 괴롭힘을 당하는 겁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운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확인하면서 많은 분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간증하고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귀신이 안 보입니다. 시달리는 것도 잘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영적인 세계를 부정할 수 있습니다. 늘 시달리고 고통당해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영적 세계를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 문제도 없고 시달려보지도 못한 사람은 영적 세계가 뭐야? 이렇게 됩니다. 위험한 거죠. 사울 왕이 왕인데 악령에게 시달렸다. 삼상16:23에 나옵니다. 왕인데 왕의 권력으로 악령을 못 이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하들이 다윗이라는 수금치는 사람을 불러옵시다. 그래서 다윗이 찬양할 때 악령이 떠나가는 겁니다. 사울 왕이 악령에 사로잡히니까. 평생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영적 세계를 모르면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사람이 실제로 시달린다. 어떻게 이해합니까?

2. 영적 과학

과학을 얘기할 때 육신 적 과학, 정신과학, 영적 과학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육신 과학의 혜택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고 풍부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정신과학도 사람들이 종교, 철학, 다 정신과학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여유도 소망도 기쁨도 줍니다. 필요하죠. 그런데 영적 과학이 있습니다. 영적 과학을 실제로 알게 되면 정말 복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묵상할 때 눈에 안 보이지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우상숭배하고 제사 지내고 굿하고 귀신 섬기면 악령이 역사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니까. 우상을 섬깁니다. 내 생각이 가득하면 흑암이 역사합니다. 내 생각 속 하나님이 가득하면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예배드리고 말씀 읽고 듣고 쓰고 묵상하고 소리 내서 읽고 이게 굉장한 겁니다. 지금 교회에서 성경통독을 합니다. 그거 영적인 입장에서 보면 굉장한 겁니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 영적으로 힘듭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암송하고 소리 내서 읽을 때 놀라운 영적 힘이 있는 겁니다. 영적 과학을 알면 이게 얼마나 복된 것인지 알게 됩니다.

3. 기도의 힘

그러면 영적 과학 중에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큽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베들레헴에 예수 탄생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매우 큽니다. 그런데 들어가는 문이 좁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겸손의 문이라고 표현합니다. 로마가 그 당시에 엄청난 핍박을 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틴이라는 황제가 313년에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합니다. 콘스탄틴의 엄마가 헬레나입니다. 이분이 기도의 사람입니다. 헬레나 여사는 원래 여관집 딸입니다. 그런데 로마 장군을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습니다. 그리고 이혼을 당합니다. 혼자가 아들을 키우는데 기도로 키웁니다. 그 아들이 자라서 정치인이 되고 역경을 이기고 로마 황제가 된 겁니다. 그 당시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의 황제가 되어서 로마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합니다. 핍박을 멈추게 됩니다. 지금 그 콘스탄틴의 엄마 헬레나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힘을 믿는다면 기도처럼 행복하고 기쁜 것이 없습니다. 기도처럼 축복 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무기입니다. 이런 증거는 역사적으로도 많습니다.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기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4. 힘을 얻는 시간

그렇다면 우리가 힘을 얻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육신 적인 힘도 마음에 힘도 영적인 힘도 필요합니다. 육신 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 음식도 먹고 운동도 하고 잠도 잡니다. 마음도 기쁜 일이 생기고 칭찬받고 소망이 있으면 마음에 힘이 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뭡니까? 주님에게서 오는 힘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세계를 알고 영적 과학을 아는 사람은 기도가 되는데 기도를 통해서 오는 영적인 힘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막1:35에 새벽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힘을 얻는 시간입니다. 16:12 밤이 맞도록 기도했다. 왜요? 힘을 얻는 시간. 22:39에 습관을 따라서 감람산에 갔습니다. 기도하려고요. 우리가 세상 살면서 책을 읽는 데 힘을 얻는 책을 읽으면 좋은 겁니다. 책을 읽는 데 힘이 빠집니다. 그럼 잘못되고, 손해죠. 책을 읽는데 마음에 위로가 되고 소망이 생기고 힘을 얻는 책을 읽으면 좋은 겁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고민에 빠지고 죽고 싶으면 잘못된 책입니다. 사람을 만났는데 참 좋다. 고맙다. 힘 난다. 그럼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신앙이 들어오고 불안하고 불만이 가득하고 불평이 가득 생기면 사실 잘못된 만남입니다. 물론 뉴스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말을 많이 듣다 보니까. 자꾸 힘이 빠지는 겁니다. 어떻게 될까? 낙심도 되고 마음이 복잡해지는 겁니다. 그렇다고 뉴스도 안 보고 살 수 있습니까? 세상 살면서 필요한 건데 마음이 복잡해지고 산란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한 번도 예외 없이 소망과 힘이 생깁니다. 감사가 나옵니다. 우리가 좋은 분들과 대화하고 믿음의 사람과 만나면 복된 겁니다. 나도 모르게 믿음이 자라고 은혜가 임하고 복된 겁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이런 것을 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분인데 어느 날 무너지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면 저도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사는 길이 뭐냐? 나는 주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살리는 개인 영적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볼 때 어떤 면에서는 좋은 면도 강한 면도 있겠죠. 그런데 어떤 때 너무나 약한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환경 앞에 사건 앞에 문제 앞에 낙심하고 상처받고 염려하고 불신앙에 사로잡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남한테는 말하지 않지만 제가 압니다. 얼마나 제가 한심하고 초라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저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시험에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저만 그렇습니까? 누구나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외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감람산에 제자들을 부르시고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또 그들이 나갈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아버지 약속을 기다려라. 성령이 임할 것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베드로가 실패했습니다. 베드로가 회복되어 한 일이 주님의 말씀대로 내가 결국 무너졌다. 나에게 힘이 없으면 또 무너진다. 그래서 베드로가 제9시 기도시간에. 6시 기도시간에.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이게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자신만만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 잘 인도받다가 어느 날 무너지는 내 모습을 봅니다.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한심합니까? 정말 우리에게 나를 살리는 시간이 없으면 영적 힘이 없으면 무너집니다. 무너진 사람을 보고 왜 무너질 수 있나? 손가락질 할 수 있습니까? 정말 힘을 얻는 시간이 없으면 개인적으로 그런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힘을 얻지 못하면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 저는 이 은혜를 사모합니다. 저를 지켜주는 것은 저의 결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2- 와서 보라

1. 말씀하시는 것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 물둥이를 버려 두고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3. 동네로 들어가서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4. 와서 보라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 달려가는 사람

1. 사람들에게

이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동네에 들어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줄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이 여인이 가서 이것을 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사실 부끄러운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자기 처지가 굉장히 어려웠고 힘들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그분들에게 찾아갔고 말을 한 겁니다. 제가 그렇게 기다리던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그 예수님. 그분이 내가 그다. 메시야다. 그리스도다. 이런 말을 저에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여자가 살고 있던 동네는 우물과 상당히 떨어져 있었겠죠. 그런데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왜요? 이제 물동이는 필요 없어. 그런 얘기가 아니죠. 그 물동이가 있어야 물을 길을 수 있습니다. 필수적인 거죠.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한 거죠. 그런데 지금 이 여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까. 물동이를 지고 가면 너무 느리니까.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내가 물동이에 물을 지고 가서 지금까지 물을 마셨는데 항상 목이 말랐다. 이 물동이는 이 세상 사람에게 소중한 거지만 이것을 가지고 아무리 먹고 마셔도 끝이 없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같은 그리스도를 만난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사는 동네에 달려갔습니다. 동네에 사시는 분들에게 꼭 전해야 할 내용. 꼭 알게 해야 하는 일을 발견한 겁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달려간 겁니다.

2. 그리스도가 아니냐

내게 말한 분. 그분에게 와서 보세요. 우리가 기다리던 분.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리스도가 사단의 머리를 깬다고 말씀했습니다. 지옥 권세를 꺾으시고 죄의 저주를 꺾으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신 그분. 우리의 모든 것을 회복하는 그분.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사실 이 여인은 남편을 다섯 번이나 두었던 사람이고 지금 사는 여섯 번째 사람도 남편이 아닙니다. 그러면 동네 사람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수군거렸겠죠. 의식이 안 되겠습니까? 같은 동네에 살지만 다른 사람들을 의식했을 것이고 그분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자신의 아픈 상처가 있었겠죠.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움 속에 사로잡힐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간 겁니다. 달려갔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도 사람들의 시선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은혜가 임하면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이 여인에게 그 은혜가 임하니까.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사람들이 자신을 봤던 관점. 한 번도 말을 해보지 못한 사람. 다가갈 수 없었던 그 사람들에게 가서 와서 보세요. 이분이 그리스도 아니겠습니까?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그분. 우리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기다리던 그분.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그리스도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전한 겁니다.

3. 예수께로 오더라

이 여인의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와서 예수께로 왔습니다. 이 여인이 와서 보세요.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주님을 만난 여인은 부끄러운 과거에 매이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 여인이 자기 인격을 말했겠습니까? 자기 실력을 말했겠습니까? 자기 경건을 말했겠습니까? 자기의 삶을 말했겠습니까? 사실 자기 인격도 실력도 경건도 삶도 말할 수 없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가서 한 말이 뭡니까? 그리스도를 얘기한 겁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왔습니다. 지금까지 누가 이 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이 여인의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이 무슨 권위가 있습니까? 그런데 내가 만난 그 예수. 그분이 메시야입니다. 나에게 말한 그분이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전했는데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한 겁니다. 사람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부끄러움과 상관없이 그리스도라는 말에 역사가 일어난 겁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를 말하는데 성령이 역사하니까. 이 사람들에게 은혜가 임한 겁니.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도를 말했다고 다 알아들었을까요? 그리스도를 말했다고 다 믿음이 생겼을까요? 우리가 들었다고 봤다고 믿습니까? 누가 말해주고 보니까. 믿습니까? 이 여인이 가서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들렸다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여인이 그리스도를 말했는데 그 말씀이 믿어진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4. 달려가는 사람

그분들이 이 여인의 말을 듣고 와서 보라. 그 말을 듣고 예수님께 달려간 겁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누가 한 겁니까? 자기 생각, 주장이 강한 사람들은 뭐 이래. 그랬겠죠.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임한 겁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갔습니다. 물동이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그 메시야를 와서 보세요. 초대했는데 그분들이 나왔습니다. 성경을 문법적으로 자세히 보면 이런 의미입니다. 이 여인이 마을로 달려간 것도 좌우를 보지 않고 급히 간 겁니다. 꼭 불이 났을 때 달려간 것처럼요. 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달려왔을 때 어떤 상태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달려간 겁니다. 보세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만나고 보니까. 자기도 처지가 어려운 사람이지만 자기 동네 사마리아 사람들이 받는 멸시와 천대. 무시를 당하는데 정말 이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 메시야. 이분들이 바라보던 메시야를 만났다. 전해준 겁니다. 이게 성령이 역사하니까. 이 여인도 동네로 달려가고 이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도 예수님께 달려오게 되었다. 이게 은혜가 임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런 은혜를 사모합니다. 오늘 찬송가 431장을 선택했습니다. 주안에 기쁨 있네. 주안에 평안 있네. 불안이 연기처럼 스며들어도 주안에 사랑 있네. 주안에 소망 있네. 검푸른 성난 파도 밀려 덮쳐도 주안에 영생 있네. 주안에 천국 있네. 불길이 지옥처럼 솟아올라도 주안에 소망 있네. 은혜가 임한 사람에게 임한 소망입니다. 바울은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만난 사람은 그리스도께 달려가게 됩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에게는 힘을 얻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와서 보라. 그리스도 그분이 메시야입니다. 은혜가 임한 사람은 좌우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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