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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너로 말미암아 조회수 : 133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4-07-28
  첨부파일:   20240728.hwp(240K)

분류

주일예배

제목

너로 말미암아

성경

빌레몬서1:4-7

일시

2024728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질그릇에 담긴 보배

1. 근본 발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본 의도는 너희는 나를 누구로 아느냐?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이 뭘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욘아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이것을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다.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살면서 믿음 가진 우리에게 가장 복된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겁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노력하고 경건하고 열심히 선하게 살아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예수가 믿어졌는데 그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 은혜가 임한 자에게 어떤 축복이 따릅니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내가 세울 것이다.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길 수 없다. 천국열쇠가 너에게 주어졌다. 구원받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겁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반석입니다. 눈에 안 보이지만 분명히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길 수 없다. 음부의 권세가 깨버릴 권세가 우리에게 있다. 이게 구원받은 자에게 있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천국열쇠를 너에게 주리라. 이게 눈에 안 보이는데 천국열쇠가 주어진 겁니다. 이게 얼마나 나에게 사실이냐? 이게 신앙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고백을 한 제자들을 불러서 변화 산에 올라갑니다. 변화 산에 올라가니까. 엘리야, 모세가 있는데 다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남았더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능력도 보고 신비도 체험합니다. 또 뭔가 바르게 살기 위해서 율법도 지키고 열심히 삽니다. 소중한 겁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만 구원의 길입니다. 오직 예수만 사단의 손에서 빠져나오는 길입니다. 오직 예수만 죄의 저주에서 해결되는 길입니다. 오직 예수만 지옥 권세를 꺾는 길입니다. 오직 예수만 천국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왜요? 멸망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힘입어서 구원을 받으라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믿음에 근본 발판입니다.

2. 찬송하리로다

성경에 보면 방주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다 살았습니다. 그러나 방주 밖에 있는 사람은 귀한 사람이라도 다 죽었다. 어떤 사람도 그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이라도 피를 바르지 않는 집에는 저주가 임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아담 안에 있는 자. 성경은 이렇게 엄격하게 구분을 합니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게 구원입니다. 이게 우리의 근본 발판입니다. 성령이 인을 쳤습니다. 고후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린 마귀 자녀고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끌려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우린 지옥으로 끌려갈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 시달리면서 삽니다. 영어 성경학교 인도하는 최혜정 권사님이 강의 중에 일본에서 유학할 때 귀신에게 많이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잠을 못 자죠. 엄마한테 얘기하니까. 나이 많은 스님이 쓰던 염주를 보내서 머리맡에 두고 자라는 겁니다. 그러나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자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세가 사단을 꺾는다. 이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리스도 한 분을 알게 된 겁니다. 권사님은 그 순간 깨끗해진 겁니다. 우리가 찬송을 해야 한다. 물론 찬송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깨닫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에게 있다는 그 순간에 그 저주가 끝난 겁니다. 그러니까. 찬송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찬송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온 겁니다. 세상에 방법도 자신의 노력도 주변의 도움도 약간 효과도 있고 위로도 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해결이 안 됩니다. 일본 사람은 일반적으로 성실하고 착합니다.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한 분 깨달았는데 완전히 치유된 겁니다. 그러니까 찬송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권사님이 한국에 나와서 엄마한테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엄마도 사실은 시달렸습니다. 엄마가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 엄마가 신춘자 권사님입니다. 권사님도 많이 시달렸습니다. 딸을 통해서 복음 받고 증인 되어 지금 여기에 두 분 다 계십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가 있습니까? 문제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은혜를 사모하고 힘을 얻어서 살아가는 겁니다. 교회 안에 아무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성인들만 모입니까? 저같이 허물 크고 실수 많고 부족한 자들이 그래도 모여서 하나님 바라보고 의지하고 은혜 사모하고 또 무너지면 은혜받고 힘 얻어서 찬송하고 인도받고 사는 겁니다. 우린 하나님의 위로와 자비와 하나님의 용서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린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3. 환란과 위로

고후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환란이 얼마나 큰지. 살 소망도 끊어질 만큼 힘에 겹도록 왔다. 우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세상 사는 동안 여러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무엇이 나에게 더 큰가? 무엇이 더 크게 보이는가? 그게 문제입니다. 어떤 문제 어떤 사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의 위로가 나에게 더 크다면 우린 그 문제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큰 문제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더 크게 임하면 우린 넘어설 수 있습니다. 불안한 일이 많지만, 하나님의 평강이 나에게 임하면 그 불안한 일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바울이 살 소망도 없을 만큼 환란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환란이 와도 하나님의 위로가 더 크니까. 넘어섰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실패한 원인이 뭘까요? 유대인은 복음보다 율법이 더 큰 겁니다. 그래서 실패한 겁니다. 중세시대는 복음보다 행위가 더 크게 보인 겁니다. 그래서 실패한 겁니다. 마가다락방교회가 왜 승리했습니까? 핍박보다 하나님의 성령 역사가 더 큰 겁니다. 그래서 증인 된 겁니다. 왜 사람들이 핍박에 넘어질까요? 문제 가운데 어려움 때문에 낙심할까요? 분명히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고 평강이 임한 사람들은 그것을 넘어섰고 발판이 되었고 증인 되었습니다. 고후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이런 믿음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4. 질그릇에 담긴 보배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린 약하지만 부족하고 허물 많지만 보배가 내 안에 있다. 우린 질그릇처럼 연약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볼 때,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를 볼 때 질그릇처럼 연약합니다. 허물도 있고 부족함이 보입니다. 그게 크게 보이는 사람과 저 사람이 부족하지만 저 안에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있지! 그렇게 보는 사람과 사람 보는 눈이 다릅니다. 보배는 눈에 안 보입니다. 숨겨져 있습니다. 그분에게 그리스도가 계신 것은 눈에 안 보입니다. 사람들은 은그릇이냐? 금 그릇이냐? 나무 그릇이냐? 이것으로 판단합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안에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있냐? 없냐? 이게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똑똑하고 잘났냐? 많은 일을 하냐? 그건 보이는 겁니다. 그러나 그 안에 보배, 그리스도가 있냐? 없냐? 이겁니다. 유대인들은 다 있는데 보배 되신 예수 생명만 없습니다. 질그릇처럼 연약하고 부족해도 생명 되신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면 가장 축복 된 자입니다. 이게 구원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영원한 축복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한 겁니다.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사람을 볼 때 어떤 눈으로 봐야 합니까? 내 기준으로 내 눈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실수합니다. 저분에게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있구나!

2- 너로 말미암아

1. 너를 말함은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2. 네 사랑과 믿음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3. 네 믿음의 교제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4. 너로 말미암아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3- 영원한 사랑

1. 내 하나님께

바울이 내 하나님께 그랬습니다. 이것은 문법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내 하나님이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나에게 모든 것이다. 그래서 내 하나님이다. 고백하는 겁니다. 바울은 너무너무 나에게 소중하고 모든 것이기 때문에 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모든 성도의 복음인데 왜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이 복음은 나의 모든 것이고 가장 소중한 것이다. 표현하는 겁니다. 이게 바울의 영적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 나의 복음. 이것은 문법상은 틀리지만, 간절함은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복음, 나는 하나님 없이는 못살아. 나는 복음 없으면 안 돼. 그 고백입니다. 그러니 항상 감사하고 항상 기도했다. 이게 영적 상태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이해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속상한 일, 시험 드는 일, 놀랄 일, 답답한 일이 없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면 넘어설 수 있습니다. 나의 복음이면 거기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자기 기준이 강해서 자기 기준, 자기 율법 기준에 안 맞으니까. 마가 다락방 성도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마가다락방교회는 이단 교회니까. 없애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하나님 볼 때는 악한 자인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은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고 살았다. 그 복음이 나의 복음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나의 모든 것이다. 우린 어떻습니까? 우린 과거에 하나님 모르고 우상숭배하고 천국과 지옥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나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2.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까지. 계속해서 되어졌다.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은혜. 이게 정말 감사해서 그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감사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감사하면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구나! 나의 왕이구나! 그 사랑에 사로잡혀서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수용하고 헌신하는 겁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수용하고 헌신하니까. 구원받습니까? 아닙니다.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 크니까. 거기에서 헌신도 사랑도 배려도 용서도 나오는 겁니다.

3. 기쁨과 위로

성도들의 마음이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 너의 사랑이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 왜 불안해지죠? 왜 불평이 나올까요? 왜 불만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왜 불신앙할까요? 이건 분명히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부족하다는 겁니다. 부족하니까. 불평이 나오는 겁니다. 충만한데 불평이 나옵니까? 부족하니까. 불평, 불신앙이 나오는 겁니다. 충만하면 불만하지 않습니다. 결국, 나에게 뭔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정확한 문제는 어디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원인 제공을 했겠지만, 문제는 나입니다. 내가 없고 내가 부족한 겁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님 한 분이 신학교에서 예배를 인도하면서 학생 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다락방에 참여하는 것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돗물을 먹었다고 합니다. 제가 몰랐습니다. 잘 곳이 없어서 교회 의자에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고 목회를 잘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쫓아냈던 아버지는 현재 장로님이 되고 복음 운동에 쓰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임하면 문제를 넘어섭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 임하면 어려움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이 주신 위로를 받고 평강을 누리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면 사라지는 겁니다. 알아도 없으니까. 줄 수 없는 겁니다.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내게 그리스도가 풍성하다. 그러니까. 줄 수 있는 겁니다. 빌레몬에게 그 평강이 임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평강을 주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기쁨이 충만하니까.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기쁨을 주었다. 지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평강을 주고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를 하고 사랑을 베풀었다. 저는 이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4. 영원한 사랑

어떤 것이 문제가 됩니까? 나에게 그 사랑과 은혜가 더 크면 문제 될 것이 있습니까? 그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없으니까. 불평하는 겁니다. 내 사랑으로 성도들이 살아나고 너의 사랑으로 전도자들이 힘을 얻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뭘까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영원한 사랑이 우리에게 물밀 듯 오면 되는 겁니다. 베드로가 예수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고 도망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시몬의 아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과거의 허물과 죄와 실수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어린 양을 치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죄와 실수와 허물을 묻지 않는다고 해서 뻔뻔하면 됩니까? 그건 아닙니다. 불신앙하고 아무렇게나 살면 됩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 사건 이후에 완전히 그리스도가 주인, 왕 된 삶을 삽니다. 과거에는 그의 삶이 혈기 있고 자랑하고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베드로 인생이 완전히 바뀝니다. 철저하게 성령 인도를 받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제9시 기도시간에, 여행을 할 때도 제6시 기도시간에, 완전히 성령 인도를 받습니다. 이 영원한 사랑,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나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오늘 찬송가 304장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이 사랑만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영원한 소망입니다. 58: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린 질그릇처럼 연약하지만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위로와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쓰임 받는 겁니다. 우린 영원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이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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